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미드필드 전쟁’이다
  • 정효웅 | MBC ESPN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10.06.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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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에서 나타난 전술의 변화와 특징 / 전통적 ‘투톱’ 체제 지고 4-3-3 형태가 대세 이뤄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다. 탄력이 강한 공인구 자블라니와 고지대의 영향 등으로 평균 득점이 감소하고, 부부젤라의 소음에 시달리는 등 생소한 면이 드러난 대회 초반이었다. 그러나 현지 적응을 마치고 본격적인 승점 경쟁이 시작된 조별 리그 2차전부터 많은 골이 터지기 시작했고, 남아공 전통 문화인 부부젤라는 이제 이번 월드컵의 상징으로 거론할 수 있을 만큼 친숙한 아이템이 되었다.

조별 리그 1차전을 모두 마치고 16강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진 현 시점까지 드러난 각 나라들의 전략과 전술을 비교할 때, 구체적인 실행 방법과 세부 전술에 일부 차이는 있어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 가지 흐름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현대 축구의 신흥 패러다임과 궤를 같이하는 ‘미드필드의 시대’라는 부분에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다. 정치면의 기사에도 활용되던 단어인 ‘투톱’의 개념이 서서히 종막을 고하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 이번 월드컵이다.

4-4-2는 1990년대부터 21세기까지 이어져온 현대 축구의 가장 대표적인 전술 포메이션이다. 유명 축구 잡지의 제호로도 널리 알려진 이 전술은, 장신의 포스트플레이가 가능한 타깃맨과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포워드로 짜여진 ‘빅&스몰’ 조합이 상징하는 투톱 공격수 배치를 핵심 개념으로 한다. 그러나 이번 남아공월드컵 대회의 특징은 참가국 가운데 투톱 중심의 4-4-2 전술을 내세운 나라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이 포메이션을 신봉해 온 축구 종가 잉글랜드, 유럽 국가 가운데 세르비아와 스위스 정도가 이 전술을 채택했을 뿐이고, 남미 우루과이의 오스카 타바레즈 감독은 첫 경기 프랑스전에서 4-4-2를 가동해 0-0 무승부를 거두고 나서 바로 2차전 남아공전에서 디에고 포를란과 루이스 수아레즈, 에디슨 카바니 등 세 명의 공격수를 전진 배치하는 전술 변화를 꾀해 이를 통해 3-0의 완승을 이끌어냈다. ‘투톱’과 4-4-2의 시대가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번 남아공 대회의 한 가지 의미이다.

 

▲ 지난 6월16일 새벽(한국 시간) 열린 북한-브라질 경기에서 브라질의 엘라뉴가 골을 넣고 있다. ⓒAP연합

만능형 측면 공격수와 공격 가담형 측면 수비수 중요성 커져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세계적인 축구의 트렌드는 ‘미드필드 지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전방으로 연결해 득점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축구의 기본적 상식일 수도 있겠으나 미드필드 공방전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런 흐름을 명확하게 남아공월드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원 지역에서 볼 소유권 쟁탈전이 펼쳐지고, 이것이 미드필드에 포진하는 선수가 늘어나게끔 유도한다. 볼을 소유한 선수를 포위하는 것과 짧은 패스 조직력과 개인기를 통해 이러한 포위를 뚫고 나오는, 즉 압박과 탈압박의 움직임이 미드필드 지역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된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이번 대회에 4-3-3, 혹은 이와 유사한 전술을 채택한 나라들이 다수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과 포르투갈, 프랑스, 멕시코 그리고 한국의 3차전 상대 나이지리아 등 참가국 대다수의 경기에서 이 포메이션이 나타났으며, 유능한 플레이메이커가 존재하는 독일과 네덜란드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팀이 가동하는 4-2-3-1 시스템이나 리오넬 메시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아르헨티나의 4-3-1-2 시스템 등도 거의 동일한 개념의 전술로 볼 수 있다.

원톱 스트라이커와 좌우 윙포워드, 정삼각형 또는 역삼각형으로 배치되는 3인의 미드필더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미드필드 지역의 숫자를 보강하는 것이 핵심 개념이다. 공격을 할 때에는 좌우 측면 수비수들이 하프라인 이상 전진해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하게 보면 2-5-3의 형태가 될 것이다. 수비로 전환하게 되면 날개 공격수 두 명이 미드필드 지역에 내려와 압박과 볼 쟁탈전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이는 4-5-1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미드필드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융통성이 존재하고, 이러한 차원에서 현대 축구의 흐름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드러나는 이런 전술 기조의 변화를 바탕으로, 특히 만능형 측면 공격수와 공격 가담이 뛰어난 측면 수비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격을 주도하고 수비에 적극 가담하며, 중앙과 측면을 넘나드는 위치 변화까지 가능한 측면 공격수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고 있다. 한국 축구의 상징 박지성을 비롯해, 프랑스의 프랭크 리베리와 네덜란드의 디르크 카이트, 칠레의 알렉시스 산체스와 같은 선수들이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는 인물들이다. 또한, 이번 월드컵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측면이나 최전방 바로 뒤에 위치하는 작고 빠르면서 탁월한 개인기를 지닌 젊은 재능들의 두드러진 활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독일의 메수트 외질 같은 선수들은 중앙을 중심으로 다양한 루트의 공격을 지휘하고 있고, 칠레의 산체스와 멕시코의 지오바니 도스 산토스 등은 측면에서 중앙을 지향하는 형태로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선수들이다.

풀백, 즉 측면 수비수 역시 1차적으로 수비가 본업이지만 공격에 적극 가담할 것을 요구받고 있고, 이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브라질의 마이콘이다. 북한과의 경기에서 믿을 수 없는 각도에서 골을 터뜨리기도 한 마이콘은 현재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각광받고 있는 선수이며, 이 포지션에서 필요한 모든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 독일의 주장 필립 람도 이러한 범주에 포함될 수 있고,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차두리의 활약은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중앙에 위치하며 볼 쟁탈전의 중심에 서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량도 팀 전력을 좌우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의 김정우 선수를 떠올리면 이해가 잘 되는 부분이다. 포백 수비 앞에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1차 관문의 역할과, 공격 지역으로 정확한 패스를 뿌리고 공간이 열릴 경우 자신이 전방으로 쇄도해 득점 기회를 노리는 등 많은 임무를 착실히 소화하는 김정우는 첫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남아공월드컵 초반의 양상은 탄력과 반발력이 큰 공인구 자블라니의 영향으로 중거리슛과 직접 프리킥 등이 난조를 보이며 조금 답답하게 전개되기도 했고, 골키퍼들이 수난을 겪은 바도 있다. 그러나 조셉 블래터 FIFA 회장이 자신의 트위터에서 언급한 바대로 모든 나라가 1차전은 조심스럽게 임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공인구와 기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2차전부터는 불꽃 튀는 공방전이 펼쳐질 것이고 이미 그런 경기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태극전사들이 나이지리아를 꺾고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루는 것과 더불어, 시원한 골이 많이 터지는 재미있는 월드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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