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총장’ 자리 보존 힘드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6.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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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연임 놓고 내홍…“소통 부재 속 독선적인 학교 운영으로 위기 불렀다” 비판 많아

‘교육 개혁의 전도사냐, 소통 부재의 독재자냐.’ 연임 도전에 나선 서남표 카이스트(KAIST) 총장에 대한 찬반 공방이 불붙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교육계에 개혁 바람을 몰고왔다는 찬사와 소통 부재 속에서 학교를 독선적으로 운영해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난이 맞서는 형국이다.

서총장은 대학 개혁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10년간 지내면서 혁신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총장은 지난 2006년 7월 카이스트 총장에 취임한 이후 100% 영어 강의 실시, 교수 정년 심사 강화, 성적 부진 학생 등록금 징수 등을 통해 대학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런데 최근 카이스트 총장 선임을 앞두고 여러 내부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6월 중순께 새 총장이 결정되어야 했지만, 후보 선정 과정부터 순탄치가 않아 일정이 뒤로 밀렸다. 6월 들어 총장후보선임위원회(선임위원회)가 두 번의 회의를 가졌지만, 선임위원 간 이견으로 이사회에 올려야 할 세 명의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권한을 넘겨받은 이사회 역시 첫 회의에서 의견을 모으지 못해 오는 7월2일 총장 선임 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서총장의 임기가 오는 7월13일이면 만료되기 때문에 시기가 더 늦어질 경우 ‘총장 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사회의 낙점을 받은 새 총장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최종 승인을 받는 절차도 밟아야 한다.

총장 선임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서총장을 둘러싼 대립 양상은 일단 수그러드는 분위기이다. 서총장에 대해 비판적이던 교수협의회에서도 이사회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카이스트 전임 교수 5백53명 중 5백10명이 회원인 교수협의회는 신성철 물리학과 교수와 유진 신소재공학과 교수를 후보로 추천해놓은 상태이다. 

카이스트 내에서는 정부 지원과 외부 기부금이 늘고, 국내외에 학교 인지도를 높인 점은 서총장이 거둔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서남표식 개혁’이 진행되면서 불만의 목소리도 점차 쌓여왔다. 김종득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교수협의회보에서 “지난 4년간 총장의 목적이 바르다고 해도 수단과 방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우선 획일적인 영어 강의 원칙이 학력 저하를 유발하는 폐단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계공학과 교수는 “모국어가 아닌 강의를 시행하고 들어야 하는 교수와 학생 모두 학습의 핵심을 꿰뚫어 전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그러다 보니 기초 과목의 학력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인사와 관련해 원칙과 기준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다른 교수는 “신임 교수를 뽑거나 정년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총장의 임의적인 판단이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을 알고 있다. 이 탓에 거의 무소불위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총장에게 아무도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다”라고 비판했다.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받는 것은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전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다가, 학점이 나쁠 경우 최고 7백50여 만원 정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말 학부총학생회와 카이스트 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학부생 91.1%, 대학원생 87.3%가 이러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승 학부 총학생회장(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위해 카이스트에 들어왔는데, 무조건 학점으로 수업료를 부과하니까 답답해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카이스트 캠퍼스 내에 새로 짓고 있는 외국인 기숙사 신축 공사 현장. 오른쪽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서총장측 “개혁 추진 과정에서 피로를 느낄 수도 있는 것”

반박연차를 초과할 경우 수업료 전액을 부과하고 기숙사 신청을 할 때 낮은 순위를 배정하는 데 대해서도 학부생과 대학원생 모두 60% 이상이 ‘반대한다’라고 답했다. 연차 초과 관련 정책의 경우 특히 대학원생에게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진상원 대학원 총학생회장(수학과)은 “분야와 주제에 따라 연구 기간이 다를 수 있는데,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해 3년 안에 무조건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밝혔다.

예산 운용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대학 발전 기금을 펀드에 투자에 손실을 입은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08년도 평가액 기준으로 손실액이 6백억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었다. 당시 주가가 급락하면서 입은 손실이다. 주가가 다시 오르면서 손실액이 17억원가량으로 회복되었지만, 자금 운용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서총장측은 “학교 발전과 대학 개혁에 도움이 된다면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양지원 부총장은 ‘영어 강의가 학력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라는 지적에 대해 “학생들은 수업을 받는 데 무리가 없다. 학년이 낮을수록 영어 실력이 더 좋다. 카이스트에 가면 영어 강의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일부 교수들이 수업을 준비하는 것을 귀찮아 할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교수 임용과 관련해서는 창의력과 전문성이 뛰어난 젊은 교수들이 많이 들어와 대학에 활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 보직교수는 “서총장이 MIT 학장으로 있을 때 가깝게 지낸 스승을 내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동료가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대학 발전을 위해서는 교수들의 정년 심사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등록금을 성적에 따라 차등 징수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반발이 예상되었지만 공부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결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펀드 투자에 따른 손실에 대해서는 너무 공격적으로 투자를 한 부분에는 실수가 있었다고 밝혔다. 양부총장은 ‘소통 부재’라는 지적에 “서총장은 취임하자마자 교수협의회 임원과 학생 대표를 만나 의견 수렴을 했다. 그리고 학과장들이 학교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부분 중 공통된 여섯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피로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카이스트의 우수한 학생과 교수는 능히 소화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덧붙였다.

교과부에서도 서총장에 대해 껄끄러워한다는 이야기 나돌아

서총장이 연임에 성공해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 기조를 계속 밀고나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교과부에서 서총장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임위원회에서 서총장을 이사회에 올릴 후보 중 한 명으로 선정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선임위원회는 총 다섯 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네 명이 찬성을 해야 후보로 선정된다.

선임위원회에는 교과부 담당 국장과 교수협의회 회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그 외의 두 명은 이사회, 한 명은 이사장이 추천한 위원들이다. 카이스트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에 따르면, 이사회와 이사장 추천 위원들은 서총장과 부인의 학교 동문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서총장이 후보로 선정되는 데 반대했을 가능성은 작다. 결국, 교수협의회 회장과 함께 교과부 국장이 반대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교과부에서 서총장을 껄끄러워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서총장이 교과부를 거치지 않은 채 직접 청와대와 상대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카이스트 졸업식에 참석한 것도 서총장과 이대통령이 이전 행사에서 약속해 성사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 정권의 교육 분야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입학사정관제도 서총장이 이대통령에게 직접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당시 교과부 고위 관료들도 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서총장의 말을 듣고 이대통령이 지시를 내렸을 텐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총장을 맡기 전까지 국내에서 이렇다 할 활동이 없던 서총장이 교육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교육계에서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을 수 있다.

 

▲ 지난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위·미래기획위 합동 회의. ⓒ연합뉴스
서남표 총장이 50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접고 2006년 7월 카이스트로 부임하게 된 데는 당시 과학기술 부총리로 재직 중이던 김우식 과학문화융합포럼 이사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세대 총장 출신인 김이사장은 부총리를 맡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참여정부의 실세였다.

서총장이 선임되기도 전에 일부 언론에서 “과기부가 특정 후보를 사실상 총장으로 내정했다”라고 보도하자, 과기부에서 “사실 무근이다”라며 강하게 부인하기도 했다. 앞서 그해 3월 말 MIT 교수로 있던 서총장은 과기부의 첫 번째 울트라 프로그램에 초대된 바 있다. 서총장은 2008년 2월 과학기술 부총리 자리에서 내려온 김이사장을 카이스트 초빙 특훈 교수로 임명했다.

서울대 총장 출신으로 참여정부에서 교육부총리를 지낸 이기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서총장의 서울사대부고 후배이다. 서총장은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이 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자랑스러운 부고인’상을 수상한 동문이다. 이 상의 역대 수상자로는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희범 STX 에너지ㆍ중공업 회장 등이 있다.

이명박 정부 인사 중에서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의 아들 한상준씨가 서총장의 MIT 제자라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재직 중이던 지난해 8월 카이스트 문지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서총장이 원천기술 개발 과제로 역점을 두고 있는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청와대에서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서총장의 인맥으로 통한다. 박수석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있을 당시 교육부와 과기부 통합을 놓고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정책학 박사를 받은 박수석이 ‘MIT 출신’으로 알려질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 온라인 전기차 시승에 앞서 서남표 총장(오른쪽 두 번째)이 말레이시아 장관 일행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총장측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근거 없이 인신공격하지 마라”

두 사업은 지난해 추경 예산에서 2백50억원씩 총 5백억원을 배정받았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예산이 확정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최종 사업계획서가 나오면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예산을 받은 반면, 올해는 지식경제부에 신청을 해 예산을 확보한 것을 두고도 마찬가지 주장이 제기된다. 두 사업은 올해 지경부로부터 1백50억원과 100억원을 각각 지원받을 예정이다.

카이스트측은 우선 ‘제2의 황우석’이라는 말에 대해 “근거 없는 인신공격이다”라며 반박했다.

조성운 온라인전기자동차사업단 팀장은 “시제품을 만들어 기술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도 ‘제2의 황우석’이라며 ‘사기를 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제 경제성을 이야기하는데, 현재 수준에서 부족할 수 있겠지만 기술이 어떻게 정착하느냐에 따라 굉장한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라고 반박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라고 지적했다. 점수가 낮은 항목만 골라냈고, 신기술 개발의 필요성 부문은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절차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타당성 조사를 미리 하고 예산을 반영해야 하는데, 사업을 먼저 시작하고 조사를 추후에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술의 상용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인 모바일하버사업단 팀장은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연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업화·상용화하느냐에 있다. 카이스트에서 공장을 차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 진출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직접 상품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는 단계까지 끝내는 것이 상용화이다. 경제성 부문은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느냐 하는 것인데, 새로운 시장이라서 누구도 판단을 쉽게 할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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