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슨 죄 있어 여기 누웠느냐"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5.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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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묘지 비석에 새겨진 피맺힌 절규

 

▲ ⓒ시사저널 임준선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안장된 광주광역시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시립 묘지인 망월동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졌던 유해는 17년이 지난 1997년에야 이곳으로 안장되어 평안에 들었다.
6백20여 기 묘지 앞 비석에 새겨진 비문 하나하나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나 다름없다. 군홧발에 짓밟혔던 그날의 참혹한 상황과 살아남은 가족들의 애달픈 그리움 그리고 금남로를 내달리며 외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립 5·18민주묘지관리소가 비문을 모아 지난해 말 펴낸 <당신이 잠든 곳에 우리 맘 함께 있네> 중에서 발췌했다.

문용동(남·28세) | 군의 투입 공수부대 개입. 터질 것이 터져버렸다. 반 기절한 시민을 업어다 병원에서 치료했다. 누가 이 시민에게 돌을, 각목을, 총기를 들게 했는가. 이 엄청난 시민들의 분노는 어떻게 배상해줄 것인가. 대열의 최전방에서 외치고, 막고, 자제시키던 내가 적색분자라는 말인가…. 무언가 진정한 민주주의 승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역사의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리라. -문용동의 일기장 중에서-

류동운(남·19세) |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동운의 마지막 일기 중에서-

이정연(남·20세) |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우리가 사랑했던 것 괴로움 당했던 것,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이정연의 일기 중에서-

김형진(남·31세·1983년 사망) | 오, 하느님 다시는 이 땅에서 국민의 군대가 정권 찬탈의 목적으로 이용되어 국민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김경철(남·27세) | 엄마와 못다 한 정에 울고 있을 나의 아들아! 한보다 더 짙게 새겨진 그리움을 뉘게 말할쏘냐! 내 생이 끝나는 그날, 자랑스러운 네 모습 볼 수 있을 날 기다린다. -에미가-

최미애(여·23세·임신 8개월) |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김영두(남·17세) | 사랑하는 아들아! 17세 어린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한 채 민주화를 외치다 갔느냐. 장하다 내 아들아! 부디 좋은 세상에 잠들거라. -엄마가-

김재평(남·27세) | 아빠!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가슴속에는 언제나 아빠가 살아계셔요.

박성용(남·17세) | 성용아! 행여 올까 하는 기다림 속에서 너는 오지 않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내가 너를 찾을 때가 되었구나. -엄마가-

안종필(남·15세) | 종필아,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게. 너의 숭고한 정신 이 땅의 민주화에 길이 빛나리라.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너를 죽도록 사랑하는 형과 누나가-

임채송(여·43세·2002년 사망), 임채석(남·26세·1988년 사망) | 이름처럼 착하디 착한 채송아! 네가 무슨 죄가 있어 여기 누웠느냐? 그날에 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꽃다운 인생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구나. 옆에 누워 있는 너의 동생 채석이를 폭력도, 억압도 없는 새 세상에서 만나 평화롭게 다시 살아라. 생전에 네가 즐겨 치던 피아노의 아리따운 선율이 하늘나라에서 너를 감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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