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개방 현실 반영인가, 성 상술인가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6.0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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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 동성애를 보는 두 시선 / 판타지 아닌 가족 문제로 부각시켜

 

▲ SBS 드라마 . ⓒSBS 제공
동성애는 여전히 금기인가. 아니면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인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이른바 동성애 콘텐츠들은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것은 좀체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동성애에 대한 우리네 대중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징후일까. 아니면 자극적인 소재로서의 동성애를 통해 대중의 시선을 끌어보겠다는 상술에 불과한 것일까.

 

1996년도에 제작된 국내 최초의 본격적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는 남자끼리 주먹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는 장면을 묘사했다. 당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을 테니, 19금 영화라도 남자들끼리의 진짜 키스는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드무비>(2002년)나 <후회하지 않아>(2006년) 같은 작품 속에서는 적나라한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외국 영화인 1997년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나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은 영화 미학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성취를 통해 동성애라는 특수한(?) 소재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애를 찾아냈다. 남녀의 멜로가 상투적인 틀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을 때, 동성 간의 사랑은 성별을 뛰어넘음으로써 인간 대 인간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왕의 남자> 같은 작품은 엄밀히 말해 동성애 콘텐츠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성애를 집어넣어서 사당패의 예술혼과 애환을 좀 더 인간애에 가깝게 그려낸 작품으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보편적인 영화’가 되었다.

아무리 영화를 통해 예방 주사를 충분히 맞았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TV라는 매체가 사실상 모든 세대에게 열려 있다는 그 보수성은, 드라마가 동성애 소재에 접근하는 것을 우회하게 만들었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작품은 동성애 콘텐츠가 아니라, ‘동성애 코드’ 콘텐츠로 대중에게 선보여졌다. 남장 여자를 활용해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이용한 드라마이다. 최근 종영한 <개인의 취향>은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 경우가 되겠다. <개인의 취향>은 동성애 코드 콘텐츠들이 전형적으로 구사해 온 이야기, 즉 동성애자로 오인받은 한 남자가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지만, 그 속에는 실제 동성애자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 속의 동성애 코드는 어디까지나 판타지를 그 목적으로 그릴 뿐, 실제 동성애자의 현실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대중들의 관심이 동성애자의 현실보다는 판타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만큼 대중이 갖는 드라마 속의 동성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은 여전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벽 또한 조금씩 균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 코드를 다루던 몇몇 기존 드라마들과는 달리 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가족 드라마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를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동성애자인 태섭(송창의)은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유채영(유민)에게 어렵게 커밍아웃을 하고, 유채영은 그 상황을 힘겹게 받아들이면서 “미안하다”라는 태섭에게 “그것이 네 잘못은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유채영과 그런 그녀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태섭은 이들이 남녀 관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다른 사랑’이라는 이성적 판단 넘어 감성적으로도 받아들이게 해

이것은 김수현 작가가 바라보는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랑이 있고, 그것을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만 다른 것일 뿐 틀린 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그저 이성적인 판단으로서 동성애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동성애를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태섭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것은 동성애자를 사회적으로 아직 인정하지는 못하더라도, 가족의 시선으로 선선히 받아들이는 그 가족애가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동성애자라도 우리는 너를 가족으로 사랑한다”라고.

드라마는 확실히 과거보다 훨씬 더 자주,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대중들의 공감까지 얻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네 사회의 성 의식이 그만큼 개방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동성애의 외피로서의 꽃미남 같은 남성이 사실은 또 하나의 성 상품화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지금 동성애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바로 이 개방된 성 의식과 성 상품화라는 두 측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긴장 관계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드라마의 성패를 위해서도, 또 그 드라마가 만들어낼 사회적 영향력을 보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 ⓒMBC 제공
이른바 동성애 코드 콘텐츠로서 성공의 기치를 올린 작품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이 작품은 남장 여자 코드를 활용해 새로운 청춘 멜로를 그려냈다. 사실은 여자이지만 남자인 척하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는 금기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묘미를 선사했다.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사실은 남장 여자였다는 파격적인 상상력이 덧입혀졌고, 그 신윤복을 사랑하는 이가 김홍도라는 설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 동성애적인 관계는 그러나 이들의 예술혼과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상쇄되었다. <개인의 취향>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장선에 있는 드라마로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속에 제목처럼 취향의 이야기로서 동성애를 등장시켰고,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를 가족 드라마라는 틀 속에서 다루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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