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은퇴 더 늦췄으면…”
  • 이영미 | 일요신문 기자 ()
  • 승인 2010.05.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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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월드컵③ 황선홍 감독 /“월드컵에서 실패 많이 한 원인은 경험 미숙…팀워크가 제일 중요”

2006년 6월23일 밤 10시. 한국과 스위스의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 최종전이 열렸던 독일 하노버 경기장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서울식당’이라는 곳에 방송 3사 해설위원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차범근 감독, 유상철·이용수·황선홍 해설위원 등이 스위스전에 대한 아쉬움을 주고받으며 식사 겸 술을 한 잔씩 하고 있는데, 잠시 후 황선홍 위원은 격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때 그를 쫓아 나간 기자는 그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 눈시울을 붉힌 그의 모습은 4년이 흐른 지금도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원정에서 한국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주심의 오심과 경기 흐름을 놓치는 바람에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제가 좀 월드컵에 한이 많은 편이잖아요. 아마 그래서 더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아요.”

부산 강서체육공원 내에 위치한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황선홍 감독은 기자가 4년 전의 일을 상기시키자 잠시 회상에 잠기며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2002년 월드컵 때 내 나이가 35세였는데, 지금 43세인 걸 보면 시간 참 빠르네요. 하긴 (박)지성이가 대표팀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진짜 격세지감을 느낀다니까”라고 말한 뒤 한참 동안 웃었다.

▲ 지난 5월14일 부산 아이파크 축구팀 연습구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황선홍 감독. ⓒ일요신문

■ “안정환이 조커 역할 맡는다면 1백20% 소화해낼 것”

축구 선수 황선홍은 2002년 전 까지만 해도 ‘월드컵’ 하면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없었다. 워낙 축구팬들의 화살받이로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10년 넘게 골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살았어요. 1994년 미국월드컵 때 볼리비아전이 최고였죠. 그때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바람에 ‘똥볼’ ‘개발’ 황선홍이 된 거예요. 그래서 2002년이 저한테는 너무나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 잡아요. 만약 2002년 폴란드전에서의 첫 골이 없었다면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공격수 황선홍’은 빈손으로 은퇴를 했을 테니까요.”

황선홍 감독은 여느 월드컵 때보다 해외파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이번 대표팀을 보며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이런 선수들과 같이 한 번 더 뛰어보고 싶어요.(웃음) 우리가 월드컵에서 실패를 많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경험 미숙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 보니 그들이 대표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들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아요.”

한때 부산 아이파크에서 감독과 선수의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던 후배 안정환에 대해 황감독은 남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만약 정환이한테 조커의 역할을 맡긴다면 1백20% 소화해낼 수 있는 선수예요. 조커는 경기 흐름을 바꾸거나 아니면 결정을 해줄 때 필요한 존재인데, 정환이가 그 몫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전 앞에서의 골 결정력만큼은 정환이를 능가할 선수가 없잖아요. 정환이가 투입되면 수비수 몇 명은 끌고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드필더 쪽에서 공격해 들어가기가 훨씬 수월해지죠.”

황감독은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주장인 박지성을 보며 새삼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눈에는 여전히 나이 어린 후배이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통해 박지성의 존재감을 절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황감독은 박지성이 이번 월드컵을 마치고 대표팀에서 은퇴한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금 지성이가 은퇴한다는 것은 너무 아쉬워요. 박지성 없는 대표팀은 상상이 안 가니까요.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뛰어야죠. 나는 서른다섯까지 오기로 버틴 것이고, 지성이는 2002년, 2006년 모두 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좋은 모습 을 보이면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지성이를 대신할 만한 후배가 나타난 다음에 은퇴해도 되지 않을까요? 대표팀에 지성이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경기를 본대요?”

인터뷰 말미에 이번 월드컵에서 누가 첫 골을 넣을 것 같느냐고 묻자, 그는 “아마도 (박)주영이가 넣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면서 “그런데 월드컵에서는 공격수보다 미드필더들이 골을 더 많이 넣기도 한다. 원톱으로 설 경우 고립이 되다 보니까 2선에 있는 선수들한테 찬스가 더 많이 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연 많은 남자’이자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 이동국에 대해서도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동국이는 월드컵에 대해 굉장한 부담을 갖고 있을 거예요.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국내파’로만 인식될지, 아니면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달라지게 되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려야 해요. 주전으로 나온다면 찬스 한두 번은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것만 집중해서 잡아내겠다고 마음먹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황선홍 감독은 지금 선수들의 면면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지만, 이 화려함이 어떤 팀워크를 형성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수들 모두 월드컵에서 사고 한번 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선후배가 희생과 인내를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황선홍 감독에게 ‘월드컵’은 ‘과거형’이 아닌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그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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