‘박수 칠 때 떠나기’, 말처럼 쉽지 않네
  • 신명철 | 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10.05.0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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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감독·김연아 선수 등의 은퇴 문제에 이목 집중…프로 무대 떠났다가 올림픽 출전하는 경우도

 

▲ 4월2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차범근 수원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시적 퇴진이든 영원한 은퇴이든 유명인 또는 공인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외 스포츠계에서 이 문제가 최고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가 일시 퇴진한 뒤 복귀하는 수순은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국내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차범근 감독은 지난 4월24일 강원 FC에게 1 대 2로 지면서 K리그에서 5연패한 책임을 지고 구단이 원한다면 물러날 수도 있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가 이틀 만에 이를 뒤집었다.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의 거취 문제도 스포츠팬의 관심거리이다. 물론 다른 경우들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조금 더 선수 생활을 하며 ‘나라를 위해’ 뛰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0년이 넘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뛴 만큼 이제는 선수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김연아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벽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1988년 서독의 테니스 선수 슈테피 그라프는 윔블던 등 4개 메이저 대회의 우승을 휩쓰는 그랜드슬램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2010년 현재 남녀 통틀어 유일한 그랜드슬래머+올림픽 챔피언의 기록을 갖고 있다. 물론 그때 그라프는 프로 선수였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김연아가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접고 아이스쇼 출연 등 프로 활동을 하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적당한 시점에 복귀해 태극 마크를 달고 빙판을 누빌 수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은퇴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멕시코의 박세리’라고 하면 얼른 그녀의 자국 내 위상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로레나 오초아가 지난 4월23일 은퇴를 선언했다. 최근 3년 동안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LPGA) 랭킹 1위였고, 2004년 2승을 시작으로 2007년 브리티시오픈과 2008년 나비스코챔피언십 등 메이저 대회 2승을 포함해 지난 시즌까지 LPGA 통산 27승을 거둔 현역 선수가 갑자기 골프채를 놓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시즌 상금 랭킹 1위에 오르며 거머쥔 LPGA 통산 상금은 1천4백81만7천8백46달러에 이른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물러났기에 비슷한 길을 걸은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비교되지만 소렌스탐은 2008년 은퇴할 때 38세였고 오초아는 이제 겨우 29세이다. 여자 프로골퍼로는 중견이 채 안 되는 나이이다. 물론 지난해 12월 멕시코의 항공회사인 ‘아에로멕시코’ 안드레사 코네사 사장과 결혼한 뒤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는 했다. 적지 않은 골프 관계자들이 오초아의 현역 복귀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는 가운데 2012년 런던올림픽을 주목하고 있다.

골프는 럭비와 함께 2012년 런던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멕시코의 역대 올림픽 성적은 썩 좋지 않다. 자국에서 열린 1968년 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 3개씩으로 15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4위,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3위를 했다. 오초아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복귀해 메달을 딴다면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을 수 있다. 오초아는 지금도 멕시코에서 국민적 영웅이다. 

선수들, 제2 인생 설계 만만치 않아 은퇴 시기 놓고 고민 거듭

 

▲ 프로농구 서울 삼성 이상민 선수가 4월22일 서울 태평로빌딩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아마추어와 프로를 이어가며 국내 남자농구의 스타플레이어로 인기를 누리던 이상민도 지난 4월21일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회견장에서 적지 않은 팬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은퇴를 아쉬워했고, 한편으로는 한 시즌만 더 뛰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민은 좋은 분위기에서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는 이제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열고자 한다.

국내 야구팬이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선수를 만나게 된 것은 1973년 9월 에가와 스구루가 방한 경기를 했을 때일 것이다. 에가와는 그해, 이제는 사라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한·일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일본 선발팀의 기둥 투수였다. 훗날 도쿄 6대학 리그의 호세이 대학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특급 투수로 이름을 날린 에가와는 그해 열린 제55회 여름철 고시엔 대회 도치키 현 예선에서 5경기에 등판해 44이닝 동안 2안타 75탈삼진이라는 믿기 어려운 투구를 하는 등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한 구위를 자랑했다.

에가와가 1987년 32세의 이른 나이에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적지 않은 국내 팬이 놀란 까닭은 그의 괴력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어깨 통증이 은퇴의 원인이었지만 프로 10시즌만 뛰고 유니폼을 벗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을 법했다. 그러나 에가와는 곧바로 니혼 TV 해설자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운동선수의 은퇴에는 일반인의 은퇴와는 다른 점이 많다. 지도자나 해설자, 구단 또는 경기단체 직원 등 운동과 관련된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선수가 은퇴 시기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이다. 프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 남자 선수의 경우는 30세 안팎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여자 선수의 경우는 결혼할 때가 일반적인 은퇴 시기였다. 금융권 팀의 경우 1년이라도 일찍 은퇴해야 창구 업무도 익히고 나중에 일반 직원들과 경쟁해 지점장이라도 할 수 있기에 감독의 만류를 뿌리치고 은퇴하는 것이 그 시절 풍속도였다. 여자 선수가 30세를 넘기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주부 선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77년 한국 야구가 아시아권을 벗어나 처음으로 세계 규모 대회인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사령탑은 김응룡 삼성 구단 사장이었다. 그때 김사장의 나이는 36세였다. 뛰어난 김감독의 실력으로 볼 때 요즘이라면 아직도 특정 구단의 4번 타자를 했을 나이이다.

프로배구 삼성화재가 우승에 실패한 2006-2007시즌이 끝나고 신진식과 함께 은퇴한 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배구 세계 예선전에서 해설자로 나선 김상우를 보며 “운동만큼이나 해설도 잘하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김상우가 4월28일 프로배구 LIG 손해보험의 새로운 사령탑이 되었다. 그의 나이 올해 37세이다. 프로스포츠 구단의 감독으로는 많지 않은 나이이다. 은퇴는 사전적 의미로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이지만, 운동선수들에게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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