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신형 엔진 ‘차세대 리더’ 떴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6.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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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는 6·2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충남 대표 주자’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충청의 대표 주자’라는 표현도 섞었다. 과거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 전 총리도 몇 차례 언급했다. 그의 뒤를 이어 자신이 충청의 새로운 대표 주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공식 선거 마지막 날인 6월1일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충청의 대표 주자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대표로 뻗어나가겠다. 충청의 자존심을 새롭게 세우겠다”라고 사자후를 토했다. 안당선자의 전략은 적중했다. 충남 도민들은 단순한 ‘지역 일꾼’보다도 전국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지역 대표 주자’를 원했다. “우리도 전국구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라는 그런 자부심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지역 출신의 대표 주자들에게 항상 들러리만 서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마지막까지 표심을 정하지 못했던 부동층은 막판에 ‘지역 일꾼론’보다 ‘충청의 새 대표 주자론’을 선택했다.

이같은 바람은 강원에서도 불었다. 강원 지역 한 새마을금고의 이사장인 김 아무개씨는 선거를 1주일여 앞두고 “선거 때마다 항상 보수 여당은 강원도를 당연히 자기들 몫으로 치부해왔다. 또, 실제 결과도 그랬다. 하지만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 대접도 못 받고, 필요할 때 그저 표만 준다. 그러니 지금껏 지역을 대표하는 변변한 인물 하나 배출하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이런 지역 정서를 파고들었다. “지역 대표 주자로 나서 대권에 도전하겠다”라는 야망을 드러냈다. ‘강원 홀대론’에 사로잡혀 있던 지역 유권자들은 ‘그냥 평범한 도지사’보다는 ‘강원 출신 차세대 대권 주자’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연합뉴스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는 안희정과 이광재라는 두 명의 차세대 리더를 배출시켰다. 지난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 ‘좌희정·우광재’로 언론에 소개될 때만 해도 이들은 그저 대학 운동권 출신의 ‘대통령 측근’에 불과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역사를 넘어간 2010년의 선택’(안당선자의 말)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크다. 이들은 ‘노무현 정서’를 소중히 하지만, 1960~70년대 산업화 세대의 성과도 간과하지 않는다. 이들이 21세기 정치의 새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적 386세대인 이들은 40대 기수론의 선두 주자이다. 특히 장·노년층 인구가 많고 보수 성향이 뚜렷한 지역에서 야권의 두 젊은 정치인이 이루어낸 성과여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한 정치평론가는 “선거 혁명을 통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학 교수는 “이번 선거는 40대, 혹은 그 이미지에 맞는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들의 차기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강교수를 비롯한 대다수 정치 전문가가 꼽는 차세대 리더군은 안희정·이광재 당선자를 포함해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 등이다. 이들은 모두 40대와 50대 정치인들이다. 정치권에서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라는 점도 있지만, 모두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향후 대한민국 정치 문화의 새 판도를 짜 나갈 세대교체론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그 어느 때보다 20~40대 젊은 층의 투표 참여가 높았던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권 세대교체 요구도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이미 미국과 영국은 40대의 오바마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한국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 혁명이 자리한다. 디지털 혁명이 젊은 유권자들을 빠른 속도로 투표장으로 유도한다. 디지털 혁명이 정치권을 좀 더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속도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지금의 40대 정치인들이 당장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나설 수 있다”라고 밝혔다. 강원택 교수는 “여기에는 40대 유권자를 비롯한 젊은 층 표심의 역할이 컸다. 그동안 침묵했던 386세대들이 과거 민주화의 가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이에 자극받아 이번 지방선거에서 세대교체의 주역이 된 부분이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는 차세대 리더들. 왼쪽부터 오세훈 당선자, 김두관 당선자, 송영길당선자. ⓒ주간사진공동취재 ⓒ 연합뉴스

세대교체 움직임, 여권보다 야권에서 더 거셀 듯

정치권의 세대교체 움직임은 여권보다는 야권에서 더 세게 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성민 대표는 “40대의 흑인 대통령처럼 대개 파격은 야권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민주당에 40대 386 정치인들이 대거 광역단체장으로 진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밝혔다. 고원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 또한 “그동안 야권에서는 리더십 자원의 고갈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가 없었는데, 이런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같은 차세대 리더군이 경쟁적 다자 구도를 형성하면서 정체된 당내에 활기를 불어넣고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민주당에 차세대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해 그동안 당의 취약점으로 분류되어왔던 당 조직력의 약세, 지역 내 당원들의 분열과 대립 등을 일거에 해소하게 되었다. 지난 1970년대 양김씨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고 전면에 등장한 것 못지않게 이들이 빠른 속도로 새로운 권력의 축을 형성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야권의 대권 주자로 불리는 손학규 전 대표, 정동영 의원, 정세균 대표, 유시민 전 장관 등에게도 결국 이들 차세대 리더의 지지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386세대 젊은 정치인들로 인해 정치권에 새바람이 불 것은 확실하다. 다만, 이들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MB 반작용’ 효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40대 정치인들이 겸허한 자세로 가지 않으면 금방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역시 세대교체론의 대세에 흔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헌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여권은 자연스럽게 오세훈·김문수 당선자가 기존의 정몽준 대표와 정운찬 총리를 대체할 만한 주류의 새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김문수 당선자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경북 출신이면서도 수도권에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점을 강점으로 꼽기도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향후 여권은 김문수 대 박근혜 구도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예상했다. 다만, 김당선자의 경우에 아직도 이대통령 측근을 중심으로 청와대 내에 일부 남아 있는 ‘반김문수’ 정서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반면, 여권 주변에서는 오세훈 당선자가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이라는 의미와 개인이 갖는 상품성에 비추어볼 때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약속한 ‘서울시장 중도 사퇴 불가’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2012년 대권 구도에 따라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앞서가는 대권 주자들의 ‘지방선거 계산서’ 

이번 6·2 지방선거는 기존의 대권 주자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즉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선거에 따른 박근혜 전 대표의 득실론은 엇갈린다.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여권이 이기든 지든 부담스러운 선거였다. 분명한 것은 박 전 대표의 힘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보다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라고 밝혔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데, 이를 박 전 대표가 보여주지 못한 점은 고스란히 자신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역할이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지만, 오히려 입지는 넓어졌다”라고 평가했다. 고원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로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존재감을 반사적으로 더 과시할 계기를 마련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나라당 내 주류를 포섭하려 할 것이고, 당내에 치열한 권력 투쟁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박 전 대표의 최대 라이벌은 오세훈 당선자인데,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한계 때문에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위상이 더 공고해졌다”라고 밝혔다.

최진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권 후보 9룡’ 전략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한 후보를 밀어주기보다는 많은 후보군을 내세워서 관리하려 들 것이다. 여기에는 박 전 대표, 오세훈·김문수 당선자 외에도 정몽준 대표, 정운찬 총리, 김태호 전 도지사, 이재오 위원장 등도 모두 포함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야권에서는 손학규 전 대표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386세대 정치인들이 새로운 주류 세력으로 대거 등장한 것은 분명 손 전 대표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들이 손 전 대표를 밀어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정동영 의원의 입지는 좁아들 수밖에 없다. 정세균 대표는 손 전 대표와 당권과 대권을 나누는 역할 분담이 어느 정도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손 전 대표에게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경기도지사 선거 패배로 손 전 대표 성적표에서 점수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으나, 강원·인천·충북 지역의 당선으로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자신이 칩거한 지역이 춘천이라는 점을 활용해 그는 강원 선거에도 남다른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선거 전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손학규·정세균·문재인을 키워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도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손 전 대표의 확실한 지지자로 꼽힌다.

반면, 이번에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유시민 후보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친노 세력이 차세대 리더군으로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철희 부소장은 “경기도지사 패배가 유시민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평가가 점점 더 우세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내에 남아 있던 ‘반유시민’ 정서가 이번 선거를 통해 상당 부분 희석된 점이 유후보로서는 성과이다. 향후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 여부에 따라서 유후보가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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