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거’에 발 묶인 박근혜
  • 조진범 | 영남일보 정치팀장 ()
  • 승인 2010.05.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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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역구인 달성군 다시 찾아…친이계 무소속 후보 강세 보이자 ‘위기감’ 느낀 듯

 

▲ 어버이날인 5월8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구시 달성군의 한 경로당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6·2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심정이 꽤 복잡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수도권 ‘빅 3’로 불리는 서울시장 및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적 방정식이 어떻게 풀릴 것인지 알 수 없는 데다,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수 선거도 어지럽게 전개되는 탓이다.

박 전 대표는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는 5월20일 달성군을 찾았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7일, 1박2일 일정으로 달성군에 내려간 지 13일 만에 다시 지역구를 방문한 셈이다. 박 전 대표는 하루나 이틀 일정이 아니라 선거가 끝나는 6월2일까지 아예 달성군에 머무르며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의 ‘대구행’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우선 당 지도부와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지원 요청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서울에 있으면 끊임없이 지원 요청이 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달성군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대구로 내려왔다는 분석이다. 실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는 박 전 대표의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달성군수 선거의 판세가 ‘심상찮다’는 점도 박 전 대표의 심기를 어지럽힌다. 현재 달성군의회 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이석원 후보와 대구MBC 보도국장 출신의 무소속 김문오 후보, 국민참여당 김건수 후보가 달성군수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이지만, 지역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이석원 후보와 무소속 김문오 후보의 맞대결로 압축되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문제는 무소속 김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김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한국언론재단 기금이사를 지낸 전력을 갖고 있어 ‘친이(친이명박)계’ 성향으로 분류된다. ‘친박(친박근혜)의 본산’인 달성에서 친이 후보가 당선되면 박 전 대표의 체면은 확 구겨진다. 박 전 대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인 셈이다.

물론 김후보는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 지역 정서 때문이다. 오히려 당선되면 박 전 대표를 적극 돕겠다고 말한다. 대신 박 전 대표의 지역 측근으로 불리는 박경호 전 군수와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 이후보를 박 전 대표가 아닌 박 전 군수의 ‘아바타’로 몰고 가는 교묘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박 전 대표로서는 잔뜩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대구 지역의 한 인사는 “달성에서 박 전 대표가 미는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가 군수에 당선된다고 생각해보라. 박 전 대표의 지역구 관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작은 지역’도 관리하지 못하는 인사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달성군수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달성에 상주하면서 이후보의 당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이다.

박 전 대표에게 6·2 지방선거는 큰 의미를 지닌다. 선거가 끝나고 조성될 ‘정치 환경’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참패냐, 완승이냐’에 따라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새어나온다. 지금까지 박 전 대표는 광역단체장 선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대구시장 한나라당 후보 선정 과정에도 일절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계 중진 서상기 의원이 대구시장 출마의 꿈을 접은 것도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한 축을 이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수도권 ‘빅 3’ 선거에서 어쩌면 한나라당의 패배를 내심 바랄 수 있다는 ‘짐작’도 내놓는다. 잠재적 대권 라이벌인 오세훈 후보나 김문수 후보의 패배가 박 전 대표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 분석이다. 한나라당 주류 진영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표의 행보는 막말로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지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이 아닌가. 오후보와 김후보가 야권에 패하면 대권 라이벌이 자연스럽게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라고 말했다.

▲ 5월17일 ‘수도권 발전 비전 발표 및 합의문 체결식’에서 손을 맞잡은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안상수 인천시장 후보(왼쪽부터). ⓒ연합뉴스
한나라당의 수도권 패배는 ‘박근혜 대세론’으로 연결될 수도

 수도권 참패는 ‘박근혜 대세론’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한나라당을 ‘구할’ 정치인이 박 전 대표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천막 당사에서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불패 신화’를 창조했던 이미지와 결부되면서 박 전 대표에게 힘이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남의 한 친박계 의원은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인 지방선거에서는 견제론이 힘을 받는 경우가 많다. 천안함 사태에 따른 북풍 등 변수가 많지만, 여당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선거이다. 수도권 참패는 수도권 국회의원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친이 성향이 많은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박 전 대표의 그늘로 들어오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는 당장 6월 말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완승하면 주류인 친이계의 행보가 탄력을 받는다. 당을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반대의 경우라면, 상황이 1백80˚ 달라진다. 당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주류 진영에서 이탈하는 인사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수도권 패배가 전당대회에서 ‘대표 추대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를 향한 친이계의 ‘구애’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때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다가 세종시 문제로 박 전 대표와 소원해진 김무성 원내대표의 역할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절대 두 마음을 먹지 않는다’라며 박 전 대표를 향해 변함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대표가 지방선거 이후 친이계와 친박계의 가교로 적극 나선다면 ‘박근혜 대세론’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선거 불개입’ 원칙을 천명한 박 전 대표가 아이러니하게 지방선거 영향권에 깊숙이 빠져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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