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최고 영예도 ‘결승전 진출’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정해상 | 국제심판 ()
  • 승인 2010.07.14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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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상 월드컵 심판의 ‘남아공 통신’ ④ “내가 부심 본 브라질-네덜란드 경기, 마인드 컨트롤이 승패 갈라”

▲ 7월2일 열린 남아공월드컵 8강전 네덜란드 대 브라질 경기에서 주심 유이치 니시무라가 브라질의 필리페 멜루 선수를 퇴장시키고 있다. ⓒEPA
월드컵이 중반을 넘어서면 심판진 규모도 반으로 줄어든다. 16강전이 끝나자 심판진에서도 1차 철수 팀이 결정되었다. 필자는 심판 리그에서 살아남아 8강전 첫 경기인 네덜란드-브라질전에 배정되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발표되고 보니 기쁨보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앞선 16강전에서 심판진의 결정적인 실수가 터지면서 각종 미디어로부터 ‘오심 월드컵’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오심 논란을 다루면 이곳 심판진은 많은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8강전에 투입할 심판 배정이 발표되고 1차로 떠나는 심판진을 위로하기 위한 환송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만큼은 심판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자리였다. 콜롬비아 심판이 진행을 맡은 환송식은 정말 재미나고 신났으며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환상적인 파티였다. 각국 심판의 노래와 춤을 곁들인 장기자랑 등 필드 밖 개인기가 작렬하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8강 경기를 위해 살그머니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한국팀도 경기를 해본 포트 엘리자베스로 향했다. 그곳의 심판 숙소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은 호텔이었다. 포트 엘리자베스 스타디움도 그 자체가 아름다운 조형물이었다.

심판을 보면서 스타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영광이자 심판 생활의 보너스이다. 네덜란드-브라질전은 말 그대로 별들의 경연장이었다. 장비 검사를 하며 네덜란드의 로벤 선수를 체크할 때에는 로벤이 필자에게 윙크를 해왔다. 아마 로벤만의 자동 반사(?)식 눈인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생긴 외모에 실력까지 세계 최고인 브라질 카카 선수, 뛰어난 개인기를 지닌 호비뉴, 코트디부아르전 핸드볼 득점 논란의 파비아뉴 선수 등 삼바 축구의 아이콘들이 장비 검사를 받기 위해 죽 늘어서 있는 진풍경을 바라보았다. 8강전이라는 빅 매치답게 경기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물론 브라질팀의 경기력이 앞서기는 했지만, 결과는 네덜란드팀의 역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브라질팀은 ‘영원한 우승 후보’로 불릴 만한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선제골에 이어 쉽게 갈 수 있는 경기였음에도 후반 자책골 이후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역전골 이후에 선수들이 흥분을 많이 해 수비 선수가 난폭한 행위로 퇴장까지 받은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된 듯하다. 브라질팀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경기였는데, 브라질 선수들이 왜  그렇게 흥분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흥분을 하면 선수들로서는 경기력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

▲ 남아공월드컵 8강전에서 역전골을 넣은 네덜란드의 스네이더 선수가 브라질 골문 앞에서 뛰어나오고 있다. ⓒAP연합
네덜란드팀 로벤 선수는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 보여

세계적인 선수인 아르헨티나의 메시 선수는 흥분하거나 심판에게 항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박지성 선수도 마찬가지다. 잉글랜드 심판도 필자에게 박지성 선수를 존경하고 그가 예의 바른 선수라고 말한다. 훌륭한 선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할 줄 알아야 더 성장한다는 진리를 브라질 선수들만 몰랐을까? 이 경기에서 로벤 선수는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자의 경기였기도 한 네덜란드-브라질전은 ‘공은 둥글다’라는 것을 보여주며 네덜란드팀이 승리해 심판진의 오심 없는 경기라는 호평을 받았다.

8강전을 별 다른 잡음 없이 모두 끝낸 심판진은 일요일 오전 고아원을 방문해 선물을 주며 봉사 활동을 했다. 좋은 일을 하면 항상 기분이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점심에는 심판진을 위해 매일 훈련 파트너가 되어준 현지 고교 축구선수를 위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4강전 대진이 확정되면서 심판진의 2차 철수가 결정되었다. 이별 파티에 앞서 발표하던 준결승전 심판 배정과 돌아갈 멤버 발표가 미루어졌다. 누가 남을지, 떠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별 파티가 진행되었고 다음 날 모두가 운동장에서 훈련을 한 후 미팅장에서 준결승 심판 배정과 고국으로 돌아갈 멤버가 발표되었다. 유럽 3팀(잉글랜드, 벨기에, 헝가리), 아프리카 1팀(남아공), 아시아 2팀(우즈베키스탄, 한국+일본조), 북중미 2팀(멕시코 2팀), 남미 2팀(칠레, 콜롬비아) 등 10팀만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다. 경기 진행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심판진만 결승전까지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최종적으로 남은 심판진에게 선물을 준다. 가족이나 부인을 초청해주는 것이다. 물론 원하는 심판들에 한해서다. 비용은 FIFA가 지불한다. 가족과 한 달 넘게 떨어져 있는 심판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번에 최종까지 남은 심판진 대부분이 가족 초청을 사양했다는 점이다. 치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필자 또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초청은 안 할 생각이다. 일부 초청을 원하는 심판도 있었지만, 결승전 일정이 촉박해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가 없다는 FIFA 티켓 담당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필자는 결승전 다음 날 출국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았는데 아직까지 확약이 나지 않고 있어서 남아공을 떠나는 비행기표 확보 대란이 일어날 듯하다. 심판진의 공식 훈련 일정 마지막 날은 7월7일이다. 그 뒤부터 결승전 당일까지는 각자 알아서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한다. 모두가 프로들이라 알아서 운동과 부상 예방 등 관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편, 월드컵은 상승세의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승부로 줄리메컵의 4년간 소유자가 정해지게 되었다. 빅게임이었던 독일-스페인전은 경기 중 한 관중의 경기장 진입이라는 해프닝까지 더해지면서 재미있는 광경이 이어졌다. 스페인이 경기 흐름의 주도권을 쥐면서 전차 군단 독일의 상승세가 꺾였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팀 간의 대결로 대장정이 마무리되게 되었다.

심판진도 마지막까지 남은 10팀 중 4강전에 투입되었던 두 팀을 제외하고 8팀 중에서 두 팀이 뽑힌다. 누가 결승전과 3·4위전에 투입될지 현재(7월7일)까지는 알 수 없지만 심판에게도 결승전에 참여하는 것은 큰 영예이다. 결승전과 3·4위전에 투입되지 않는 심판진도 대기심으로 결승전까지 함께 지켜본다. 심판 세계의 월드컵 결승전은 결승전에 투입할 심판조를 확정해 발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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