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접수한 MB 사람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06.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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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 회장에 어윤대 내정…‘고대 동문 3인방’이 국내 4대 금융지주 중 3곳 장악

 

▲ KB금융 회장에 내정된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위원회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지난 6월17일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되었다. 어내정자는 고려대 경영학과 63학번으로 이명박(MB) 대통령의 2년 후배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MB와 61학번 동기이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 63학번으로 MB의 경제특보를 지냈다. 이로써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3곳의 회장 자리가 MB의 측근 인사로 채워졌다. 이들 세 금융지주의 최고경영자들은 금융권 합병·매수(M&A)를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만 선린상고를 나왔지만, 그의 고향은 경북 상주이다.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인 대구·경북(TK) 지역에 속한다.

어윤대 KB금융 회장 내정자는 시쳇말로 ‘고소영’이다. 고소영은 MB와 같은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을 일컫는다. 어내정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고 권력자와의 친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다닌다. 그는 MB 집권 초기에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후보에 올랐다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해 낙마했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은행 총재 후보에도 올랐으나 같은 사유로 인해 탈락했다. MB는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이자 같은 교회 신도인 어내정자에게 국가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장관급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KB금융 내부 관계자는 “어내정자가 내정되기 전에도 이미 내정자처럼 보고하고 내부 자료도 제공했다. 심지어 회사 내부에는 M&A나 지주사 인력 현황까지 제공하고 면접 답변 내용까지 제공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MB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이다. 누구보다 MB와 친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어내정자가 김승유 회장보다 MB와 더 가까운지 의문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미끄러지다 보니 MB와 가까운 것으로 비치고 있을 뿐이다. 어내정자는 후배이지만 김회장은 동기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회 회장도 김회장이 맡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회장은 메가뱅크를 주창하는 어내정자를 겨냥해 “메가뱅크도 망할 수 있다”라고 일갈할 만큼 거침없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 63학번이다. MB의 대학 동문이기는 하지만 전공이 다르다. 이회장은 대통령 선거 당시 MB 경제특보를 맡았다. MB와의 인연만 따지면 뒤질 것이 없다. 금융 영역에서 쌓은 경험과 이력은 어내정자를 압도한다. 이회장은 한일은행 상무, 한빛증권 사장,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역임하며 금융 영역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금융통이다. 이와 달리 어내정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을 뿐 금융 영역에서 눈에 띄는 이력이 없다. 이회장은 어내정자가 제시한 우리금융 인수·합병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 지난 6월17일 서울 명동 KB금융지주 본사 로비에서 KB 노조원들이 어윤대 신임 회장 내정자를 거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메가뱅크’ 출현은 시간문제

국내 금융권을 장악한 이들 세 명의 고려대 동문은 금융권 인수·합병을 두고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에서는 6월 넷째 주 매각 공고가 나왔다. 산업은행은 내년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어내정자는 KB금융·우리금융·산업은행을 합쳐 자산 규모가 7백50조원에 달하는 세계 50위권 메가뱅크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 과정ㅇㅔ서 국내 시중 은행이 작은 규모 탓에 보증을 설 수 없었다는 점을 예로 들며 메가뱅크 출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어내정자가 제시한 메가뱅크론이 터무니없이 들리지만은 않는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것은 과 선배인 MB를 빼닮았다. 어내정자는 우리금융 입찰에 나설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어내정자는 내정 소식을 듣자마자 은행 출입기자들과 만나 “우리금융 매각이 진행될 경우 조건을 보고 인수를 검토하겠다. 산업은행 인수에도 관심이 있으나 외환은행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KB금융은 6조원이나 되는 인수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어내정자는 KB금융지주를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과 투자신탁 업종을 아우르는 형태로 전환해 덩치를 키우고자 한다. 우리금융은 우리투자증권·우리자산운용·우리아비바보험 같은 비은행 계열사가 활발하고, 산업은행은 대우증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외환은행은 증권이나 투신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김승유 회장은 우리금융이나 외환은행을 이ㄴ수해 하나금융을 자산 기준 빅 3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의 자산 규모는 각각 3백25조원이 넘는다. 신한금융은 3백11조7천억원이다. 하나금융은 1백93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수익성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신한금융은 자산 기준으로는 3위이지만 주력 계열사 신한은행의 직원 1인당 순이익은 5천7백42만원이나 된다. 하나은행의 직원 1인당 순이익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KB국민은행도 2천4백58만원에 불과하다. 김승유 회장은 우리금융이나 외환은행을 인수해 단숨에 덩치를 키운 후 내실을 다지겠다는 심산이다. 김승유 회장은 지난 6월17일 서울 구로구 지구촌 사랑 나눔을 방문한 자리에서 “하나금융은 우리금융 인수·합병 의지가 분명하다. M&A는 규모보다 핵심 역량을 키우고 시너지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50위권 은행이라도 망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어내정자가 제시한 인수·합병 방식에 반대한다. 이회장은 정부ㄱㅏ 보유한 우리금융 지분 57%가량을 먼저 시장에서 5% 단위로 팔아 민영화한 뒤 국내 대표 금융 기관과 합쳐 대형화를 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은 지금 매물로 나와 있다. 산업은행은 내년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 자산은 각각 3백25조원과 1백72조원이 넘는다. 외환은행도 100조원이 넘는다. 인수 주체가 누가 되든 자산 규모 5백조원이 넘는 초대형 은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규모가 엄청난 데다 금융이라는 업종 특성상 정부 개입을 피할 수 없다. 최고 권력층과 가까운 이들이 금융권 새판 짜기에 나서고 있으니 금융권이 재편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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