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단둥에서 만난 북한인들“천안함 사태는 남조선 조작극”
  • 중국 선양·단둥·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6.1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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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 지역 현지 취재 / 남·북 주중 대사관 모두 ‘상대방 인사 접촉 자제령’ 내려

 

▲ 중국 단둥 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하구촌(河口村)에서 바라본 평안북도 청수읍. 북한군이 망원경으로 취재진 쪽을 살피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천안함이 침몰한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고 발표한 우리 정부는 6월5일 이 사건을 유엔 안보리에 공식 회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5·24 대북 제재 성명’ 직후 대북 심리전도 준비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북 경협과 교역의 연결 고리도 끊어졌다. 정부는 초강경 대북 제재 조치들을 쏟아냈고, 북한 역시 강하게 반발했다. 다행히 아직 북한과 직접적인 마찰이나 충돌은 없다. 서로를 비난하는 강도도 사태 초기보다 다소 누그러졌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여부와 우리 정부의 북한 돈줄 죄기 전략, 대북 심리전 등으로 자칫 남북 간 ‘대형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남북 간 해빙은 요원해 보인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초긴장 국면을 상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조선족 최대 거주 지역인 중국 동북 3성(랴오닝 성·지린성·헤이룽장 성)의 중심 도시인 선양(瀋陽) 시와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단둥(丹東) 시이다. 남북한에서 파견된 공관원과 기업 주재원뿐 아니라 무역업자, 상인, 노동자 등이 서로 얽혀 살고 있는 곳이다. 남북 관계의 ‘날씨’에 따라 이곳에도 ‘한랭 전선’과 ‘온난 전선’이 교차한다.

<시사저널>은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동향과 북한 주민들의 내부 분위기 등을 파악하기 위해 현지 취재에 들어갔다. 지난 6월1일 중국 선양 시에 도착한 취재진은 4일까지 나흘 동안 선양과 단둥 지역에 머무르면서 북한 관계자들 및 내부 주민들과 다각도로 접촉했다. 현지 남북한 사람들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거나 ‘남쪽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둘러대며 천안함 사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얼굴 표정이 싹 바뀌며 굳어졌고, 대답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대체로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취재진이 첫날 머물렀던 선양의 숙소는 북한이 직영하는 4성급 호텔인 ‘칠보산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에는 북한 고려항공 사무소가 있었고, 오색 한복에 북한 인공기 배지를 단 여성 ‘복무원(종업원)’ 등이 투숙객을 맞고 있었다. 이 호텔은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심심치 않게 방문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취재진이 이 호텔을 선택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 북한이 운영하는 중국 선양 시내 평양관 음식점에서 공연하는 직원들. 중국에서 운영하는 북한 음식점은 저녁 시간에 이런 공연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남조선은 왜 우리 조선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드나”

 선양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천안함 사태’ 등과 관련해서 우리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 당국이 선양에서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 7~8곳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평양관’을 찾아갔다. 이곳은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족과 한국인 여행객들이 주요 고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6월1일 저녁 8시께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는 2백여 석 가운데 10여 석만 손님이 차 있었다.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20대 초반의 여종업원 20여 명이 북한 말투로 쾌활하게 손님을 맞았다. 이들은 북한 당국이 직접 파견한 대학생이거나 대학 졸업자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한 여종업원은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조국의 명령으로 국내(북한)가 아닌 국제 사회에서 봉사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엘리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틀에 박힌 듯한 설명을 했다. 이 여종업원들은 손님들에게 식사 접대를 하면서도 식사 시간 중간에 30분 정도는 노래와 춤, 악기 연주 등으로 만찬의 흥을 돋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공연은 중국 유명 가요 <칭짱고원(靑藏高原)>으로 이어졌고, 가야금 연주와 함께 <아리랑>을 부르면서 끝을 맺었다. 중국 전역에서 북한이 직영하는 음식점들이 대체로 성황을 이루는 비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찬 공연이다. 여종업원들이 손님들 앞의 빈 잔에 직접 술을 따라주며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대화와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여느 중국 음식점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관광객’으로 가장한 취재진도 여종업원들과 처음에는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대화하며 웃음이 오고 갔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 등에 대해 묻는 순간 그들의 표정이 ‘확’ 바뀌면서 거침없이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여종업원 장 아무개씨는 “조국(북한)이 하는 것을 우리는 지지합니다. 남조선이 당당하다면 왜 우리가 보내겠다는 ‘검열단’을 거부합니까? 왜 우리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그럽니까!”라며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잠시 후 다른 여종업원은 취재진의 식탁으로 지난 5월26일자 북한 ‘로동신문’을 갖다 주며 “이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한 뒤 돌아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5·24 대북 제재 담화’ 발표가 있은 후 이틀이 지나 북한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반박 성명과 관련 글이 5면과 6면을 가득 채운 신문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예민한 반응은 ‘칠보산 호텔’에서도 경험했다. 6월1일 밤 11시께 호텔 로비에 ‘범상치 않은 인사’가 나타났다. 그의 양복 왼쪽 가슴에는 ‘김정일 배지’가 달려 있었다. 기자는 그에게 다가가 “북한에서 왔습니까?”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그런데 왜 그러느냐?”라며 경계하는 눈치였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대뜸 “어느 신문사에서 왔느냐?”라며 신경질적인 어투로 되물었다.
<시사저널> 기자임을 밝히며 “얼마 전 터진 ‘천안함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반말로 “할 말 없어. 없어. 바빠서 가야 한다”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가 그를 따라가자 “저리 가!”라고 크게 호통치며 자리를 피했다. 순간 갑자기 나타난 그의 한 일행이 그를 향해 “장영사!”라고 불렀다. 이 호칭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북한 선양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10여 명의 영사 가운데 한 명인 장영일 영사로 추정된다.

김정일 배지를 단 채 이 호텔 커피숍에 근무하는 여종업원에게 “북한에서 왔습니까?”라고 묻자 “조선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북한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라며 기자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남조선은 왜 때만 되면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러지 않았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 뒤 입을 닫았다. 선양 지역의 북한인 동향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한국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발표를 했지만, 이곳 북한 사람들은 ‘남한이 제시한 증거물이 불충분하다’ ‘조작극이다’라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체로 이곳 조선족들은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 한족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은 비단 ‘천안함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계속되어온 남북 경색 국면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선양의 남북 영사관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서로 접촉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지 소식통은 “지난해 말 중국 랴오닝 성이 주최한 송년회에서 남북의 선양 총영사관 직원들이 만나 서로 악수만 했을 뿐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예전에는 북한 영사관 사람들이 남한 기자들과도 접촉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화 통화조차 하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남북 모두 일반 주민들에게도 서로 간 접촉을 자제하라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선양의 한 한국 주재원은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 가급적이면 북한이 직영하는 음식점 등에 출입을 삼가해달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북한도 한국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고 단체로 이동하라는 행동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진이 6월2일부터 4일까지 취재한 북·중 국경 지역인 단둥도선양만큼이나 긴장된 분위기였다. 단둥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한 북한 여성은 “남조선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 증거를 내놓아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기자가 “어뢰에 1번이라고 써 있는 것도 증거가 아닙니까?”라고 하자 “우리는 1번이라고 쓰지 않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우기면 어떡합니까. 능청스럽게 우리를 세계에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막힘없이 쏟아냈다.  

▲ 중국 단둥의 압록강 철교(뒤쪽)와 단교. 압록강 철교는 중국에서는 중조우의교, 북한에서는 조중우의교라고 불리며, 지난 5월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때도 이 다리를 이용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구체적인 북한 내부 사정을 듣기는 힘들어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북한 주민 가운데 남북 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북한에서 업무차 3개월 전쯤 단둥에 왔다는 정 아무개씨는 기자가 “남북 관계가 안 좋습니다”라고 운을 떼자 “그래도 한 동포니까 괜찮아질 것입니다”라고 웃었다.

단둥 건너편이 북한 신의주이기는 해도 북한 내부 사정을 구체적으로 듣기는 쉽지 않았다. ‘천안함 사태’ 등 현안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생각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지만, 내부 분위기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거나 미소로 받아넘겼다. 10여 년 전에 단둥에 온 한 한국 교포는 “북한 내부가 요란하고 시끌시끌한 것 같다. 하지만 단둥에서는 구체적으로 ‘깜’을 잡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단둥에서 취재하는 동안 북한 내부 분위기는 간접적으로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인 5월 말에 북한을 탈출했다는 한 북한 여성은 “(북한에 있을 때) 당 강연회와 소문 등을 통해 천안함 사태를 들었다. 당 강연회에서는 정세가 긴장된다고 하더라. 한국이 조선(북한)하고 싸우려고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라는 북한 정권의 긴장 조성 분위기를 전했다(상자 기사 참조). 북한은 천안함 사태 이후 평양에서 대규모 군중 집회를 열기도 했다. 긴장 분위기를 조성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이며, 요즘도 그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신의주의 최대 곡창 지대인 황금평이 압록강 너머로 건너다 보이는 곳에서도 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해마다 5월부터 모내기가 시작되면 인민군이 농민 지원 봉사를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에는 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인근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 주민은 “군인들이 올해 모내기 작업을 돕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천안함 사태로 군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의 단둥 지역 ‘외화 벌이’는 제법 쏠쏠해 보였다. 단둥 지역에는 북한이 직영하는 음식점이 8곳인데, 매일 성황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6월2일 단둥 압록강 철교 인근에 있는 북한 식당들도 손님들로 넘쳐났다. 5백석 규모에 종업원이 50여 명인 단둥 최대 규모 북한 직영 ‘류경식당’은 저녁 7시께 좌석이 꽉 차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했다. 취재진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식당 인근에 있는 ‘삼천리’와 ‘평양 옥류관’ 등도 사정은 비슷했다. 주변의 다른 중국 식당들이 썰렁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당 강연회에서 정세 들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6월3일 오후 중국 단둥 시 외곽에서 40대 중반의 한 북한 여성을 만났다. 이 여성은 자신을 처음에는 북한에 사는 화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지난 5월 말 탈북한 여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행여나 중국 공안이나 북한 요원들에게 적발되어 북으로 강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눈빛과 말투 속에 그대로 묻어났다.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여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만남 장소와 이름, 고향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어디서 왔나? | 여기서(단둥 시) 2백㎞쯤 떨어진 평안도 ΟΟ시에서 왔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아나? | 지난해부터 전기가 안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못 봤다. 신문도 당 간부만 본다.

그럼 천안함 사건을 모르나? | 알고 있다. ΟΟ시에 있을 때 당 강연회에서 들었다. ‘여론’(소문)으로도 들었다. 

당 강연회에서 무엇이라고 들었나? | 정세가 긴장된다고 하더라. 남
조선이 조선(북한)하고 싸우려고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사정은 어떤가? | 기업소 전기를 다 죽였다. 시당에서도 시간을 정해놓고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탈북 여성은 이 몇 마디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머뭇거림을 반복했다. 그러다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고서 취재진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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