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정기 품은 ‘인재 터전’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5.2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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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서부 경남 지역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부 경남 지역은 깊고 수려한 지리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예부터 인물이 많이 나던 곳이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은 퇴계 이황과 같은 해에 출생해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을 이룬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가 은거했던 산청군 시천면의 산천재(山天齋)는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 경남 진주시. ⓒ뉴스뱅크

조식 선생은 세파에 휘둘리기 싫다 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마와 후학 양성에만 몰두했다. 그가 단성현감 제수를 뿌리치며 올린 ‘단성소(丹城疏)’는 탐욕스러운 벼슬아치들을 비판하고 임금과 대비를 폄하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등 역대 상소 중 유례가 없는 혹독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노한 명종이 남명을 불경죄로 처단하려 했으나 “우국충정으로 상소를 올린 선비를 처벌한다는 것은 언로를 막는 일이 되어 후세의 비판을 받게 될 뿐”이라는 승정원의 만류로 화를 모면할 수 있었고, 이 일로 인해 남명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명에게서 기개를 배운 문하생 60여 명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중 홍의장군 곽재우, 김면, 정인홍이 3대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서부 경남권이라 하면 대체적으로 거창, 산청, 함양, 하동과 진주를 일컫는다. 대구와 인접한 거창에서는 합천 사람들처럼 대구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 밖의 지역에서 대처로 나간다 하면 대개는 진주와 부산 쪽을 말하는 것이었다.

고려 시대 강주라는 지명으로 시작된 이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하여 좌와 우로 갈리는 경상 우도의 중심지이자 행정·교육·문화의 요충으로 자리 잡아왔다. 경남도청이 부산을 거쳐 창원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진주가 도청 소재지였고, 이 지역에서 인재의 산실로 우뚝 선 명문교가 바로 진주고였다.

진주고는 비단 진주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 뿐 아니라 남해 출신의 김일두 전 대검차장이나 고성 출신의 이천수 전 교육부 차관의 예처럼 인근 지역의 수재들이 유학 와 공부하던 곳이다.

진주는 또한 LG그룹이 탄생한 고장으로 유명하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선대 회장은 1907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출생했다. 삼성을 일으킨 이병철 회장은 1910년 이웃 의령군 정곡면 중교부락에서 태어났다. 중교는 승내리에서 남강을 건너가면 하루 길밖에 안 되는 가까운 동네였다.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 회장은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났다. 승내리에서 북쪽으로 15km가량 떨어진 마을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학교에 다녔던 세 재벌의 시조들

한국의 재벌을 대표하는 세 사람이 엇비슷한 시기에 이웃 동네에서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며 어울렸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그 학교가 바로 진양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초등학교이다. 구인회 회장과 이병철 회장은 한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고, 구씨의 3남 구자학씨와 이씨의 차녀 이숙희씨가 혼인을 맺은 사돈 사이이다. 구씨는 이웃 마을 조홍제 회장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으며, 오늘날의 삼성그룹은 조홍제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동업으로 시작되었다.

장자인 구인회 LG 선대 회장의 밑으로는 넷째 동생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다섯째 동생 구평회 E1 명예회장, 여섯째 동생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있다. 선친인 구인회 창업 회장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구자경 명예회장은 70세가 되던 1995년 1월 장남 구본무 LG 회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본무 회장의 동생들이 구본릉 희성금속 부회장, 구본준 LG상사 대표이사,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이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장관과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6선 의원이다. 구태회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보다 열여섯 살 아래이며 구자홍 LS그룹 회장, 구자엽 LS산전 회장, 구자명 LS-니꼬 동제련 회장, 구자철 한성 회장 등 네 아들을 두고 있다.

승내리의 대성(大姓)은 능성(綾城) 구씨와 김해 허씨이다. 오래전부터 통혼이 이루어진 두 집안은 핏줄로 얽힌 사이가 되었다. 구인회씨의 사업에 허씨들이 합류하게 된 것은 허준구씨(전 LG건설 명예회장)의 LG화학 입사에서 비롯되었다. 허준구씨가 1947년 창립된 LG그룹의 모체 LG화학에 영업담당 이사로 들어가며 시작된 두 집안의 동업은 화목과 협동을 통해 오늘날 LG그룹의 명성을 일구어내는 토대가 되었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2002년 타계하기까지 허씨와 구씨 일가의 3대 55년에 걸친 동업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허준구 회장의 자제로는 장남 허창수 GS 회장과 허정수 전 LG기공 대표이사,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허명수 GS건설 대표이사 사장,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이 있다.

 허준구 회장의 가형인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대표이사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 등 세 아들을 두었다. 허광수 회장의 부인인 김영자 GS칼텍스 부회장은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이다. 김영자씨의 동생인 김영명씨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부인이므로, 허회장과 정대표는 동서지간이 된다. 허광수 회장은 3년 전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사돈 관계를 맺기도 했다.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과 소설가 윤후명씨가 허정구 회장의 사위이다. 이들 간에는 이처럼 혈연과 혼맥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과학기술처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국내 과학 기술 향상에 큰 공로를 세운 최형섭 박사도 진주 출신이다.

산청 출신인 권익현 한나라당 상임고문은 육사 11기로 군문에 들어가 보안사령부 정보처장, 연대장을 지내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 후 연합철강 상임고문과 삼성정밀 전무로 잠시 기업체에 몸담았다가 1980년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1-12-14-15대 국회에 진출했고,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서 지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임태희 노동부장관의 장인이기도 하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도 산청이 자랑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산청에서 태어나 진주중과 부산고로 진학한 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을 차례로 거친 다음 12대 국회에 들어간 뒤 14~16대 의원을 지냈다.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문화공보부장관, 노동부장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뚝심 있고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을 들었다.

서울신문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씨는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17대에 이어 18대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때 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15~17대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 연이어 후보로 나선 경력이 있다.

김영선 의원은 여성 의원으로서 잔잔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거창에서 태어난 그녀는 공무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상경해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1년 다니다 다시 시험을 치러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일하며 경실련 등에서 활발하게 시민운동을 벌이던 중 정치권의 눈에 띄었다. 15대와 16대에는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으로 금배지를 달았고 17대, 18대는 고양시 일산 서구에 출마해 당선했다. 당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지냈고, 현재 국회 정무위원장이다.

역시 산청 출신인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고려대 정외과 재학 중 전국학생연맹 사건, 김대중 사건 등과 관련해 두 차례 제적과 구속의 시련을 겪은 끝에 21년 만에 졸업장을 딴 기록을 갖고 있다. 14대와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18대 국회에 들어 국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폭로해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거창 출신인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일찌감치 부산으로 가 국민학교부터 그곳에서 다녔다. 경남중·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다. 검사로서 중앙정보부에 파견되어 대공 수사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검찰을 떠난 후 신한국당의 부산 북·강서 갑 지구당을 발판으로 15대 국회에 진출했다. 16대, 17대 의원을 연임하며 한나라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아 중진의 위치를 굳혔으나 18대 선거 후보 공천 경쟁에서 밀려 잠시 주춤하던 중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거창 출신 중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로 성상철 서울대병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성원장은 경남중·고를 거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형외과를 전공해 이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TK 인맥의 대부’라고 불리는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장인이다.

진주고는 전통적으로 육사 진학이 활발한 고등학교 중의 하나이다. 백석주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유재열 전 3군사령관, 정화언 전 논산훈련소장이 동문이며 현역 중에서는 이상의 합참의장이 눈에 띈다. 이갑진 전 해병대 사령관은 진주고와 해사를 졸업했다.

법조인 중에서는 판사 출신인 이정우 전 법무부장관과 검사 출신으로서 하동이 고향인 정구영 전 검찰총장을 대표적 인물로 꼽을 만하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하동에서 진주고로 유학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 손회장의 직계 후배인 김수필 SKC 상무도 진주고-서울대 상대를 다녔으며, 이 밖에도 많은 진주고 출신들이 SK그룹에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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