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월드컵 유치’로 가는 길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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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내 정세상 한국에겐 쉽지 않은 싸움…‘유치 경쟁력 지표’에서 공동 6위에 머물러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축구 전쟁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라운드 뒤편에서는 치열한 스포츠 외교전이 준비되어 있다. 오는 12월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서는 2018년·2022년 월드컵 개최지 두 곳이 결정된다. 남아공월드컵은 월드컵 유치를 희망하는 나라들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무대이다.

▲ 남아공월드컵 예선 무대에서 포착된 각국 응원단 모습들. 맨 왼쪽부터 호주, 한국, 미국, 일본. ⓒ연합뉴스

2018년·2022년 두 곳에 복수 지원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2022년 월드컵 개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2018년 월드컵은 유럽에 배정될 것이 기정사실처럼 알려져 있어 비유럽 지역에서 개최할 2022년에 역량을 모으는 것이 현실적이다. 다행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유산은 대한축구협회가 지닌 밑천이다. 경기장, 숙박 등에서는 이미 상당한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러나 월드컵 유치를 위한 인프라 요소는 FIFA 입장에서는 도찐 개찐이나 마찬가지인 변수이다. 이미 정치·경제적인 이해 집단으로 변모한 지 오래인 FIFA에게는 축구 외적인 변수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FIFA 내 정치적인 맥락은 그들이 가진 경제 권력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막대한 이권 때문에 FIFA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2006년 남아공월드컵으로 FIFA가 거두어들이는 수입은 대략 33억 달러(4조2천여 억원)에 이른다. 이 중 월드컵에 사용될 12억 달러, 개발 사업이나 각국 축구협회에 지원될 10억 달러 정도를 제하고도 10억 달러(1조2천여 억원) 정도가 수익금으로 남을 전망이다.

월드컵에는 이처럼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다. 당연히 FIFA 내의 정세를 이해하는 작업은 월드컵 유치의 타당성을 따지는 데 매우 요긴하다. 한국이 2002년 월드컵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일본과 공동 개최하는 성과(일본에서는 공동 유치를 ‘패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를 거둔 데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FIFA 회장이던 아벨란제의 노골적인 일본 편애 때문이었다.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등 반(反)아벨란제 세력들은 이에 대해 반감을 가졌고, 이런 분위기는 한국이 파고들 틈새를 만들어주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미 FIFA 내 정치 다툼에서 수혜를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이 원칙은 그대로이다. 현재 FIFA 내부에는 꼬인 것이 많다. 이 꼬인 각각의 관계들은 월드컵 유치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된다. 그런데 꼬인 것을 하나씩 풀어보면 한국의 월드컵 유치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일단 내년에 있을 FIFA 회장 선거에서는 블래터 현 회장이 한 발짝 앞서 있다. 블래터 회장은 지난 한·일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도 일본 손을 들어준 사람이고 정몽준 부회장과도 종종 갈등을 일으켜왔다. 일단 한국의 친구는 아닌 인물이다.

▲ 지난해 5월8일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의장에서 만난 블래터 FIFA 회장(오른쪽)과 빈 함만 AFC 회장. ⓒ연합뉴스
■ 대한축구협회, FIFA 회장뿐 아니라 AFC 회장과도 ‘악연’

블래터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모하메드 빈 함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 역시 대한축구협회와 악연이 있다. 함만 회장은 지난 2009년 5월8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총회에서 정몽준 FIFA 부회장이 지지를 표명한 셰이크 살만 바레인 축구협회장을 제치고 FIFA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월드컵 개최지는 집행위원의 표로 결정된다. 당시 함만 회장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을 겨냥하며 “죽여버리겠다”라고 폭언을 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바 있다. 블래터·함만 등 FIFA 수장을 노리는 축구계의 거물들과 한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은 국내 유치에 득이 될 리 없다.

FIFA가 월드컵 개최지를 정하는 기준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결국, 얼마나 수익을 올리느냐로 수렴된다. 수익을 보여주는 지표는 평균 관중 수이다. 최근 20년간(1990년 이탈리아월드컵~2006년 독일 월드컵) 열린 월드컵 대회의 평균 관중 수를 비교해보면 어디에 비교 우위가 있는지 분명해진다. 가장 많은 평균 관중 수를 기록한 월드컵은 1994년 미국월드컵으로 6만8천9백91명이었다.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5만4천1백9명)과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4만8천4백11명)이 뒤를 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적은 평균 관중을 기록한 대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4만2천5백37명)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는 외신의 전망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현재 스페인-포르투갈, 네덜란드-벨기에(이상 공동), 잉글랜드, 러시아, 미국 등은 2018년 월드컵과 2022년 월드컵 중 하나를 유치하겠다고 밝혔고, 한국과 일본, 카타르 등은 2022년 대회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 유치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 2월 미국의 축구 전문지
<월드 풋볼 인사이더(World Football Insider, 이하 WFI>는 2018년·2022년 유치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WFI의 ‘유치 경쟁력 지표(Bid Power Index)’에 따르면 10점 만점의 10개 항목(조직 운영과 리더십, 흥행 요소, FIFA와의 관계, 재원 확보, 정부와 국민 지지, 국제 홍보, 경기장 계획, 안전, 교통과 숙박, 개최 의의) 중 한국은 총 56점을 얻어 공동 개최를 신청한 스페인-포르투갈, 네덜란드-벨기에와 함께 공동 6위에 올랐다. 한국은 7개 항목에서 평균 정도의 점수인 6점을 얻었지만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흥행 요소 부문으로 4점에 그쳤다.

■ 외신, ‘2022 호주’ 유력시…흥행 성적 좋았던 미국이 ‘복병’

1위는 잉글랜드로 100점 만점에 64점을 받았고, 호주가 2점 뒤진 62점으로 2위를 달렸다. 카타르와 러시아가 공동 3위(이상 61점), 미국(60점)이 5위에 랭크되었다. 일본은 한국보다 3점이 낮은 53점을 받으며 9위에 그쳤다.

우리는 일본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외신을 모아보면 2018년은 잉글랜드, 2022년은 호주가 유력하다는 분위기가 짙다. 2018년은 유럽 대륙, 2022년은 비유럽 대륙이 개최지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2022년에 남는 곳은 아시아(호주는 아시아축구연맹으로 편입되었다)와 북미 대륙이다. 일단 한국과 일본은 2002년 대회를 유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흥행에서 뒤떨어진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1994년 월드컵에서 유례없는 흥행을 보인 미국은 FIFA가 ‘다시 한번 미국에서’라는 슬로건을 걸고 싶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장소이지만 상대적으로 호주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보듯 최근 FIFA의 경향 가운데 하나가 경쟁력 있는 신흥 개최지를 밀어준다는 점도 호주에 긍정적인 신호이다.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호주 대표팀은 조별 라운드를 단숨에 통과했고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만나 패했다. 그렇지만 “사실상 이긴 게임이었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인상 깊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월드컵 유치에는 자국 대표팀의 경쟁력도 적지 않은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다.

따지고 보면 2022년 월드컵에 대한 한국의 야망은 갑자기 발생했다. “뜬금없어서 듣는 순간 ‘진짜?’라고 반문할 정도였다”라는 한 축구 전문 기자의 말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지난 2009년 2월3일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 단독 유치할 계획을 밝혔는데 흥미로운 것은 유치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인 1월23일 신임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월드컵 추진 여부에 관한 질문에 “현실성이 없다”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국가적인 결정은 열흘 만에 뒤집어졌고, 축구 관계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본에 대항한 신청인지, 한국 축구 도약을 위한 비책인지, ‘잠룡’ 정몽준 대표의 정치적인 승부수인지 그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일단 뛰어들었다면 좋은 결과를 얻어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일단 홍보전에서부터 밀리는 분위기이다. 단적으로 지난해 12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미디어 엑스포에 잉글랜드는 데이비드 베컴을 내보냈고, 스페인-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등 세계적인 축구 선수를 대동했다. 심지어 카타르는 자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아르헨티나의 슈퍼 스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호주에서는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이 홍보 비디오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조금이라도 미디어의 관심을 붙잡아두려는 각국의 노력이 엿보였다.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된 한국 참가단의 모습이 다른 유치 희망국들과 꽤 대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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