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일색 ‘김정일 그림자’들
  • 이기동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 승인 2010.05.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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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부, 누가 움직이나 /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김영춘 인민무력부장·리영호 총참모장이 실세

▲ 2005년 10월10일 북한 군인들이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부(軍部, military clique)에서 군부(軍府, military authorities)로 격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부(軍部)가 국가 운영 체계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군부(軍府)는 그 중심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군부(軍府)의 등장은 김정일 시대에 군사주의가 지배적인 국가 운영 노선이자 통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혁명적 군인 정신을 내세워 전 사회가 군대의 정신을 따라 배울 것을 독려해왔고, 선군 사상을 당의 지도적 지침으로 정했으며, 사회에 대한 군사적 통제가 행사되어왔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군사주의 또는 군사 국가의 전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북한의 군사주의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3 세계 군부 독재 정권들은 제도적으로 민주적 틀을 갖추고 있었으나, 북한은 제도적으로도 군사주의 국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국가 체계를 ‘국방위원회를 중추로 하는 국가 영도 체계’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이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지난해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국가 주권의 최고 국방 지도 기관이자 전반적 국방 관리 기관’으로 격상시키면서 이에 걸맞게 많은 권능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주의적 통치를 보장하기 위해 그에게 다양한 제도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적으로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직, 국가적으로는 국방위원장직, 군사적으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직이 그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국가 체계(제도)는 철저히 군사주의적 속성을 따르고 있다. 

국가 영도 체계의 중추를 이루는 국방위원회의 조직을 보면, 북한의 군사주의적 성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2기가 출범하는 것과 더불어 국방위원회의 조직을 강화해왔다. 우선 국방위원회 산하에 행정국을 신설해 국방위원회의 지시와 명령이 하부 단위에 침투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군부의 핵심 실세인 리명수 전 인민군 작전국장을 행정국장에 보임했다. 그리고 독립 기관이었던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와 내각 기관이었던 인민보안성(최근 인민보안부로 개칭)을 산하 기관으로 이첩했다. 또한, 지난해 인민무력부(우리의 국방부에 해당) 산하에 정찰총국을 신설해 인민군 총참모부(우리의 합참에 해당)와 함께 양대 주축 기구로 삼았다. 정찰총국은 기존 노동당 산하에 있었던 작전부(간첩 침투 공작)와 35실(해외 공작)을 흡수·통합한 기구로서, 대남 공작의 총본산으로 불리며,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의 용의 기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군 출신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북한의 군사주의적 성향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우선 지난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새로 임명된 오극렬에 주목해야 한다. 오극렬은 1980년대 인민군 총참모장직을 맡았으나 당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노동당 작전부장직을 오랫동안 수행해 온 인물로 대남 침투 공작을 주도한 강경 성향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김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후계 체제를 지지하는 군부 내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다. 그의 부친은 빨치산 출신의 오중성이며, ‘수령 결사 옹위 정신’의 화신으로 알려진 오중흡이 그의 삼촌이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인민군 총참모장 출신으로, 현재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인민군 차수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 군 간부들의 불법 외화 벌이 개입이 발단이 되어 쿠데타 음모 사건으로 발전된 것으로 알려진 6군단 사건을 말끔히 처리한 인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민군 총정치국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조직

▲ 지난 4월25일 ‘건군절’ 맞아 군부대 훈련을 참관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과 군 수뇌부. ⓒ연합뉴스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해군사령관 출신의 김일철 차수는 직전 인민무력부장직을 맡았었기 때문에 강등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인민무력부의 조직과 권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강등이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은 김위원장이 절대적으로 신임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평양방어사령관 출신으로 군내에서 작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국방위원회 정책실장 출신으로 2008년 12·1 조치(군사분계선 전면 차단 조치)를 주도했으며, 당시 우리측 입주 기업 대표들에게 자신들의 조건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으면 “개성공단에서 나가라”라고 위협한, 대남 강경 인물의 대표 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찰총국 신설과 김영철의 정찰총국장직 임명을 두고 대남 강경 노선을 좀 더 강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밖에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 부부장과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은 인민군 대장이자 국방위원으로 사회 통제 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는데, 군인이 사회 통제 기구를 책임지는 것은 문민에 대한 군사적 통제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 군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조직은 인민군 총정치국이다. 인민군 총정치국은 군대 내의 당 조직이지만, 대다수 구성원이 현직 군인 신분이라는 점에서 군부에 포함시킬 수 있다. 총정치국장은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이며, 현재 와병 중이어서 주요 행사 참석 외에 실질적인 사업은 김정각 제1부국장이 대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현철해 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김명국 인민군 작전국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의 군부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북한은 군사주의적 또는 군사화된 국가의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가 성격은 군사적 모험주의의 배경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 군부의 군사적 모험주의에는 좀 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세월을 거쳐 확립되어온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군부 간의 운명 공동체이다. 이런 운명 공동체는 현실에서 ‘혁명의 수뇌부 결사 옹위’로 발현되고 있다. 북한 군부는 혁명의 수뇌부(김정일과 후계자)에 대한 충성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군사적 모험주의는 혁명의 수뇌부에 대한 충성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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