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다시 생각한다
  • 염재호 / 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10.05.3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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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7대 대통령인 고 앤드류 잭슨은 엽관제(spoils system)를 정착시킨 대표적인 정치가로 꼽힌다. 그는 공직자를 임명할 때 선거에서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골고루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공직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정치가보다는 전문적 능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좌절되었다. 선거에서 가필드 대통령을 도와준 대가로 자신을 프랑스 영사로 임명해달라고 조르던 귀토라는 청년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통령을 암살한 것이다. 능력 부족을 이유로 임명을 거부한 가필드 대통령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에서는 행정의 전문성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침 영국에서도 귀족 중심의 행정 운영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전문적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실적주의(merit system)라는 제도로 정착시키게 되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는 얼마나 지역 행정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출마했는가? 선거 과정에서는 후보자들의 정책 비전과 정책 집행 능력에 대한 검증이 가능했던가? 정치권에서는 유권자들에게 뚜렷한 정책의 차이를 부각시켜 선거에 임했는가?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교육감, 교육위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광역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들이 그들의 정책 비전이나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었는가?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한 정책 비전이나 그들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실종되었다. 정치권에서는 천안함 사건, 4대강 개발 사업, 전교조 문제, 무상 급식 실시 등의 이슈만을 부각시켜 지방선거를 치르려고 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집권 여당에 대한 정치적 심판과 야당에 대한 이념적 공세로 치러진 느낌이다. 중도적 가치는 없고 극단적이고 과장된 정치적 구호만이 난무하고, 이를 이용해 운 좋게 선출되려고만 하는 후보자들의 기회주의적 선거였다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에서 기호 순서가 결정되자 이를 보고 사퇴하는 후보자들의 교육 철학은 과연 무엇인가?

지역의 특색에 맞는 정책 비전, 지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 개발,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 방안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후보자의 능력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없이 선거가 이루어지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커진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지방선거가 단순히 공천 거래와 여야 간 정치적 논쟁의 소용돌이에서 실종되는 것은 이번 선거로 종식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여야도 이제는 국민들에게 이념적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화합과 이성의 합리적 경쟁을 보여주어야 한다. “질서 또는 안정을 추구하는 정당과 진보 또는 개혁을 주장하는 정당 둘 다 있는 것이 건전한 정치적 삶을 위해 중요하다. … 분명한 것은 바로 상대편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가 이성과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의 경구를 6·2 선거 후 여야 지도자들은 한번 곱씹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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