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진화’, 남성은 ‘왜곡’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5.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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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 공통점 많아…여성 시청자 위한 판타지 만드는 작법에 ‘충실’

▲ 드라마 의 주인공 역을 맡은 한효주는 ‘능동적인 신데렐라’ 같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MBC 제공

 

우리 드라마에서 신데렐라는 마치 공기처럼 떠다닌다. 어디든 드라마라는 영역을 밟게 되면 우리는 신데렐라를 발견한다. 그것은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상관하지 않으며, 가족 드라마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를 구분하지 않는다. 조금 과장을 섞어 얘기하면 여성 캐릭터가 있다면 거기 신데렐라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지경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여성들의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천민에서 숙종의 후궁이 된 입지전적인 여성, 숙빈 최씨의 생애를 다룬 사극 <동이>에서 동이(한효주)는 신데렐라의 사극 버전이다. 동이가 저잣거리에서 변복을 하고 암행을 나온 숙종과 만나 벌이는 사건들과 해프닝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이다. 착하면서 똑똑하고 사명감까지 가진 이 신데렐라는 숙종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숙종은 멀찌감치 서서 그런 그녀를 위해 도움을 자처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물론 이 신데렐라는 우리가 그 동화 속에 보았던 왕자에게 간택되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스스로 선택하면서 발산되는 그 매력이 자연스럽게 왕에게까지 닿게 되고 결국 왕의 선택을 받게 되는 자못 능동적인 신데렐라이다. 그러니 동이는 신데렐라의 진화된 캐릭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점점 변해가고 남녀 관계의 트렌드도 바뀌기 마련이니, 그 흐름 위에서 드라마는 캐릭터를 재해석해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재해석되었다고 해서 신데렐라가 아닌 것은 아니다.

현재 방영되는 방송 3사 수목드라마들은 저마다 이 변형된 신데렐라들을 내세우고 있다.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닌 신데렐라 언니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어찌 보면 신데렐라 언니인 은조(문근영)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특히 초반부 은조가 효선(서우)의 집에 들어왔을 때, 개념 없어 보이는 효선의 모습은 은조와 대조되면서 오히려 은조가 신데렐라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인상은 차츰 은조의 입장이 드러나면서 바뀌었다. 아버지 대성(김갑수)이 죽고 나서부터는 진짜 신데렐라 이야기가 은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이 다양한 신데렐라의 위치 이동이 <신데렐라 언니>가 주는 재미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그다지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자신이 신데렐라임을 주장하며 기훈(천정명)을 향해 처절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즉, 멜로의 지점으로 다가가면 어김없이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형이 고개를 든다. 다만, 그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한 인간의 성장 드라마로서 그 다채로운 시각이 트렌디 드라마들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볍게 가져온 것과는 전혀 다른 깊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에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박개인(손예진)에게 나타난 왕자님은 과거 트렌디 드라마가 그려냈던 실장님이나 대기업 총수의 아들이 아니다. 그 왕자님은 전문직을 갖고 있으며, 능력이 있고 어느 정도 부유하며 무엇보다 잘생긴 꽃미남이다. 게다가 이 왕자님은 ‘게이 남자친구’처럼 여성을 잘 이해해준다. 왕자님이 이런 모습이니 그런 왕자님을 꿈꾸는 신데렐라의 꿈도 다를 수밖에 없다. 박개인은 신분 상승을 원하기보다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꾸리기를 원하는 신데렐라이다. 이 행복을 꿈꾸는 신데렐라는 과거 성공을 꿈꾸며 현재의 자신을 희생하던 신데렐라와는 달라진 지금의 트렌드이다.

여주인공이 중심인 드라마에서 남성은 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대상화’

문제는 이 신데렐라가 꿈꾸는 남자로 인해 왜곡되는 남성상이다. 여성 시청층을 겨냥한 드라마들이 일제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시작하면서(이것은 전통적으로 남자 주인공들의 세상이었던 사극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여주인공이 꿈꾸는 남성은 늘 대상화되어왔다. 한때 그것은 실장님이었고, 때로는 꽃미남이었으며, 때로는 키다리 아저씨였고, 때로는 심지어 왕이 되기도 했다.

<동이>의 숙종은 동이를 중심으로 그려지면서 상당 부분 희화화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희화화는 권위를 지우고 대신 서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왕의 면모를 담은 것이지만, 천민인 동이와 왕 사이의 로맨스를 강화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기훈은 로열패밀리의 서자로서 능력과 함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심까지 갖춘 인물이다. <개인의 취향>의 전진호(이민호)는 성공한 전문직 종사자인 데다 여성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아는 인물이며, <검사 프린세스>의 윤세준 검사는 검사이면서도 아이를 챙기는 자상함까지 갖춘 인물이다. 물론 이런 인물이 여성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가 여성을 지향하기 시작하면서, 그 판타지를 부여하는 신데렐라는 계속해서 진화해 온 반면, 그 판타지의 대상이 되는 남성은 그만큼 왜곡된 길을 걸어온 셈이다. 

▲ 드라마 의 손예진·이민호 ⓒMBC 드라마 제공
본래 신데렐라는 권력을

본래 신데렐라는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들에 의해 천거되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혼사 장애의 형태로 보여주는 가족 드라마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들이 집을 뛰쳐나와 일과 사랑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을 때, 이 신데렐라는 변신하기 시작한다. 과거 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등장한 트렌디 드라마들의 왕자님이 실장님이라는 사실은 이 신데렐라 이야기가 사랑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의 성공까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성공의 시대를 지나면 이제 신데렐라들은 행복을 꿈꾸기 시작한다. <개인의 취향>의 박개인(손예진)의 욕망은 성공에 대한 집착이나 신분 상승이 아니라 행복 추구이다. 이것은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행복을 가져다주는 남자들은 능력보다도 지위보다도(물론 능력과 지위도 모두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마음씀씀이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드라마 속 신데렐라의 변신은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한 사회의 한 단면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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