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히지 않는 ‘집단 자살’ 통로
  • 화성·안성모·김세희 기자 ()
  • 승인 2010.05.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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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강촌 등에서 동반 자살 사건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인터넷 사이트가 또 매개체 구실

 지난 5월12일은 ‘죽음의 날’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춘천 두 도시에서만 여덟 명의 남녀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화성에서 다섯 명, 춘천에서 세 명이 집단으로 목숨을 잃었다. 모두 20~30대 젊은 남녀들이다. 연고지는 제각각 달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 5월12일 경기도 화성시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남자 1명과 여자 4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사저널 유장훈

무엇보다 현장에 남은 흔적이 닮았다. 자동차 안과 민박집 방으로 장소는 다르지만, 창을 밀폐시켜놓은 상태에서 화덕에 연탄불을 피웠다. 몇몇은 유서도 남겼다. 경찰은 두 사건 모두 집단 자살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봄 강원도 일대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연탄불 동반 자살’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시 4월 한 달간 강원도에서만 다섯 건의 동반 자살로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장외공단 도로변에 주차된 카렌스 차량에서 시신 다섯 구가 발견된 것은 5월12일 오후 1시10분쯤이었다. ‘경남 71다 1XXX’ 번호판을 단 외지 차량인데다 차창이 온통 검은 비닐로 가려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주민이 신고해 알려지게 되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차량 뒤편 유리를 깨자 메케한 연탄 냄새가 빠져나왔다. 다섯 명 중 유일한 남자인 강 아무개씨(27·경남 남해)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이 차량은 강씨의 차량이었다. 바로 옆 조수석에는 피 아무개씨(22·경기 평택)가 앉아 있었고, 뒷좌석에는 김 아무개씨(22·경기 의정부)와 전 아무개씨(31·충남 천안) 그리고 황 아무개씨(31·서울 은평)가 앉은 채로 숨져 있었다.

차량 내부가 밀폐된 데다 연탄불로 인해 내부 온도가 높아졌는데도 시신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다섯 시간쯤 전에 이들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침 8시께가 된다. 이들이 앉아 있던 좌석 아래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과 와인병, 막걸리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수면제로 보이는 알약도 몇 개 찾아냈다. 숨을 거두기 전 술과 수면제를 복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연탄을 피운 흔적이 남은 화덕은 육포 등 마른 안주 몇 개와 함께 좌석 뒤 트렁크에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이들은 어떻게 한자리에 모여 숨을 거둔 것일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동반 자살을 계획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한 포털 사이트 지식 검색에 자살 문의가 올라오자 피씨가 ‘자살하려면 친구로 신청하라’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알게 된 이들은 이후 메신저로 채팅을 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갔다. 경찰은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화성시에서 발견된 시신은 사고 현장 인근 화성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시사저널 유장훈

은둔형 외톨이었을 가능성 커…유족들도 크게 놀라지 않아

강씨는 사건 하루 전인 5월11일 울산에 간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섰다. 이들이 사용한 메신저 기록에 ‘수원역에서 집결하자’라는 내용이 남은 것으로 볼 때, 강씨가 이날 수원역에서 네 명의 여성을 태운 후 사건 장소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저녁 7시50분께 화성시 관내 CCTV에 제부도 방면으로 강씨의 차량이 들어서는 모습이 촬영되었다.

경찰에서 이번 사건을 사전에 계획된 자살로 보는 증거 중 하나는 유서이다. 차량 내 내비게이션 옆에는 ‘경찰, 구급대원 아저씨, 치우게 해드려 너무 죄송합니다. 지문으로 신분 확인이 안 되면 제 바지 뒷주머니에 주민등록증이 있습니다’라는 유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황씨의 가방 속에는 ‘살아 있는 고통보다 죽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더 빨리 죽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이제 마음이 너무 편해. 남은 가족들은 꼭 행복해야 돼’라는 내용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강씨는 자신의 미니홈페이지를 통해 자살을 예고했다. ‘난 세상을 버렸다’라는 제목의 홈페이지에는 ‘나를 알고 있는 친구들아, 미안하다. 이럴 수밖에 없나 보구나. 정말 미안’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들이 그동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것도 자살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화성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세 명은 직업이 없고, 강씨는 회사원, 김씨는 전문대에 다녔는데, 다들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겪고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대인 관계도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였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경찰은 유족들이 대부분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크게 놀라는 모습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들의 돌발 행동을 항상 걱정하고 염려해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들 다섯 명 이외에도 동반 자살을 함께 시도하려던 사람이 더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알려진 후 화성 서부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여성이 인터넷에 오른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부산에 거주한다는 것 이외에는 구체적인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서에 전화를 건 그 여성은 대뜸 “죽은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고, 이름을 들은 후 “나랑 같이 자살하기로 했던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며 인터넷을 통해 서로 알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자신은 자살을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것이다. “바다를 보면서 마지막을 보내기로 했다”라는 말도 전했다. 실제 바다는 아니었지만 차량은 공단 내에 있는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주차되어 있었다.

이번 사건이 같은 날 오후 5시30분께 춘천시 강촌면 한 민박집에서 취업 준비생 박 아무개(남·27·경기 안양), 한 아무개(남·28·인천 옹진), 방 아무개(남·21·부산 사하) 씨 등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두 사건이 관련이 없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유사한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확산될 수 있다.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자살 카페’는 공개적으로 모습을 감추었지만, 포털 사이트에는 여전히 자살과 관련한 글이 하루에도 수 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인생을 접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자살 날짜까지 올려놓았는가 하면, ‘자살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독하게 마음먹으신 분만 연락주세요’라며 연락처를 남겨놓기도 했다. 실제로 자살을 염두에 둔 글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고, 댓글 대부분은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동반 자살의 통로로 언제든지 악용될 여지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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