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 김윤태 |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0.07.06 19: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비방했다’는 시민 내사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경악…늦기 전에 공안 통치 잔재 제거해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보면 국가가 사회 전체를 감시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사회를 암울하게 묘사한다. 모든 개인은 당에 무력하게 복종하고 국가는 모든 사람을 철저하게 조종한다. 국가는 ‘빅 브라더’에 반대하는 모든 행동을 철저히 색출하고 징벌한다. 국가에 찍힌 사람은,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고 전향하도록 강요받는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전체주의의 풍경이 바로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6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신건 민주당 의원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개인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올린 시민을 내사하고 사무실을 불법 압수수색했다”라고 주장했다. ‘쥐코’라는 이름의 이 동영상은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에 빗대어 미국의 한인 유학생이 만든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2백만명 이상의 네티즌이 본 화제의 동영상이다. 그런데 개인 블로그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한 평범한 시민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국민은행에서 퇴직한 후 하청업체 대표로 재직했던 김종익씨는 2008년 국민은행 노무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국무총리실에서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그는 동영상을 곧바로 삭제했으나, 또 다른 시련에 부딪혔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국민은행 부행장을 불러 김종익씨를 ‘조치’하라고 압력을 행사했으며, 회사의 직원까지 취조해 김씨는 결국 대표를 사임하고 주식까지도 처분해야만 했다.

그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 비리를 조사하는 기관이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조사할 권한은 없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이에 대해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은 잘못이다”라고 답변했다.

공직윤리지원관(2급)과 40여 명의 직원들은 국무총리실 직속이지만, 직원 명단에도 없고 국무총리실장(장관급)도 활동 내용을 정확하게 모른다고 한다. 이처럼 지휘 체계에서 벗어난 초법적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촛불 시위 직후인 2008년 7월 신설된 기구로 공직자와 공기업의 비리를 조사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총리가 아니라 청와대로부터 직접 하명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고위공무원에 대한 감찰 기구로 ‘관가의 암행어사’라 불린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소유인 김해시의 한 골프장에서 기업체의 골프 접대를 받은 공직자들을 적발해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촛불 시위와 노무현, 이 두 단어는 공직윤리지원관실 활동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 후 동작경찰서에 소환된 김종익씨는 노사모에 가입한 것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광재 전 의원과 같은 강원도 평창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후원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6월30일 MBC <PD수첩> 제작진은 국무총리실이 동작경찰서에 보낸 명예훼손죄와 공금횡령죄 혐의로 김종익씨를 조사하라는 공문에서 구체적으로 이유를 밝힌 문구를 발견했다. 공문에는 김종익씨가 2006년 가입 후 활동하지 않았던 ‘노사모 핵심 멤버’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 국무총리실은 김종익씨를 경찰에 고발했고, 아무런 혐의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김씨는 결국 검찰에서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현재 김종익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회사에서 쫓겨나고 철저하게 인생이 파괴된 김종익씨는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를 방청하면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 한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회의 직전 국회의 다른 문으로 도망치듯 황급히 사라졌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문제는 ‘영포회’의 존재이다. 야당 의원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청와대의 이영호 대통령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보고해 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공식 라인보다 비선 라인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군사 정부 시절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에서 나타나는 공직 기강 문란 사건이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정부의 영포회라는 일종의 지역적 네트워크에 대해 “과연 이런 부분들을 가지고 제대로 공직 윤리를 잡을 수 있겠냐”라고 지적했다.

 

▲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시사저널 박은숙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한 경찰과 검찰의 행위도 심각한 문제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권력을 남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73년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한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을 능가하는 사건이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의 비리를 덮고 발뺌을 하다가 결국 하원에서 탄핵을 받은 후 대통령 직위에서 사임했다.

둘째, 대통령을 비방한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게재한 행위를 불법 행위로 간주한 경찰과 검찰의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불법 사찰과 인권 유린 의혹에 대해 정부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 반드시 시비를 가려야 한다. 철저한 진상 조사를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와 특별 감찰도 필요하다. 왜 평범한 시민 김종익씨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과 표적 수사의 대상이 되었는지 밝혀야 한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시점에 벌어진 이 사건은 수많은 표적 수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는 범죄 혐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특정인을 대상으로 ‘먼지털이식’ 수사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암행감찰’이 <1984년>의 비밀 조직처럼 민간인의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과거 유신 체제나 5공 시절에나 있었던 일이 다시 부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과 김제동씨의 중도 하차 등 일련의 사건은 명백하게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시대정신이 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신장시키려는 정부의 진지한 노력이 부족하다.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는 ‘중도 실용’ 정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신뢰를 떨어뜨리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불법적으로 권력을 남용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포용하고 권위주의적 공안 통치의 잔재를 과감하게 제거하는 국정 운영의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조속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