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만불의 사나이’ 나올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6.1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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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장기’ 기술 발전 가속화…훼손된 곳만 보완해주는 ‘보조 인공 심장’ 개발 주목

 

ⓒ시사저널 사진팀·서울대 병원·연합뉴스

지난 2000년 독일 고고학자가 이집트 미라를 발굴했다. 약 2천5백년 전 것으로 보이는 이 미라는 고고학계보다 의학계의 관심을 더 불러일으켰다. 목재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엄지발가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공 장기의 역사가 오랜 만큼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핵심에 인공 심장이 있다. 미국은 2001년 사람의 심장을 대신할 인공 심장을 공개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지난해 인류의 모든 기술을 집대성한 최고의 인공 심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도 1980년대와 1990년대 인공 심장을 개발해서 동물실험까지 마쳤다. 각국은 경쟁적으로 인공 심장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연구·개발 흐름은 보조 인공 심장으로 모이고 있다. 보조 인공 심장은, 사람의 심장을 떼어내지 않고 훼손된 일부 기능을 보완해주는 인공 장기이다. 좌심실 보조 인공 심장이 대표적이다. 심장 문제의 50%는 좌심실에서 발생한다. 좌심실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한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좌심실에 이상이 발생했다고 해서 심장 전체를 교체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부담스럽다. 인공 심장은 어디까지나 인공 구조물이어서 생체 심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 7cm 길이의 막대기에 스크루가 달린 형태가 최근 개발된 보조 인공 심장의 모습이다. 분당 6천 회전을 하면서 분당 3~10ℓ의 피를 뿜어낸다. 김희찬 서울대병원 의공학과 교수는 “인공 심장을 연구하던 초기에는 완전 이식형 인공 심장의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은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한 가교로서 응용하거나 기능이 저하된 심장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보조해주는 보조 인공 심장이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보조 인공 심장은 사람 심장 모양의 ‘완전 인공 심장’보다 적은 동력으로 움직이는 점이 특징이다. 12볼트짜리 배터리로 구동한다. 배터리는 인공 심장과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생명은 유지하지만 일상생활에는 불편하다. 앞으로는 인공 심장과 함께 배터리도 체내에 이식하는 방법이 나올 것 같다. 이를 위해 소형이면서도 오래 지속하는 배터리를 개발하는 것이 필수이다. 최재순 고려대 한국인공장기센터 교수는 “심장의 기능을 보완해줄 인공 심장은 이미 개발되어 있다. 앞으로는 동력을 적게 소비하면서 수술도 쉬운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심장 자체를 작게 만드는 기술은 나와 있지만, 배터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대량 생산으로 가격 낮추는 연구·개발도 계속돼

나이가 들면 관절에 문제가 생긴다. 흔히 물렁뼈라고 부르는 연골이 닳으면 뼈마디가 쑤신다. 심해지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으므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 금속으로 된 인공 관절로 교체하는 것이다. 무릎과 엉덩이 관절은 물론 어깨, 발목, 척추 등에도 인공 관절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인공 관절과 함께 연골도 이식한다. 남은 숙제는 내구성이다. 현재의 인공 관절 수명은 10~15년이다. 수명이 다하면 인공 관절을 교체하는 수술을 또 받아야 한다. 윤택림 전남대병원 관절센터 소장은 “일부 인공 관절은 무리한 힘을 가하면 깨진다. 인공 관절 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달리기 등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이다. 더 좋은 재질의 인공 관절이 개발되어도 치료비가 고가라는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 2천5백년 전 미라에서 발견한 나무로 된 인공 발가락. ⓒ연합뉴스

서울대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에는 인공 눈이 있다. 눈이라고 해서 안구 형태가 아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2mm 크기의 망막 칩이다. 이 칩을 안구 내부에 있는 망막에 이식한다. 망막 칩을 이식받은 사람은 특수 안경을 쓴다. 이 안경은 사물의 상을 잡아내는 카메라 역할을 한다. 안경이 영상 신호를 안구에 있는 망막 칩에 전송한다. 망막 칩은 영상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비로소 시력을 잃은 사람이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망막의 신경조직을 손상하지 않고 망막 칩을 이식하는 기술, 망막 칩에서 발생하는 열을 최소화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이 기술에서는 한국이 앞선다. 문제는 정상인의 시력만큼 해상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현재 인공 눈으로는 명암을 구별하는 수준이다. 김성준 서울대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 소장은 “정상인처럼 보려면 화소 수가 많아야 한다.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5년 후쯤 되면 거의 정상인처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공 귀는 손가락만 한 플라스틱처럼 생겼다. 이를 귀 뒤쪽에 이식해서 청신경과 연결하면 된다. 인공 귀는 국내에서 개발된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의 김소장은 “기존 인공 귀는 실리콘 칩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금속 덮개로 구성되어 있어 크기가 크다. 게다가 사람이 조립해야 하므로 생산성에도 문제가 있고,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미국에서 10만 달러이다. 우리 연구팀이 지난 2009년 개발한 인공 귀는 종이처럼 얇은 LCP라는 신소재로 만들었다. 크기도 획기적으로 줄였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처럼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어서 가격도 낮출 수 있다. 물론 염증 반응도 생기지 않는다. 앞으로 3~4년 후면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인공 귀로는 조용한 곳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경기장이나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옆 사람의 말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의 귀는 잡음을 걸러내서 원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인공 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공 귀는 어느 방향에서 나는 소리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사람의 말에는 억양과 어감이 있지만, 인공 귀로는 느끼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약하게라도 남아 있는 사람의 청각과 인공 귀의 청각 능력을 복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 기간 길고 투자 대비 수익 적다는 이유로 국내 개발은 ‘주춤’

피부도 심하게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는 장기이다. 국내에서는 외상이나 화상으로 피부가 손상된 사람은 자신의 피부를 이식받는다. 가까운 미래에는 피부 조직을 배양해둔 다음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을 전망이다. 남자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포경수술을 하고 난 뒤 버리는 피부 조직을 이용하는 방법도 나왔다. 문제는 인공 피부에 피가 통하게 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인공 피부 개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다. 실리콘 막이 얇게 붙어 있는 인공 피부를 손상된 피부에 덮으면 7일 후부터 인공 피부에 혈관이 생긴다. 14일 후 혈관에 피가 흐른다. 이후 실리콘 막을 제거하고 한 달쯤 지나면 자연스런 피부가 된다.

 

▲ 고려대 의대 인공장기센터 연구진들이 인공 심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혈액투석기를 이용해 혈액의 노폐물을 제거한다. 1주일에 3~5일을 병원에 가야 하므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 여행도 쉽지 않다.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 최근 개발된 인공 장기가 ‘입는 신장’이다. 투석기와 배터리가 부착된 조끼를 사람이 입는 형태이다. 이 크기를 더욱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공 간은 간세포를 이용한다. 체외에서 대량 배양한 간세포를 비장에 이식한다. 비장의 일부가 간으로 변하면서 간의 역할을 한다. 문제는 양이 적어서 간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해결책으로 비장 대신 복막에 간세포를 이식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간이나 신장은 이식이 가능한 장기에 속하므로 그것을 대체할 인공 장기 개발이 더딘 편이다.

그 밖에도 폐, 혈관, 혈액, 후두, 기도, 식도, 위장, 췌장, 방광, 요도, 말초신경, 음경, 자궁, 항문 등 뇌를 제외한 모든 장기를 인공으로 만들 수 있다. 줄기세포로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인공 장기는 많은 사람의 희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인공 장기 개발이 활발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개발이 어렵고 연구 기간도 길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이 적다는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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