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교란 주범 ‘환경 호르몬’
  • 임종한 | 인하대 의대 산업의학과 교수 ()
  • 승인 2010.05.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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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로 들어가기 위해 정상적인 호르몬 작용 방해해…아이들 발육에 지장 주고 암 유발도

우리 몸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세포 속에서 이루어지는 화학 반응을 통해 인체의 여러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러 화학적 반응을 매개하고 촉진·억제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몸속에서 작용하는 효소나 호르몬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것, 또 태아가 자궁에 착상하는 것, 태아가 성장·발달하는 것, 태아가 출산되는 것, 아이가 성장하는 것과 남자 혹은 여자로서 성장·발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호르몬을 통해 매개되고, 조절된다. 따라서 인간 몸의 생리적인 작용은 모두 호르몬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호르몬은 인간의 생리적인 활동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부의 화학 물질이 인체에 들어와 이러한 호르몬 작용을 교란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면, 우리 몸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호르몬 흉내를 내는 이러한 외부 물질을 환경 호르몬(내분비 교란 물질)이라고 부른다. 환경 호르몬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는 학자 및 기관에 따라 그 표현에 다소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미국 환경청(EPA)에서는 ‘체내의 항상성 유지와 발생 과정을 조절하는 생체 내 호르몬의 생산, 분비, 이동, 대사, 결합 작용 및 배설을 간섭하는 외인성 물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1996년에 전문가들이 모인 워크숍에서 ‘생물체 및 그 자손에게 악영향을 미쳐 그 결과 내분비계의 작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외인성 화학 물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 세계야생동물기금(WWF, World Wildlife Fund) 목록에는 67종의 화학 물질이 환경 호르몬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일본 후생성에서는 산업용 화학 물질, 의약품, 식품 첨가물 등 1백42종의 물질을 환경 호르몬으로 분류하고 있다. 내분비계 장애와 관련해 연구 결과 및 그 사례가 보고된 대표적 물질로는 식품이나 음료수 캔의 코팅 물질 등에 사용되는 비스페놀A와 과거 농약이나 변압기 절연유로 사용되었으나 현재 사용이 금지된 DDT와 PCB, 소각장에서 주로 발생되는 다이옥신류, 합성 세제 원료인 알킬페놀, 플라스틱 가소제로 이용되는 프탈레이트 에스테르 및 스티로폴의 성분인 스티렌다량체, 살충제로 사용되는 파라벤, 화장품 속에 자외선 차단제로 많이 사용되는 옥시벤존, 식품 속 산화 방지제로 사용되는 BHA, 프라이팬 코팅제로 사용되는 PFOA, 브롬계 난연제 decaBDE 등이 있다. 환경 호르몬으로 작용하는 물질들 중에 특별히 소비가 늘고 있는 프탈레이트, 비스페놀A 등 유독성 화학 물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생활은 물통, 식기, 젖병, 포장재, 장난감, 의료 기기 등 온갖 화학 물질로 둘러 싸여 있다.

‘자물쇠와 열쇠’처럼 인체에 작용해 철저히 경계해야

지금까지 알려진 환경 호르몬의 작용 기전은 자물쇠와 열쇠에 비유된다. 환경 호르몬은 세포로 들어가기 위해 호르몬 흉내를 내거나, 정상적인 호르몬 작용을 방해하거나 이상 반응을 촉발시켜 몸의 이상과 질병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에 대해 나타날 수 있는 내분비계 장애 물질의 대표적인 영향은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생식 기능 저하 및 생식 기관 기형화, 생장 저해, 암 유발, 이상 면역반응 등이다. 이미 환경 호르몬 때문에 정자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 외에도 정소종양(고환암)이나 요도하열과 같은 기형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유방암, 자궁내막증도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이미 유방암은 국내에서 여성들에게서 가장 흔한 암이 되었다. 환경 호르몬에 대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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