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안방에 ‘입체 영상’ 쏘았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5.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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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3D TV 기술 개발 주역들이 말하는 한국 3D TV의 오늘과 내일

3D TV 시장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2백만원대 제품이 나오는 등 가격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LG전자는 3D TV 시장을 자기네가 선도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런 자신감은 앞선 기술력에서 나온다. LG전자는 지난 3월 풀 LED 방식 3D TV(LX9500)를 출시했다. 풀 LED 방식은 빛을 쏘아주는 LED 광원을 전체 화면에 배치한 것이다. 패널 뒤쪽에 LED 광원이 촘촘히 박혀 있어 고른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 LG전자는, 3D TV에서 화질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풀 LED 기술이 화질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LG전자 제공

경기도 평택에 있는 LG전자 LCD TV 연구소에서 3D TV 기술을 개발한 주역들을 만났다. 회로 분야를 담당하며 제품 개발 리더 역을 맡고 있는 김학량 연구1실 수석연구원, 화질 분야를 담당하는 윤주호 화질그룹 수석연구원, 기구(TV 외관을 구성하는 케이스)를 담당하는 김수웅 연구6실 수석연구원, 풀 LED 광원이 되는 백라이트유닛을 담당하는 정주영 CB그룹 책임연구원 그리고 이들의 개발 활동을 지원하고 일정을 조정하는 남정식 R&D기획실 책임연구원이다.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제품을 출시하는 일정이 정해지면 각 분야 연구원들은 최선을 다해 맡은 부분에서 결과를 뽑아내야 한다. 시간이 늦어지는 것은 결국 경쟁력에서 뒤지는 것이다.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출시가 늦어지면 선도하는 기업이 아니라 따라가는 기업이 된다.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전자업계에서는 시간과의 싸움이 더욱 중요하다. 남정식 연구원은 “특정 부서에 의해 개발 일정이 늦춰지는 경우가 발생하면 주말 특근을 해서라도 일정을 맞추도록 종용한다. 개발 일정이 촉박한 경우에는 주말을 반납하거나 밤을 새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발생한다. 이번 개발 과정에서는 백라이트유닛을 담당하는 CB그룹이 가장 애를 많이 먹었다. 개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많이 괴롭혔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기술의 집약체인 만큼 각 분야 ‘소통’이 중요

정주영 연구원은 남연구원이 언급한 백라이트유닛을 담당했다. 백라이트유닛은 풀 LED를 구현하는 데 출발점이 되는 분야이다. 풀 LED 기술은 LG전자가 경쟁사와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정주영 연구원은 도광판을 개발하는 데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도광판은 LED가 쏘는 빛을 디스플레이 패널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얇은 플라스틱판이다. 일반적으로는 화면과 동일한 크기의 도광판 1개를 사용하지만 LG전자는 전체를 30등분해 작은 도광판 30개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도광판과 도광판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며 경계가 뚜렷이 보이는 부작용이 있었다. 정연구원은 “블록 간에 생길 수 있는 번짐을 막기 위해 세로 방향으로 프리즘 패턴을 집어넣었다. 프리즘 패턴이 들어가면서 블록 간 경계를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게 되었고, 각 블록별로 명암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라고 설명했다.

도광판 선행 개발 작업에만 1년이 걸렸다. 여러 버전의 시제품을 만든 후에 양산 개발에 들어갔다. 정연구원은 “도광판은 매우 예민하다. 작은 흠결 하나만 있어도 화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양산 과정에서 고른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모델별로 50~60번씩, 전부 합해 1백50번 정도 새로운 금형을 만들고 버렸다. 지난해 6월에 양산 개발에 들어가서 올 2월에 완료했다. 금형은 수명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20만개를 찍어내고 폐기하는데, 전산 입력 방식으로 레이저 가공하기 때문에 그대로 재생산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시간을 앞당기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품질로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기술은 외면받는다. 3D TV에서 좋은 화질은 곧 품질을 의미한다. 3D TV는 겹쳐진 두 화면으로 입체 효과를 구현하기 때문에 화질이 더욱 중요해졌다. 두 화면이 서로 맞지 않거나 선명하지 않으면 화질이 좋을 수 없고 어지러움증도 유발한다. LG전자의 3D TV는 영상에 관해 조지 루카스 감독이 만든 THX 규격과 전문가 사용을 위한 ISF 인증을 받았다. 윤주호 연구원은 “규격 인증을 받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ISF 담당자는 화면의 모든 부분에서 명암 대비가 일정하기를 원했다. 결국, 화면을 열 구간으로 나누어 각 부분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해서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말했다.

TV 화면 가장자리를 감싸는 테두리를 말하는 베젤을 줄이는 것도 화질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베젤을 줄이는 것이 날렵한 디자인을 위한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3D TV에서는 다르다. 3D TV에서는 주변 환경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수록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 베젤이 좁으면 그만큼 주변과의 경계를 줄일 수 있다. 김수웅 연구원은 “현재 나온 제품은 베젤이 16mm이다. 이 제품도 훌륭하지만 이보다 혁신적으로 줄인 제품이 이미 개발된 상황이다. 광원이 화면 뒤쪽에 있기 때문에 가장자리에서 빛을 쏘는 방식에 비해 베젤을 많이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안경을 개발하는 데에도 직접 나섰다. 3D 영상에서 안경은 두 화면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셔터 방식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셔터 방식은 셔터를 이용해 양쪽 눈을 번갈아가면서 가려주는 것이다. 오른쪽 눈을 가리면 TV에서는 왼쪽 눈에 맞는 화면을 보여주는 식이다. 김학량 연구원은 “안경은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직접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구에 있는 중소기업 안경지원센터에 찾아가서 지원과 도움을 받으면서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라이벌 있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계 시장 선도 가능

삼성전자라는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LG전자 연구원들에게도 활력이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평판 TV 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 1분기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8백40만대와 6백만대를 판매했다.

국내에서 3D TV를 선도하고 있는 것도 이 두 기업이다. 삼성전자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가장 먼저 구매하는 것은 LG전자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 제품을 확인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극복하기 위해 더욱 힘을 기울인다. 두 업체는 기술과 출시 일정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CES나 IFA 같은 국제가전박람회에서 경쟁사가 예상치 못한 기술을 선보이면 연구원들에게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김수웅 연구원은 “예전에는 소니 같은 일본 업체 제품이 벤치마킹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서로 제품을 비교한다. 싸움은 피가 터지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TV에는 다양한 기술들이 집약되어 있다. 다양한 기술들이 유기적으로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갈 때 성공적인 완성작이 나온다. 개발 인력들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는 담당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소통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LG 전자 연구원들은 선행개발회의와 품질회의를 위해 매주 각각 1차례씩 한자리에 모인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운 개발 이슈가 나올 때마다 수시로 모인다.

김수웅 연구원은 “이슈가 생기면 무조건 모여서 바로 회의를 시작한다. 각자 자기 관점을 내세우면서 치열하게 의견을 나눈다. 선장은 필요하기 때문에 결정은 그룹장이 내린다. 매주 하는 회의도 있지만 부정기적으로도 계속한다. 제품 출시 시기와 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시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윤주호 연구원은 “서로가 품질 관리를 한다. 기구에 문제가 생기면 기구가 리더가 되고, 화질에 문제가 생기면 화질이 리더가 되어 회의를 주도한다. 시시때때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특징이다”라고 덧붙였다.

▲ 소비자가 3D TV가 구현하는 화면을 직접 확인하려 손을 내밀고 있다. ⓒ LG전자 제공

■ 2D 영상을 3D로 실시간 변환

3D TV 하드웨어는 이미 출시되었지만 아직까지 3D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콘텐츠가 없다면 재생 디스플레이 기기는 무용지물이다. 콘텐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화·방송·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3D 콘텐츠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새롭게 촬영해서 3D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기존 2D 영상을 3D로 변환하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이다. 영화는 3D 변환 작업을 오랜 기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지난 4월 개봉한 <타이탄>은 짧은 시간에 변환 작업을 끝내 처절하게 실패한 바 있다.

관심이 가는 것은 2D를 3D로 실시간 변환하는 기술이다.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이 관련 기술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시간 변환 기술로 온전한 3D를 기대하기는 시기상조이다. 사람 얼굴을 예로 들면 현재 기술로는 이마는 나오고 얼굴은 들어간다거나 입은 옷에 따라 입체감이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나온다. 액자 속 그림이 입체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업계에서는 품질이 떨어지는 콘텐츠를 양산해 3D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지난 5월13일 ‘서울디지털포럼’을 마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2D를 3D로 제대로 구현하는 마술 도구는 없다. 앞으로 1~2년 후에는 3D 변환 이슈가 부각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무안경 3D TV 

3D 영상을 구현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 기술이 안경 제작 기술이다. 극장이나 3D TV를 통해 3D 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경을 써야만 한다. 안경을 쓰지 않고도 3D를 즐길 수 있다면 3D 대중화는 획기적으로 앞당겨질 것이다. 소비자들도 무안경 3D TV에 대한 관심이 크다.

무안경 3D 기술은 현재 휴대전화에서 구현이 가능하다. 무안경 3D 기술을 적용한 PMP와 태블릿PC 등도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전시나 광고를 위해 야외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 장치에도 무안경 3D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무안경 3D 기술이 TV 속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김학량 연구원은 “무안경 3D 기술은 시야각에 한계가 있다. 3D를 볼 수 있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진정한 무안경 3D는 홀로그램의 형태가 될 것이다. 홀로그램 기술이 언제 상용화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시간은 앞당겨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 3D에서는 다시 PDP로?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 장점은 자연색에 가까운 화면을 구현하고 응답 속도(단위 시간에 노출되는 화면 수)가 빠르다는 것이다.

가격이 저렴해 같은 가격으로 더 큰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전력 소비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밝은 빛을 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PDP는 초기 평판 TV 시장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LCD와 LED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있다. 점차 사양의 길을 걸어가던 PDP가 3D TV 시대를 맞아 다시 주목되고 있다. PDP의 장점이 3D 영상 구현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3D TV는 오른쪽 눈용 화면과 왼쪽 눈용 화면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단위 시간에 많은 화면이 노출될수록 간섭 현상이 줄어들어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 화면이 큰 것도 입체감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가전업계가 PDP 3D TV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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