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중국 지도자 만날 듯
  • 박승준 |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0.05.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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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승계 때도 중국·북한 최고 지도자끼리 사전 상견례 가져… 중국, 북한 권력 이동에 상당한 간섭

▲ 2006년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베이징에 있는 중국농업과학원 작물과학연구소를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중국이 주목받고 있다. 과연 중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을 아들 김정은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것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2월23일 중국 외교부의 내외신 뉴스브리핑장에서 친강(秦剛) 대변인에게 직설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일본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후 중국이 북한에 대해 핵 포기와 함께 개혁·개방을 하고, 동시에 지도자 세습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 신문은 또한 오는 6월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확인해달라.”

이에 대해 친강 대변인은 “그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할 수도 없다. 우리는 조선(북한)이 자신들의 국정에 맞는 발전의 길을 걸어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국가 건설에서 더 큰 성취를 이룩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울러 중국과 조선 간의 우호 관계가 부단히 발전하기를 빈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김정은의 방중설에 대해서도 “김정은의 방중에 관해서는 작년에도 내가 여러 차례 (아니라고) 확인해준 일이 있다. 관련 보도들은 항상 ‘(방문 시점은 틀리더라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뜻을 암시하고 있지만, 나의 대답은 ‘그런 일은 진짜로 없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제1항으로 하는 ‘평화 공존 5원칙’을 공표하고 있다. 친강 대변인의 발언은 이를 근거로 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답변은 사실과 다소 거리감이 있다. 중국은 1994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자신들의 평화 공존 5원칙에서 벗어나 북한의 권력 이동에 상당한 간섭을 했다. 김일성 사망 당시 중국이 한 행동을 되짚어보자.

당시 중국의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은 김일성 사망 바로 다음 날 조전을 보내 최고의 애도를 표했다. 덩샤오핑이 평양으로 보낸 조전의 내용은 ‘조선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을 잃었고, 본인은 가장 친밀한 전우이자 동지를 잃었다. 조선 인민들은 김일성 동지의 유지를 계승해 김정일 동지를 지도자로 하는 조선노동당 주위에 단결해 조선 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당시 막후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이 조전을 보내자,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리펑(李鵬) 총리, 차오스(喬石)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도 공동 명의로 같은 내용의 조전을 보내 최고의 애도를 표했다. 중국의 당과 행정부, 입법부가 일제히 김일성 사망 이후의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평양에 보낸 것이다.

김일성 사망 당시 김위원장은 당에서는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었고, 군에서는 국방위원회 위원장 겸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계급은 원수의 자리에 있었다. 당과 정부에서는 최고위의 자리를 갖고 있지 않았고, 군 쪽에서만 국방위원장 자리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위원장은 김일성 사망 3년 뒤인 1997년에 가서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의 관계자들은 “1974년 32세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이미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조선 인민들이 단결하라’고 조전을 보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당시 52세의 나이로 북한의 원로들의 입김에 따라서는 입지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던 김위원장에 대해 중국 지도자들이 일제히 “김정일을 중심으로 단결하라”라고 북한에 조전을 보낸 것은 명백한 내정 간섭이요, 김정일 정권의 탄생을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보아야 자연스럽다.

중국, 북한의 천안함 사건 연루 밝혀지면 곤혹스러워질 듯

중국 지도자들이 김위원장을 지지하기로 한 것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에 중국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과 김일성 사이에 각각 자신들의 후계자로 지정한 장쩌민과 김정일을 서로 인사시키는 과정을 미리 밟아놓았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권력의 기반이 흔들리자 6월 말 중국공산당 총서기직을 장쩌민에게 물려준 데 이어, 9월에는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장쩌민에게 넘겨주었다. 바로 그 직후인 1989년 11월5일부터 7일까지 김일성이 특별열차 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데리고 나가서 함께 김일성이 탄 열차에 올라가 장쩌민을 소개시켰다. 2006년 중국 외교부 직영 출판사인 세계지식출판사가 펴낸 <장쩌민 외국 방문 기록>에 따르면, 이때 덩샤오핑은 김일성에게 장쩌민을 소개하면서 “앞으로는 이 장쩌민 동지와 잘 지내시오”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또 장쩌민이 4개월 뒤인 1990년 3월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지로 북한을 선택하고, 평양을 방문하자 아들 김정일을 데리고 순안공항으로 나가 장쩌민에게 소개시켰다. 이미 김일성 사망 4~5년 전에 중국과 북한의 최고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후계자들끼리 상견례를 올리게 한 처지이므로, 김일성 사망 때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지도자들이 김정일을 지지하는 조전을 친 것은 자신들의 ‘내연(內緣)의 논리’로는 너무 당연한 행동이었던 셈이다.

물론 현재 중국은 덩샤오핑에서 장쩌민으로, 다시 후진타오(胡錦濤)로 최고 지도자가 바뀌기는 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할 것을 장쩌민에게 지시한 사람이 덩샤오핑이고, 또 장쩌민은 여전히 후진타오의 배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쩌민 이후 “중국은 북한과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맺고 있다”라고 말해왔지만, 두 나라 정상회담에서는 여전히 ‘선대 지도자들이 쌓아온 우호 친선 관계’를 강조하는 마당이므로 김위원장이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작업이 진행되는 현 단계에서 김정은과 중국 지도자들의 상견례는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김정은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지지 표명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두 나라 관계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만약 천안함 침몰 사건이 명백히 북한에 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실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과 함께 G2라고까지 불리는 중국이 점차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그러면서도 3대 세습의 속도를 내고 있는 북한에 대해 향후 어떤 행동을 보일지 실로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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