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라크 전쟁’을 쏘다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6.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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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실리 모두 잃은’ 전쟁의 실체에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들 잇따라 개봉

이 정도면 유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할리우드를 필두로 영국과 프랑스 영화계가 이라크 전쟁에서 소재를 구하고 있다. 여전히 화약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이라크의 혼돈은 여러 영화감독에게 영감을 던지고 있다. 1970~80년대를 베트남전 영화들이 풍미했다면, 바야흐로 2010년대는 이라크 전쟁 영화의 전성기가 예상된다.

 

 

■ 노골적으로 이라크전 비판한 <유령 작가> <루트 아이리시> <엘라의 계곡>

이라크전 영화는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을 띠고 신랄한 야유를 퍼붓는다. 옮고 그름이나 개전 명분이 명확하지 않은 참극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2일 개봉한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프랑스 영화 <유령 작가>(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노골적으로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전 수행을 공격한다. 전 영국 총리는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서스펜스를 구성해가는 이 영화는 미국에 동조한 전 영국 총리를 몹쓸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의 밑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인사는 자신의 옛 ‘주군’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면서 그 이유를 당당하게 밝힌다. “전범 밑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분개한 것이지.”

최근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상영된 영국 영화 <루트 아이리시>(감독 켄 로치)도 부도덕한 전쟁을 고발한다. 이라크에 파견되었다가 시체로 돌아온 한 사설 경호원의 죽음을 파헤치는 친구의 분투를 다루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복수로 서구의 잘못을 응징한다. 세계적인 좌파 감독인 로치의 영화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치는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전범이다.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미국 영화 <엘라의 계곡>(감독 폴 해기스)도 직설적 언사로 이라크전을 공격한다. 아들의 죽음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된 퇴역 군인 아버지가 찢겨진 성조기를 거꾸로 게양하는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다. 도덕성을 상실한 미국은 긴급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 오락성 띤 전쟁물도 비판적 시각 잃지 않아

개량주의적 시각을 지닌 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라크전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적인 시각의 날줄과 오락성이라는 씨줄을 절묘하게 엮어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의 주인공 <허트 로커>가 대표적이다. 폭발물 제거팀장의 내면을 통해 전쟁의 중독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캐슬린 비글로는 뉴욕타임스 이라크 특파원의 말을 인용해 ‘전쟁은 마약이다’라고 정의 내린다. 전쟁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쟁의 실체를 집요하게 바라본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그린 존>(감독 폴 그린그래스)은 비판적 블록버스터이다. 전쟁영화가 지닌 스펙터클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라크전 발발의 숨겨진 단초를 파헤친다. 상업적인 영화임에도 이라크전의 진실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할리우드의 최근 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디어 존>(감독 라세 할스트롬)과 <브라더스>(감독 짐 쉐리단)는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의 비극을 각각 빌려와 변형된 멜로와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전쟁영화라는 장르적 특징에 더 방점을 찍지만 전쟁이 낳은 아픔과 후유증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 돌아온 <브라더스>의 샘 대위(토비 맥과이어)는 말한다.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던가? 난 전쟁의 끝을 보았다. 그런 내가 다시 살 수 있을까?”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전쟁의 트라우마에 끝없이 시달리는 미국의 현실을 집약한 말이다. 최근 개봉되는 영화 속에서 미국은 이라크전에 대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잃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1980년대 중반 남학생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미드(미국 드라마)’ <A-특공대>가 다시 온다. <브이> <전격 Z작전>이 TV 시리즈로 리메이크된 데 이어, <A-특공대>는 화력을 키워 극장판으로 리메이크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특공대원들이 누명을 쓴 채 탈옥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해결사로 활약한다는 설정의 <A-특공대>는 당시 꽤 높은 인기를 누렸다. ‘도저히 각이 안 나오는’ 작전을 ‘무대뽀’ 정신으로 수행하는 데다, 주변 사물들을 개조해 무기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육체 노동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중·하위층 정서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A-특공대>의 백미는 독특한 개성의 4인방이 펼치는 환상의 팀워크이다. 리메이크의 관건도 튀는 개성을 소화하고 인물들 간의 조화를 만들어낼 캐스팅에 있었다. 극장판의 캐스팅은 합격점이다. 기상천외한 작전을 짜는 한니발은 <테이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을 보여준 리암 리슨이 맡았다. 수려한 외모로 정보를 캐내는 멋쟁이는 TV
<섹스 앤 더 시티>의 로맨틱 가이 브레들리 쿠퍼가 맡았다. 비행의 달인이나 ‘똘아이’인 머독은 <디스트리트 9>에서 외계인으로 변하는 주인공 샬토 코플리가 맡았다. 또, 핵주먹 B.A는 이종격투기 챔피언 퀸튼 ‘램페이지’ 잭슨이 맡았다.

<A-특공대>는 ‘출발 드림팀’이 ‘무한도전’을 펼치는 격이니, 액션영화 팬들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한 영화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하다. 베트남 전쟁 참전 대원이던 원작의 설정이 이라크 전쟁 참전 대원으로 옮겨오고, 미군과 CIA(미국 중앙정보국)와 용병이 멕시코로, 이라크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독일로 부단히 오가며 활극을 펼치는 것을 보노라면 ‘미군은 전세계를 상대로 내전 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머독의 ‘똘끼’는 <허트 로커>의 주인공과 다르지 않은 경험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이 베트남 전쟁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6월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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