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새 ‘냉전 시대’로 가나
  • 김동현 |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
  • 승인 2010.05.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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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 강경 응징론 대두…한·미·일-북·중·러 대결 구도 예고

 

▲ 지난해 4월2일 이명박 대통령이 G20 금융정상회의가 열린 영국 엑셀런던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회의장으로 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한이 발사한 어뢰 공격이었다는 발표는, 남북한 사이는 물론 주변 국가들 사이에 새로운 냉전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고 있다. 우선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은 지난 5월20일 조사 결과 발표보다 하루 앞서 백악관 공보비서를 통해서 한국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에 의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으로 증거를 검토한 결과 북한의 공격이었다는 결론을 압도적으로 내릴 수 있게 한다”라고 밝혔다. 이 성명은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도발 행위자가 북한이라고 통보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조치였다.

백악관 성명은 또 범행자에 대한 한국의 단호한 대응 조치를 지원하고, 앞으로 이와 같은 북한의 침략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한국의 안보 후속 조치에 협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의 편을 들고 나온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도발 행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응징을 통해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요즈음 미국 의회와 국무부 일각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천안함 침몰은 백악관 성명에서 밝힌 것처럼, 테러 행위라기보다는 전쟁 행위, 침략 행위에 해당된다. 북한의 도발 행위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유엔군 사령부측 정전위원회 대표는 천안함 사건을 엄중히 항의하고,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다짐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제시된 증거물을 직접 검열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정전위원회의 기능을 고려한다면 꼭 반대할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처음부터 조사단에 중국을 포함시켰더라면, 지금에 와서 중국의 협력을 얻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미국과 함께 일본도 한국의 입장을 대폭 지지하고 나섰다.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은 없지만, 상당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일본이 한국 편을 드는 것은 한국이 천안함 사건을 유엔으로 가지고 갈 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 미국과 보조가 잘 맞는 영국이나, 북한을 옹호할 이유나 명분이 없는 또 다른 안보리 상임국인 프랑스도 한국이 원하는 새로운 제재 결의 안이나 의장 성명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못한다. 중국은 북한이 위험한 도발 행위를 저지를 때마다 골치를 앓는다. 중국은 처음부터 북한 개입 혐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중국은 초기에 미국이 취했던 입장처럼, 정확한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 시점에도 중국은 제시된 증거를 검토해보아야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즉, 증거의 검증을 자체적으로 해본 뒤에 중국의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북한산 어뢰로 천안함이 폭파되었다’라는 조사 결과를 뒤엎을 수 있는 반박 자료는 찾기 어렵겠지만, 북한의 잠수함이 개입되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주장을 계속 펼칠 가능성이 크다.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한국의 입장을 지원하자고 설득해도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한편, 러시아의 공식 반응은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도 중국과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한국은 단호한 대응책으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서해 대잠수함 작전 능력 강화와 무력 시위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한·미 연합 대잠수함 작전 훈련 실시나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등은 중국이 반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서해안의 한·미 해군 능력 강화 조치는 중국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만들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압력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 밖에 남북 관계에서, 개성공단을 제외한 기타 모든 경협 활동의 중지나 휴전선 확성기 심리전 활동 부활 등은 한국이 얼마든지 독단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한반도에 새로운 전운의 기운을 몰고 오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한국의 천안함 결과 발표를 ‘남조선의 조작극’이라고 반박하고, 남한의 “그 어떤 응징과 보복 행위에 대해서도 전면전을 포함한 강경 조치로 대답할 것이다”라고 한 점, 그리고 북한의 해군 대변인이 “천안함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한 뒤, 남한이 “사소한 제재나 타격하는, 이런 경우 전면전으로 대답할 것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전쟁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 지난 4월1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클린턴 국무장관과 함께 핵 정상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AP연합

남북 간 긴장 높아지며 6자회담 재개 가능성도 ‘침몰’

북한은 과거에도 위협 행위를 여러 차례 했고,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겠다는 위협적 수사를 구사해왔지만, 남한을 상대로 이번처럼 전면 전쟁 위협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에 대해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이 처한 상황으로 볼 때, 전면전을 감행해 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 내 보수 진영은 ‘한·미 동맹 때문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진보 진영은 ‘아직은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도 남북 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야당이나 진보층은 북한이 천안함 사건의 주범으로 판명되면서 입지가 불안해졌다. 하지만 워싱턴이나 서울의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천안함에 대한 북한의 공격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초래했다”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아무튼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 일본을 한 축으로 하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을 다른 한 축으로 해서 대결하는 새로운 냉전 시대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이런 시각은 남북한 모두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가 확고하고, 따라서 남북 관계는 당분간,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나머지 임기 내내 악화 일로의 길을 밟게 될 듯하다. 남북한의 새로운 대결 국면 돌입과 함께,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도 침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금도 “북한은 결국 자기 고립만 자초하는 도발 행위를 중지하고 비핵화 다자 협상에 나올 것이다”라고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남북은 물론 모든 관련국들이 한 발짝씩 물러서고, 냉철하게 6자회담을 다시 열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중국의 이런 생각들은 단순한 바람이거나 의례적인 표현일 뿐, 대화나 외교의 기능이 급속히 침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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