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심리전’을 두려워 하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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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전광판·비행 기구 등으로 전개 / 탈북자들 “북한 체제 정체성 약화에 큰 영향”재개해도 북한 정권 정면 비판은 피할 듯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대북 심리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 정권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심리전 재개 선언’ 자체가 바로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라고 말한다. 북한이 곧바로 ‘조준 격파’ ‘개성공단 폐쇄’ 등을 언급하며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의 심리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북자 출신으로 대북한 심리전을 전개해 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 정권에서 보면 해군 기지 하나 부수고, 초소 몇 개 날리는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심리전 자체가 정권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의 전단을 보고 엄청나게 놀란 적이 있다. 그 내용이 오랫동안 각인되었다. 그만큼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대표는 또 “심리전을 하면서 국지전이 일어난다면 북한군 상당수가 총을 놓고 도망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북 전문가들의 의견도 박대표와 비슷하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대북 심리전은 남한 사회의 발전상과 북한 체제의 모순을 시청각적으로 전파함으로써 북한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체제 정체성 약화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호열 코리아정책연구원장은 “김정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게 되면 듣는 것조차 두려운 상황이다. 남한의 심리전에 맞서 북한도 심리전을 해야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러다 보면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실상이 일방적으로 노출되는 부담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심리전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가 된다. 대남 적대 의식을 강화시켜서 군사적 충돌을 부추길 수 있다”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 심리전이 중단되기 전까지 북한의 심리전 수준은 매우 낮았다. 국방부에서 대북 심리 전문가로 활동했던 김 아무개씨는 “북한은 확성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FM 송출만 한다. 그런데 전력이 약해서 많이 해봐야 3~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전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향후 대북 심리전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일단은 1994년 6월 장성급 회담 직후 중단된 시점과 비슷한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북 심리전은 국군 심리전단에서 맡고 있다. 1991년 3월에 창설된 국군 심리전단은 2004년 6월 이후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임무를 재조정했다.

대북 심리전을 중단하기 전까지 심리전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진행되었다. 확성기를 통한 대북 라디오 방송이 대표적이다. 지난 1962년에 시작된 대북 라디오 방송은, FM 방식으로 확성기를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주기적으로 방송을 송출했다. 확성기는 휴전선 일대 최전방 초소인 GOP 철책 약 94곳에 설치되었다. 이곳에 심리전단 요원들이 파견되어 방송 업무를 전담했다.

 

▲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 재개를 결정한 가운데 5월24일 백두산부대 최전방 GOP 장병들이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탈북자 단체 대표 “기구에 달러·위안화도 넣어 보내야 효과”

한 대북 심리 전문가는 “확성기는 북한측에 잘 들릴 수 있는 지형을 선택해서 설치한다. 방송 내용은 심리전단에서 만든 후 FM 방식으로 송출하면 전방 초소에 있는 심리전 요원이 확성기를 통해 북쪽에 내보내는 방식이다. 보통 하루에 15~16시간을 주야로 나누어 방송했다. 방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로 야간에 실시했는데, 보통 낮에는 북쪽 전방 12km까지, 밤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24km까지 소리가 들린다”라고 말했다.

확성기를 통해 방송되는 내용은 대한민국의 우월성 홍보, 자유민주주의 사상 전달, 남한의 풍요로운 삶 등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1998년 이전에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는 주로 홍보 위주로 방송을 편성했다.

대형 전광판을 설치해서 심리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심리전을 중단할 때까지 전방 초소 약 11개 지점에 전광판이 설치되었다. 전광판은 북한 쪽에서 가장 잘 보이고 효과가 높은 지점에 설치하고, 관리는 해당 부대에서 맡았다. 전광판의 크기는 보통 가로 100m, 세로 15m 크기였으며, 문구도 확성기 방송 내용과 비슷했다. 전광판의 형태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계속 바뀌었다. 초기에는 나무를 덧댄 함석판에 글자를 써넣는 일종의 ‘간판’ 형식이었다. 글자를 수시로 바꿀 수 없고, 밤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후에 등장한 것이 전구를 이용한 전광판이다. 이전보다 훨씬 개량화되었다. 글자를 수시로 바꿀 수 있고, 무엇보다 야간에 운영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반면,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더욱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국군 심리전단에서 일했던 전문가들은 “전광판의 문구는 사안에 따라 합참에서 내려보내거나 심리전단에서 하달하면 해당 부대의 담당 병사가 조작했다”라고 말했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통해 북한으로 전단지나 물품 등을 보내기도 했다. 국군 심리전단에서는 이를 두고 ‘기구 작전’이라고 불렀다. 기구를 통한 심리전은 주기적으로 실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북쪽으로 가는 바람이 세게 불 때를 이용해서 날려보냈다는 것이다. 주로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담은 전단지를 보냈으나 각종 생필품을 담아 보내기도 했다. 기구 안에는 특정 지역에서 살포되도록 타이머를 단 폭파 장치가 설치되었다. 즉, 풍향과 풍속을 계산한 후 타이머의 시간을 맞추면 기구가 날아가다가 설정된 지점에서 폭파되는 방식이다.

정부가 대북 심리전을 중단한 이후 그 몫은 탈북자 단체들이 맡았다. 탈북자 단체들은 기구에 전단지나 라디오 또는 북한 화폐 등을 실어 날려보내고 있다. 단파 방송과 인터넷 등을 통해 심리전을 전개하는 단체도 있다.

향후 정부 주도로 전개되는 대북 심리전은 이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북한 체제를 정면 비판하는 것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며칠 전에 국군 심리전단에서 사람들이 왔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향후 대북 심리전을 펼치더라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체제 비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전처럼 미스코리아 사진이나 넣는 방식으로는 별 효과가 없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정면 비판을 해야 하고,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를 넣어야 북한 주민들의 호응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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