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으로 쌓아올린 신화의 종말
  • 조현주 인턴기자 ()
  • 승인 2010.05.04 14: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1위 상조업체 보람상조 최철홍 회장의 성공과 몰락 / “제왕적 스타일의 경영이 자초한 일”

▲ 지난 3월30일 검찰은 국내 최대 규모의 상조회사인 보람상조 그룹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아래는 압수수색을 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보람상조 본사. ⓒ연합뉴스

보람상조 최철홍 회장(53)은 지난 1월 자신의 횡령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법인과 개인 계좌에서 1백60억원을 인출하고 가족을 동반한 상태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피성’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한때 ‘멕시코 도피설’이 있었으나 보람상조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에서 장기 체류할 것 같았던 최회장은 지난 4월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회사측이 최회장 개인 재산에 대해 법원에 압류 신청을 한 직후였다. 결국, 최회장은 4월26일 공금 2백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신세가 되었다.

검찰에 따르면, 최회장은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 동안 집중적으로 공금을 빼돌렸다. 최회장과 회사 간부들이 짜고 상조 회원들이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하려고 내는 일시금을 회사 계좌에 넣지 않고 자신의 계좌로 송금받는 방식이었다. 9개 계열사의 공금을 개인 돈처럼 쓴 것이다.

최회장은 지금까지 ‘상조 비즈니스의 선구자’로 추앙받았다. 그의 경영 신화는 여러 언론에 소개되며 ‘성공한 경영인’으로 비쳤다. 하지만 최회장 등 오너 일가가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의 화려한 명성도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최철홍 회장은 왜 ‘상조업계 원조’라는 자부심을 뒤로 한 채 ‘실패한 경영인’으로 전락한 것일까.

회원 수 80만명, 시장 점유율 30%가 넘는 보람상조의 아성은 19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졌다. 최회장은 지난 1991년 부산에 보람상조를 설립했다. 이때만 해도 국내에는 ‘상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최회장과 보람상조는 국내의 ‘상조 원조’가 된 것이다. 최회장과 상조업의 인연은 그의 불우했던 성장 과정과 맥락을 같이한다. 청년 시절에 맛본 처절한 좌절감이 결국 국내 1위 상조업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보험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군에서 제대한 후 24세의 나이에 흥국생명에서 영원사원으로 일했다. 2년 후인 26세 때에 ‘현대실업’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3년 만에 부도를 맞았다. 당시 사업에 실패해 생계가 어려워지자 자살을 기도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실패’는 말 그대로 ‘성공’의 어머니였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회장은 자신의 성공 신화를 말할 때 “죽음의 목전에서 ‘삶과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상조업이 먼저 들어온 일본에 연락해 교육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직접 장의사로 일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기도 했다. 1991년 부산 동래 안락동에 ‘보람상조’ 간판을 내걸면서 ‘상조업의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 운영에 친형을 끌어들였다. 최회장 자신은 자금과 영업·관리 등 전체 업무를 총괄하고, 형인 최현규 부회장(62)에게는 장례 행사 업무를 맡기는 등 경영을 이원화했다.

1996년에는 본사를 부산에서 서울로 옮긴 후 전국 영업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3년 수도권을 집중 공략했고, 2007년부터는 수도권에 처음으로 진출한 상조업체라는 ‘프리미엄’을 업고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공격적인 마케팅 효과까지 가세했다. 홈쇼핑 진출, 유명 연예인과 함께한 TV 광고 등을 통해 회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허위 과장 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보람상조는 문어발 확장을 통해 계열사를 늘려갔다. 2007년 캐슬비치 호텔 인수, 2008년 뉴태양호텔(현 프라임관광호텔) 인수, 2009년 남태평양호텔 인수 등을 통해 계열사를 16개로 불렸다.

보람상조의 재무 구조에 의혹의 눈길 여전

▲ 보람상조 최철홍 회장(위)은 지난 4월26일 공금 2백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뉴스뱅크

보람상조가 보람상조개발, 보람상조라이프 등 2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보람그룹으로 성장하는 동안 회사의 경영 상태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문영남 보람상조개발 대표는 최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보람상조가 18년 동안 고객으로부터 받은 원금은 3천5백억원이다. 하지만 검찰 쪽 얘기에 따르면 현재 남은 원금은 8백40억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최회장이 남은 2천6백60억원의 행방을 정확히 밝히지 못한다면 이 금액도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에 대해 보람상조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고객 전체가 해약을 신청한다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지급해야 할 해약 환급금이 약 7백50억원이다. 현재 보람상조는 1천3백5억원 정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해약했을 때 환급금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

회사의 석연치 않은 재무 구조에 대한 의혹의 눈길은 여전하다. 이번 보람상조 횡령 문제를 처음으로 고발했던 보람상조 노조측에서는 “최회장은 제왕적인 스타일로 경영을 한다. 형인 최현규 부회장과 부인 김 아무개 이사가 함께 모든 계열사 법인의 대표이사 자리를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가량 회전문처럼 도는 식이다. 이런 상태에서 회사 재무가 깨끗하게 관리될 수 있었겠느냐”라고 항의했다.

최근 최회장과 부인인 김이사는 6개 계열사의 대표와 임원을 맡으며 한 달 평균 1억3천3백만원의 월급을 받아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보람상조 노동조합의 이부길 위원장(48)은 “장례지도사나 승무원으로 일하는 노조원들 대개가 24시간 대기에 휴무가 전혀 없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지만 직원 임금은 세금을 제하면 월 1백50만~1백70만원이 될 정도로 형편없었다”라며 회사의 재정 운영상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보람상조의 회장과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회사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회사측에서는 이번 횡령 의혹 사건이 회사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보팀 관계자는 “횡령 혐의가 보도된 이후 실제 해약 건수는 약 1만5천건으로 전체 가입 고객의 2%에 불과하다. 회사의 서비스뿐만 아니라 재정도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의 불안감은 곧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람상조는 상조업계 1위라는 화려한 타이틀에도, 오너 일가의 부정으로 인해 회사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여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