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보면 한국 대응 흐름 보인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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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 관계자 “천안함 침몰 직후 / ‘테러 이후 미국’을 롤 모델로 검토” 국가안보총괄기구 신설 등 움직임도 유사

2001년 9월11일 오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인근 펜타곤(국방부) 등에서 대형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은 이른바 ‘9·11 테러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전세계는 경악했고, 미국은 그동안의 안보 패러다임을 확 바꾸었다. 9·11 사태는 미국 안보 역사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미국인들에게 자신들도 외부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미국의 안보 정책은 ‘9·11 테러 전(前)’과 ‘9·11 테러 후(後)’로 확연히 갈렸다.

9년의 시간 차가 있지만, 지난 3월26일 한반도 서해상에서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 사이에는 ‘9·11 테러’와 상당한 함수 관계가 존재한다. 46명의 천안함 승조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 사건으로 다시 한번 전세계는 충격 속에 빠졌고, 우리 군의 안보 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었음이 노출되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가 터지자마자 청와대가 ‘9·11 테러’에 대해 면밀한 검토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월 중순 ‘비보도’를 전제로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진 이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과 후의 미국 안보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의 안보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특히  9·11 이후 미국 내에서 안보 의식이 어떻게 강해졌는지를 분석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가 “9·11 테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라고 발언한 시점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어뢰나 기뢰에 의한 피격설’ ‘피로 파괴설’ ‘암초 충돌설’ 등 갖가지 관측과 억측이 난무하던 때였다. 사고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미국의 9·11 테러 이후의 안보 정책 등을 벤치마킹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지금, 우리 정부의 향후 대응 기조를 가늠해보는 잣대로 9년 전 미국의 ‘9·11 테러 후’ 상황이 관심 있게 부각된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의회는 테러 세력과 그에 동조한 세력에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부시 대통령에게 포괄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했다. 한 달 후에는 국내 테러 차단을 위한 ‘애국법(PATRIOT ACT)’을 제정했고, 9·11을 ‘애국의 날’로 지정했다. 일련의 강경 정책을 편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90%를 넘어섰다. 2004년에는 ‘정보 개혁 및 테러방지법’을 제정했고, ‘국토안전부’와 ‘국가 대테러센터’(NTCT)를 창설했다. 미국은 9·11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에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은닉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대로, 청와대가 9·11 테러 사건을 롤 모델로 삼았다는 정황은 건군 이래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주재한 것으로 알려진 5월4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그 일면이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안보총괄기구 구성 등을 통해 안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이 언급한 국가안보총괄기구가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신설한 ‘국토안전부’와 유사하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특히 대통령 안보특보를 신설하고, 위기관리센터를 개편하는 방안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해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NSC),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정보 기관을 총괄하도록 했던 조치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 2001년 9월11일 일어난 미국 비행기 테러(왼쪽)와 천안함 사태 사이에는 상당한 함수 관계가 존재한다. ⓒAP연합

천안함 사건을 ‘테러’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 나오기도

이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원인이 밝혀지는 대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고, 이는 실제로 5월24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나타났다. 이 역시 미국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강경 노선을 견지했던 것과 맥이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비슷한 점은 또 있다. 9·11 테러 직후인 9월14일 부시 대통령이 무너져내린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잔해 더미에서 “이 빌딩을 파괴한 자들이 곧 우리의 얘기를 들어야 할 차례이다”라고 외쳤던 것과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5일째인 3월30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대통령이 ‘위험 지역’인 백령도를 전격 방문했던 것 역시 매우 흡사한 그림으로 그려진다. 

여권 내부에서도 9·11 테러와 천안함 사태를 연결 짓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핵심 실세로 통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5월18일 종합편성·보도 채널 선정 로드맵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놓여 있는데 그동안 너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9·11 사태가 미국 역사를 9·11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만든 것처럼 천안함 사건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언급했다. 9·11 이후 미국에서는 안보가 최우선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다. 청와대와 여권에서 잇따라 ‘9·11 테러’를 언급하는 것 역시 향후 안보 문제를 중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9·11처럼 ‘테러’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테러는 비정부 주체가 정치나 종교적 목적 등을 달성하기 위해 민간인에게까지 무차별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 주체(북한)가 민간인이 아닌 군인을 겨냥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천안함 사태와 9·11 테러 사이에는 외형상으로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알카에다는 독립된 영토와 국민이 없는 반면, 북한은 그렇지 않다. 알카에다는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혔지만, 북한은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사건 이후 한·미 양국이 보여주는 일련의 안보 정책 등이 유사하다는 분석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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