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진 중국, ‘균형 외교’로 방향 틀까
  • 박승준 | 인천대 초빙교수 ()
  • 승인 2010.05.3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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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원자바오 총리 회담 통해 부정적 이미지 씻으려 할 가능성 커…‘북한 처리’ 놓고 미국과 사전 협의 거칠듯

중국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천안함 침몰로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을 이제 중국도 더 이상 외면하기만은 어렵게 되었다. 좀처럼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중국인 탓에, 그 의중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정확히 읽어내기 위한 주변의 시선도 뜨거워지고 있다. 향후 중국의 입장 선택이 한반도 정세에 큰 분수령이 될 것은 자명하다.  

중국이 만약 북한을 향해 ‘옐로카드’라도 꺼내들 생각이 있다면, 중국은 사전에 미국과 의논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을 둘러싼 한반도 국제정치학의 기본 틀이다. 미국 역시 현재로서는 한국의 조사 결과나 대북 제재 조치들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북한에 대한 제재 행동에 나설 경우 중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구조는 40년 전 미국과 중국이 역사적인 데탕트(detent)를 하는 과정에서 헨리 키신저 미국 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과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짜놓은 틀이며, 그 틀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월24일과 25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전략경제대화(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에서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논의 내용은 중요하다. 이 회담이 끝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번 대화 기간 동안, 중국과 미국 쌍방은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쌍방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중국측은 현재 당면한 형세 아래에서 관련 당사자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라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출발해 냉정과 자제력을 발휘해서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하며, 긴장을 업그레이드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더 이상의 구체적인 논의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클린턴 장관 역시 ‘한국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수사 이외에 구체적인 미·중 간 협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물론 클린턴 장관은 5월26일 서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을 만났을 때 협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전달했을 것이다. 클린턴과 미국측 참가자들이 이해한 중국의 대처 방안을 자신들이 해석하는 방식으로 우리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통해 조율 과정을 이미 거친 미국과 중국의 천안함 사건 처리 방침의 ‘차이나 버전’(China Version)은 5월28일 제주도에 도착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이대통령에게 귀엣말로 전한 내용은 무엇일까. 그 내용의 골격은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원자바오 총리의 한국·일본·몽골·미얀마 4개국 순방 계획 발표를 하면서 사전에 설명한 내용 가운데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은 1992년 8월에 수교한 이래 신속한 관계 발전을 이루었다. 관계의 등급은 그동안 세 차례 업그레이드되었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쌍방은 정치적인 신뢰를 부단히 심화시키고, 경제·무역 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를 확대하며, 국제 문제와 지역 문제에서 양호한 의사 소통과 협력을 유지하기로 했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최대 무역 동반자이며,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며, 한국은 중국의 최대 수입 대상국이다.”

장즈쥔 부부장은 이번 방문에서 중국이 기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은 이번 방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 첫째, 양국 고위층 간의 전략적 의사 소통을 강화하고, 정치적인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양국 간 경제·무역 협력을 진일보 강화하고, 양국 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가속화해서 양국 간의 이익으로 얽힌 유대를 강화하며, (중략) 이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국제 문제와 지역 문제에 대한 의사 소통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장즈쥔 부부장의 설명은 원자바오 총리가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달성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명박-원자바오 회담을 통해 한국과 중국이 2008년에 맺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과시함으로써 지난 5월3일 베이징에서 있은 후진타오와 김정일 회담의 부정적 영향을 씻어보려는 것이 기본 목표였을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던 ‘5개항의 건의’와 같은 골격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용을 한국과도 체결하는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이 북한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남북한과 동시에 ‘고위층 간에 긴밀하게 의사 소통을 하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도를 원자바오 총리의 방한을 통해 전달하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 방한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왼쪽)가 5월28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자바오 ‘귀국 보따리’에 담길 내용이 중요

문제는 과연 원자바오 총리가 제시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용들이 한반도 정세 완화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물론 원자바오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천안함 사건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조치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라는 틀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을 것이다. 또, 그런 틀이 이미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의 베이징 전략경제대화 과정에서 조율되었음을 설명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중국이 말하는 냉정과 자제력의 발휘가 결코 한국을 상대로 한 말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동등한 무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중국의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바오 총리가 가지고 온 보따리가 한반도 긴장 완화에 당장의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원자바오 총리는 한국에 와서 후진타오-김정일 회담의 타이밍이 너무나 부적절한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불만 어린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제주도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원자바오의 머릿속에는 천안함 사건의 유엔 안보리 처리가 불가피하며, 중국이 좀 더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칫 한국의 민심을 잃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바오 총리는 4개국 순방 결과를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중국 최고 지도자인 원자바오 총리가 정치국에 보고할 내용 속에는, 향후 유엔 안보리에서의 천안함 사태 처리 과정에서 중국이 취할 태도가 어떤 방향일지를 좌우할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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