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석궁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5.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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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해지면서 남북 관계가 또다시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북한에 의한 것이라면 김정은에 대한 후계 구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시기·과정도 불투명하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한반도 정세는 ‘시계 제로’ 상태라 할 수 있다. 북한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김정은의 권력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핵이 없는 북한은 그저 또 하나의 궁핍한 제3세계 독재 국가일 뿐이었다.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김정일은 공산주의가 거의 세계 모든 곳에서 붕괴한 이후 20년 가까이 세계 최강의 초강대국에 성공적으로 맞설 수 있었으며, 자신의 전제적 체제를 계속 굴러가게 할 수 있었다.’

1989년 이후 북한을 15차례나 방문한 마이크 치노이 전 CNN 전문기자는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북핵 롤러코스터>에서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이렇게 표현했다. 북한에게 핵은 곧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26일 밤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북한 전문가들 중에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낮게 본 사람들이 많았다. 북핵과 관련한 중차대한 일정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런 무모한 도발이 결코 북한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내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늘 상식을 뛰어넘었다”라는 보수층의 강경한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결국, 한반도는 또다시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졌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친절한 무시’ 정책에도 역시 북한은 ‘무시’가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자칫 천안함 사태는 명확한 결론 없이 ‘카더라’ 식의 추측만 계속 양산시킬 가능성이 크다”라는 한 안보 전문가의 우려처럼, 이번 사태가 북핵 문제마저 불투명성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벌써부터 올 하반기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이 떠돌고 있고, 우리의 해군참모총장은 사실상 북한을 향해 공개적으로 ‘보복’을 다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다. 지금 평양 주석궁 내부에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후계자 수업’이 한창이다. 과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시기가 그랬듯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시기 또한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한반도는 ‘시계 제로’ 상태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2년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동북아 정세가 대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정점이 2012년이 될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온다. 남·북한과 미국·중국 등 주요 4개국의 집권 지도가 모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변화는 큰 대가를 요구한다. 2012년 11월에는 미국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12월에는 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다. 그보다 앞서 10월에는 중국에서 공산당 18차 당대회를 통해 후진타오 주석이 물러나고, 제5 세대 지도자가 새롭게 탄생한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해’로 정하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맞추고 있다. 특히 김정은이 이때에 맞춰 권력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물일곱 살의 청년’(1984년생) 김정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각별하다. 저마다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김정은 찾기’에 나서고 있다.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지난 4월20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김정은 사진 오보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대표는 4월19일 북한 고위 장교와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 내용을 공개하며 “김정은 대장이 신무기를 만들어 괴뢰 천안함을 쓰러뜨렸다고 (북한 내부에) 소문이 자자하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지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북한 후계자 문제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쯤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아 인텔리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 직책은 우리로 치면 국정원장에 해당한다. 사실상 정보를 독점하고, 도청 등을 통한 감시 기능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김정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김정은은 현재 조직비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김정일 서기실에서 일하고 있다. 서기실은 중앙당 조직지도부 건물 안에 있다. 김정은은 이미, 당 조직은 거의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군부에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 지난 1월2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신년 공동사설 실천 결의를 다지기 위한 10만명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의 위상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 갈려

북한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을 움직이는 최고 파워 엘리트들이 군부로 집결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16~17면 기사 참조). 김정은의 향후 체제에서도 군부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위원은 “김정은이 군부를 통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과 리영호 총참모장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노령화된 북한 군부에서 상대적으로 소장파에 속하는 60대 인물들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3대 세습에서 군부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군부 입장에서도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이해관계에도 맞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제3의 인물이 등장해서 혼란을 가져오기보다는 확실한 후계자를 원하는 속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향후 북한 후계자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 지난해 국방위원장이 최고 영도자가 된 것이라든지, 국방위원들을 당의 핵심 요원으로 배치시킨 것을 보아도 그렇다. 따라서 새 후계자는 국방위원이 먼저 되고, 국방위원장직을 승계하면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국방위가 강해지는 것은 그만큼 군부 쪽의 입김이 더 세지고 있다는 반증이다”라고 전했다.

정위원은 “만약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군부의 건의를 김정일 위원장이 조건부로 승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실행은 하되, 절대 근거는 남기지 말라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북한 체제 속성상 군부가 김위원장에게 보고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김위원장으로서는 군부가 강력히 건의해 올 경우 이를 거부하기도 어렵다. 군부의 사기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예측했다. 이위원 역시 “이번 사건을 김위원장 승인 없이 군부가 독자적으로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김위원장은 무엇보다 대남 관련 사건은 철저히 챙긴다. 김정은이 주도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그 역시도 아버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번 천안함 사건은 북한 김정은의 후계 구도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은 주목된다. 그는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김의원은 4월2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군 경험이 거의 없는 김정은으로서는 군의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김정은이 직접 지시하고 기획할 수는 없겠지만, 군부 충성파들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1970~80년대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도 이런 일은 있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라든지, 아웅산 테러, KAL기 폭발 사건 등이 그 예이다. 권력 승계 과정에서는 그런 대형 이벤트가 반드시 나왔다. 나는 2년 전 국회에서 당시 이상희 국방부장관에게 김정은의 후계자 구축을 위해 북한은 반드시 어떤 극단적인 도발을 감행할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반론도 있다. 일부러 극단적인 대남 도발을 감행할 만큼 김정은의 현 상태가 불안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위원은 “김정은 후계 구도 체제는 이미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후계 구도 체제를 위해 긴장 관계를 조성한 시기는 지난해 상반기 때였다. 그때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졌다. 그것이 지나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나왔다.

남한에 대해서도 유연한 대화 제스처를 취했고, 미국과도 대화를 시도했다. 즉, 2단계에서 이미 정책적 지도 체제가 정립된 것이다. 이제 3단계인데, 지금은 김정은 권위의 절대화를 꾀하는 시기이다. 이 시점에서 일부러 긴장감을 조성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시기는 김정은의 생일을 공식화하는 등 김정은의 신격화에 나서는 시기로 보면 된다”라고 밝혔다. 정위원은 “지난해 1월8일 이후로 북한은 현재 김정일-김정은 공동 정권 체제로 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2012년을 기점으로 북한 권력의 제도적 승계가 예상되지만, 실질적 승계는 빨라질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 1981년 이후 실질적 승계를 이룬 것처럼, 2012년 이전에도 김정은으로의 실질적 승계는 가능하다. 실질적 승계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통역관을 지낸 김동현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교수는 “김정은이 반드시 아버지 김정일의 직책을 이어받아야만 권력을 승계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북한은 사실상 봉건적 왕조 군주 체제로 접어들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내가 제네바에서 협상 회담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영삼 정권은 ‘김정일은 오래 못 간다. 군부가 받아들일 리 없다’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오판을 한 셈이다. 당시에도 김정일 위원장은 아버지의 주석 직책을 이어받지 않았기에 ‘감히 아버지의 권위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아버지의 타이틀은 영원히 놔두면서도 자기는 좀 더 강력한 권력을 새로 만들었다. 김정은도 그 전례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한반도 정세는 계속 안갯속일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다수이다. 정위원은 “사실상 향후 남북 관계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으로서는 이미 ‘이명박 정부와는 대화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북한은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위해서라도 대남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이제 마음을 접었다.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이 역시 한국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역시 한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양교수는 “향후 한반도 정세는 김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김위원장이 권력을 확실히 잡고 단계적으로 후계 구도에 나선다면 긴장이 고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건강이 불확실한 상황이 오면 북한은 강경한 노선을 취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백센터장은 “북한이 지금의 대외 정책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향후 장악할 권력은 지금과는 다른 생존 정책을 펼 것이다. 다만, 권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는 강경해질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격변이 소용돌이 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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