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상태’ 빠진 대북 무역
  • 중국 단둥·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6.1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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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관계자도 남북 경색 국면에 ‘험악한 분위기’ 연출…“잡담이나 좋아하는 남쪽 기자들은 나가라”

이명박 대통령의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발표된 후 당장 직격탄을 맞은 이는 대북 무역업자들이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경제 협력과 교역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단둥(丹東) 지역에서 북한과 무역 거래를 해왔던 국내 사업가들도 졸지에 ‘백수’ 신세로 전락했다.

 

▲ 중국 단둥의 압록강호텔. 이 호텔 3층에는 민경련(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 단둥대표부 사무실이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에 냉기류가 흐르면서 북한을 상대로 밥벌이하던 이들은 그동안에도 노심초사해왔다. 그러던 차에 지난 3월 천안함이 침몰하자 이 지역의 대북 무역업자와 ‘보따리상’들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북한 소행’으로 결론 내리면서 이들의 우려는 참담한 현실로 다가왔다. 무역업자들은 북한산 바지락 등 농수산물과 의류 위탁 가공 제품 등을 평안남도 남포항에서 인천항으로 수입해 들여왔다. 하지만 이 뱃길이 끊긴 것이다. 

남북 교역 중단은 한국인 무역상뿐 아니라 북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단둥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교포 4천~5천명 가운데 30~40%인 1천5백명 정도가 대북 무역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중단둥한인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윤달생 재중단둥한국상회 회장은 “이곳 교민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대북 무역에 종사한다. 주로 작은 농산물을 다루고 있다. 의류 위탁 가공업자들은 (북한에서) 한창 일을 해야 하는데, 교역이 중단되면서 실질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앞으로 장기간 북한산을 수입하지 못한다면 북한 제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메이드 인 차이나’로 상표를 바꾼 다음 한국으로 들여가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만약 북한 제품을 중국 상표로 바꾸어 한국으로 수입할 경우 북한산 제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중국 세관에 고스란히 관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단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기자에게 “남북 교역이 다 막혀 환장할 지경이다”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1990년대 중반에 단둥에 온 한 사업가도 “대북 사업가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라고 말했다. 

이곳 대북 상인들은 현재 ‘꽉’ 막힌 남북 관계를 관망하는 입장이다. 북한에서 꽃게 등을 수입해 온 박 아무개씨는 “대북 무역이 막힌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면서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될지 관망하고 있다. 당장 이곳을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교역 중단이 올해를 넘어 장기간 계속된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가 빨리 해결되고 금강산과 개성공단 문제도 원활하게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물품이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에 있는 대남 경제 협력 공식 창구인 ‘조선민족경제련합회 단둥대표부’(민경련)를 거쳐야 한다. 단둥 시 중심가에 위치한 압록강호텔 300호에 있는 민경련은 그동안 북한 산지 증명서를 발급해주고 한국인 무역상이 대금을 납부하는 등 남북 교역의 창구 역할을 해왔다. 천안함 발표 이전까지만 해도 대북 무역상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진이 찾아간 6월4일 오전에는 민경련 관계자 두 명만이 20평 규모의 사무실을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진의 갑작스런 방문에 크게 당황한 듯했다.

민경련의 한 관계자는 “어디서 왔느냐”라고 거칠게 물었다. “<시사저널> 기자인데 단둥에 취재 왔다”라고 말하자, 바로 “할 말 없으니 나가달라. 말하고 싶지도 않고, 말해봐야 뻔한 것이니까. 남쪽 기자들은 잡담하는 거나 좋아하고…”라며 문 밖으로 취재진을 강제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굳게 닫혔다. 우리 정부의 천안함 제재 조치 이후 북한의 예민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반응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 지난 6월1일 중국 단둥 압록강에 북한 선박이 정박해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은 신의주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해 11월 단행했던 화폐 개혁의 후유증은 진정 기미 보여

우리 대북 업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민경련 역시 할 일이 없어진 셈이다. 단둥의 한국인 무역상들은 북한이 민경련 사무실을 폐쇄할지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다른 용도로 활용할지, 아니면 남북 관계가 호전될 때까지 잠정 폐쇄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반면, 북한과 중국의 교역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무역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왕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단둥과 신의주 시를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에는 화물 트럭의 행렬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중국산 밀가루가 상당량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현지 무역업자들은 전했다.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값비싼 쌀 대신 밀가루를 들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둥의 한 언론인은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북한에 식량을 포함해 대량의 물자를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북한으로 전해진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국산 주방용품 등 생활 물자도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대량 들어가고 있다. 요즘에는 벽지나 유리 섀시 등 건축 내장재가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 현지 소식통은 “평양시에 짓고 있는 주택 10만 세대에 필요한 자재가 부족해서 중국 쪽에서 들여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단둥에서 만난 대북 사업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11월 단행했던 화폐 개혁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는 단둥의 한 인사는 “북한 돈으로 4백원이었던 쌀 1㎏이 화폐 개혁 직후 1천3백원까지 치솟았으나 지금은 안정을 되찾아 예전 값대로 거래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달생 회장도 “화폐 개혁 이후 평양은 거의 제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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