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신진 ‘파워 그룹’ 될까
  • 안성모 기자·김세희 기자 ()
  • 승인 2010.07.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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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외고, 지난 5년간 사법시험 합격자 최다 배출…전체 법조인 수도 경기고 출신 다음으로 많아

“이대로 가면 조만간 대원외고 판이 될 것이다.” 서울 명문고 출신의 한 검찰 고위 간부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동안 법조계에서 주류를 형성해 온 명문고의 간판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아직은 때 이른 감이 있다. 대원외고는 1984년 개교해 첫 신입생을 받았다. 초기 졸업생이 이제 40대 초·중반에 들어섰다. 조직 내에서 고위직을 맡기에는 대부분 경륜이 짧다.

하지만 25년 남짓한 학교 역사에도 대원외고는 그동안 높은 명문대 진학률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해왔다. 지난 1998년 서울대에 1백63명을 합격시켜 정점에 오른 이후 최고의 입시 명문고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에는 서울대에 64명, 고려대에 1백31명, 연세대에 1백15명이 합격했다. 아이비리그 38명 등 해외 대학에도 1백11명이 진학했다. 올해도 서울대 70명, 고려대 1백13명, 연세대 1백39명이 합격해 그 기세를 이어갔다. 그동안 주요 대학에 진학한 총 인원을 따지면 서울대 2천2백59명, 고려대 3천89명, 연세대 2천6백75명, 이화여대 1천4백37명에 이른다.

 

▲ 지난 3월2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41기 사법연수생 임명식에서 연수생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대학 진학 성적이 쌓여가면서 사회에 진출한 대원외고 동문들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그 징후가 가장 뚜렷한 분야 중 하나가 법조계이다. 2009년에 출간된 <한국 법조인 대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법시험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가 바로 대원외고이다. 모두 2백5명으로, 2위에 오른 한영외고 99명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해 초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예비 법조인인 연수원 40기 가운데에도 대원외고가 37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법조인을 놓고 보더라도 경기고 4백41명 다음으로 많은 3백22명이나 된다.

 

법조계에서는 특목고의 선두 주자 격인 대원외고가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의 대표 주자 격인 경기고의 위상을 사실상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까지 간부급에 오른 법조인은 많지 않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법조 권력의 지형이 대원외고 동문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전체 법조인 수에서도 조만간 경기고를 제치고 1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원외고 출신의 대표적인 법조인은 2회 졸업생인 김윤상 청주지검 영주지청장이다. 사시 34회인 김지청장은 지난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있던 그는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첫 법무부 인사에서 장관이 총장과 일부 의견만 들은 것이 개혁적인가”라며 참여정부의 첫 검찰 인사에 문제를 제기해 화제를 모았다.

검찰에는 이외에 7회 졸업생으로 사시 46회인 임황순 검사가 영동지청에서 김지청장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한 해 후배인 8회 졸업생 중에서는 사시 43회인 박규형 검사가 수원지검, 사시 45회인 김준선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시 43회인 춘천지검 원주지청 김도엽 검사와 사시 44회인 서울중앙지검 박성민 검사는 10회 졸업 동기이다. 김지청장은 “30명 정도여서 적은 수는 아니지만, 아직은 경험이 적은 검사가 대부분이다”라고 밝혔다.

현직 판사 58명 활동…법률 시장에서도 ‘핵심’ 될 전망

법조계 내에서도 특히 판사 임용에서 대원외고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이춘석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현직 판사 가운데 대원외고 출신은 58명으로 경기고 출신 38명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까지 두 학교 출신 판사 수가 비슷했지만, 지난해 초 대원외고 출신 15명이 판사로 신규 임용되면서 크게 앞서게 된 것이다.

판사 가운데는 화제의 인물이 여럿 있다. 지난해 1월 사법연수원 역사상 최초로 ‘만점 수료’를 기록한 정현희씨는 현재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정판사는 대원외고 15회 졸업생이다. 이보다 한 해 앞서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최고 성적으로 대법원장상을 받은 손태원씨는 법무관 복무 후 판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손씨는 대원외고 14회 졸업생으로 2003년 행정고시 재경직과 입법고시에 합격해 재정경제부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밖에 대원외고 8회 졸업생으로 사시 41회인 박준석 판사는 수원지법에서 근무하고 있고, 사시 42회인 오규성 춘천지법 판사와 홍성욱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대원외고 10회 졸업 동기이다.

요즘 추세에 맞게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도 다수이다. 3회 졸업생으로 사시 35회인 안홍준 변호사, 6회 졸업생으로 사시 43회인 김인수 변호사 등은 법무법인 광장에서 일한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에는 6회 졸업생으로 사시 37회인 박철희 변호사를 비롯해 백영화(9회)·홍민영(10회)·김지현(13회)·이재걸(15회) 변호사 등 대원외고 동문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법조계에서 대형 로펌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대원외고 출신의 경우 외국어 능력과 함께 글로벌 인맥을 자랑한다.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외국 대학을 졸업한 동문들이 많다. 그런 만큼 향후 법률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면 로펌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백영화 변호사는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외고 출신들 중에 그런 성격이 많다. 또, 법원이나 검찰보다 해외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외국어를 잘하면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대원외고 출신이 사회에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동문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외고 등 특목고 중에서 총동문회가 제대로 운영되는 학교는 대원외고가 유일하다고 한다. 문귀호 총동문회 이사는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는데, 보통 100명에서 1백50명 정도가 모인다”라고 밝혔다. 총동문 모임 이외에 여섯 개 분과별 모임도 이루어지고 있다. 골프·축구·야구 등 동호회 성격의 모임도 있다. 또, 동문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모임도 활발하다고 한다. 총동문회 차원의 멘토링 프로그램은 사회에 진출한 동문들이 재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해주는 것으로 동문들 간 유대감을 높이고 있다.

법조계의 경우 ‘대원 법조 모임’이 있다. 연수원생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1년에 두세 번 정도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최근 검사들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 지연과 학연으로 얽히는 조직 문화를 없애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 내에는 특정 학교 출신이 끼리끼리 뭉치면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대원외고도 이러한 폐단을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하지만 대원외고 출신 법조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기존의 ‘법조 엘리트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역차별을 우려하기도 했다. 김윤상 영동지청장은 “후배들에게 ‘동문이라고 몰려다니고, 서로 끌어주고 그러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등 동문회의 폐해가 있었다. 하지만 대원외고의 경우 걱정이 없는 것이, 워낙 유능한 후배들이 많이 들어왔다. 실력이 없는데 대원외고 나왔다고 이득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선배로서 좀 우려되는 부분은, 대원외고 출신이라 도리어 피해를 볼 것 같다는 점이다”라고 밝혔다.

 

▲ 서울시 중곡동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정문과 서울시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건물을 합성한 사진. ⓒ시사저널 임준선

 

“부장검사는 한 명뿐…발언권 높이기에는 시기상조” 지적도

이 학교 출신인 한 변호사는 “동문끼리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지나친 자부심이 오해를 산다면 좋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부장검사가 한 명밖에 안 되는 등 대원외고 동문들이 법조계에서 발언권을 높이기에는 시기상조이다. 미리 견제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요즘 신세대 문화는 예전과 달라 특유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라면서 대원외고가 법조계 내 ‘파워 그룹’으로 자리 잡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원외고 동문의 힘은 법조계뿐 아니라 사회 각계로 진출한 동문들이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이과가 없어 의학계로 진출한 동문만 적을 뿐 다른 분야에서는 골고루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경제계의 경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많다 보니 모임도 활발하다고 한다. 대원외고 출신의 경제계 인사 중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3회 졸업생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막내인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는 이전무와 동기이다. 건설업체 오너 2세인 최문규 한신공영 이사와 정우석 우남건설 기획실장은 4, 5회 졸업생이다. 채창환 ㈜Turtleback Solar 대표와 구본권 천마콘크리트공업㈜ 대표는 최고 선배 기수로서 모임을 이끌고 있다.

연예계로 진출한 동문도 꽤 된다. 가수 윤종신씨와 김민우씨가 2회 졸업 동기생이다. 김씨는 가수 생활을 접고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배우 유준상씨는 1년 후배이다. 스포츠계에는 유명 골프 선수가 여럿이다. ‘얼짱 골프’로 인기를 얻고 있는 최나연 선수가 20회 졸업생이며, 유소연·김송희·장하나 선수가 23회 졸업생이다. 문귀호 대원외고 총동문회 이사는 “현재 재학생의 경우 저명 인사의 자제들이 일반 학교에 비해 많은 편이기는 하다. 그러다 보니 ‘귀족 학교’라는 식의 말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동문 모임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불우 이웃 돕기, 저소득층 영어 가르치기 등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사고방식 자체가 기존의 명문고 출신과는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대원외고 설립자는 이원희 전 대원학원 이사장(76·사진)이다. 학교법인 대원학원은 대원외고 이외에 대원고, 대원여고, 대원중 등 총 네 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전 이사장은 최근 불법 찬조금 문제로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충남 보령 출생인 이 전 이사장은 학교를 운영하기 전까지 주로 언론계에서 일했다.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한 그는 1957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문화공보부에서 근무하다,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편성계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방송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문화방송 편성과장을 지낸 그는 1964년 개국한 동양방송에 스카우트되어 36세의 젊은 나이에 방송사의 편성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2년 뒤에는 동양방송 TV사업본부장을 거쳐 동양방송· 중앙일보 상무를 지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당시 이 회사의 이사로 있었다고 한다. 후일 이회장은 대원학원 장학재단에 30억원을 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한 적이 있고, 또 경주 이씨로 같은 항렬이라는 인연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전 이사장이 교육계로 발길을 돌린 것은 충남 미산의 한 학교 교장을 지낸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 동양방송과 같은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제일제당(CJ) 전무로 일을 하고 있을 무렵인 1977년 그동안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 대원학원을 설립했다. 학교 설립 자금은 부동산 투자에서 생긴 이익으로 조달했다고 한다. 현재 특수목적고등학교 (특목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외국어고와 과학고가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이규호 당시 문교부장관을 찾아가 외국어고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과학고도 시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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