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 붙은 수입차, ‘날개’ 돋칠라
  • 조재길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
  • 승인 2010.07.14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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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인하와 사양 고급화해 올해 8만여 대 판매 돌파 예상…벤츠·BMW 앞서 나가고 일본 차까지 가세

국내 자동차 시장은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과 다른 두 가지 큰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현대·기아자동차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할 정도로 쏠려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토종 업체인 현대·기아차와, 외국계를 대주주로 맞은 나머지 3사(GM대우·르노삼성·쌍용차) 체제로 재편되었다. 현대·기아차는 공격적인 신차 출시와 마케팅 전략으로 내수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특징은 수입차 시장이 지나치게 작다는 것이다. 국내 수입차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4.9%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주목된다. 경기 회복세와 맞물리면서 올 들어 매달 판매 신기록을 이어가는 것이 그 증거이다. 연말께면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이 1987년 시장 개방 이후 처음으로 7%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수입차 자체만 놓고 보아도 독특한 시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메르세데스벤츠·BMW 등 고급 브랜드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반면, 일본·중국 등에서는 폭스바겐과 같은 대중 브랜드가 수입차 시장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국내에서 수입차업체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차급은 바로 중형 세단이다. 이른바 프리미엄 브랜드의 주력 차종이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급이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차 값을 최대 5백만원 낮추는 한편, 안전·편의 사양을 강화해 핵심 경쟁사는 물론 국산차 소비층까지 파고들고 있다. 현대차 등 국산차업체들은 즉각 가격 인하와 사양 고급화로 맞불을 놓고 있다.

수입차 시장에서는 벤츠와 BMW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1위 다툼을 벌여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판매 실적을 보면, 벤츠코리아는 총 7천5백92대를 팔아 혼다코리아의 2년 전 반기 기록(6천3백91대)을 갈아치웠다. 벤츠는 6월 한 달간 1천6백85대를 판매해 혼다가 2008년 7월 세운 월간 최다 판매 기록(1천6백65대)도 넘어섰다. 상반기 누적 판매 2위는 BMW코리아였다. 총 6천9백1대로, 6백90여 대 차이로 벤츠에 수위 자리를 내주었다. 3위는 폭스바겐(4천7백60대), 4위는 아우디(3천9백58대)였다. 상위 1~4위를 유럽 차가 휩쓸었는데 이 중 3위만 빼면 프리미엄 브랜드가 싹쓸이한 것이다.

상반기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차는 벤츠 E300이었다. 단일 차종으로 2천8백90대가 팔렸다. BMW528이 2위(2천2백73대)였고, 3위는 도요타 캠리(2천1백46대)였다. 이 밖에 폭스바겐 골프 2.0 TDI(1천4백33대), 포드 토러스 3.5(1천2백5대), 아우디 A4 2.0 TFSI 콰트로(1천1백41대), 벤츠 C200(1천63대), 혼다 어코드 3.5(1천23대) 등의 순이었다. 일본 차의 선전도 눈에 띄었다. 한국닛산은 주력 모델인 알티마 덕분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백11.7% 늘어난 1천8백69대를 판매했다. 혼다는 신차 없이도 총 2천7백47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8% 실적을 늘렸다. 미국 차 중에서는 포드코리아가 신차 토러스의 성공 덕분에 2천1백43대를 판매했다. 다만, 크라이슬러 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 감소한 9백8대에 그쳤다.

 

▲ 현대차 제네시스.

 

프리미엄 브랜드도 “내가 더 싸다”…수입차 공세 맞선 제네시스 ‘고군분투’

수입차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해 그랜저·에쿠스 등 국산차를 타던 수요층까지 자극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벤츠이다.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8월 대표 모델인 신형 E클래스를 내놓으면서 차 값을 구형보다 최고 4백만~5백만원 낮추었다. E200CGI와 E220CDI 가격이 각각 6천5백50만원, 6천6백50만원이 되었다. 종전 7천만원대였던 E300 엘레강스의 경우 6천9백70만원으로 책정했다. 벤츠 E클래스는 단숨에 수입차 시장의 베스트셀링카로 등극했다. ‘벤츠의 맞수’ BMW코리아는 지난 4월 뉴5시리즈를 구형보다 100만원가량 낮춘 가격에 출시했다. 528 기준 6천7백90만원으로, 3.0ℓ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 출력 2백45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이 회사는 2007년 말 528 가격을 한꺼번에 1천9백만원이나 낮춰 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닛산은 최근 3세대 ‘올 뉴 인피니티 M’을 내놓으면서 차 값을 과감하게 내렸다. 주력인 ‘M37 스탠더드’ 가격을 5천9백50만원으로 책정해 구형보다 2백70만원 싸게 내놓았다. ‘M37 프리미엄’의 경우도 종전보다 5백만원 낮춘 6천2백90만원에 출시했다. 앞서 올해 1월에는 알티마 신모델 2.5 가격을 3백만원, 3.5 가격을 2백90만원 낮추었다.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끼기 어렵지만, 포드 토러스도 주목받는 중형 신차이다. 지난해 말 출시된 토러스 3.5 가격은 4천4백만원으로, 국산 준대형차와도 가격 경쟁을 벌일 수 있다.

수입차 공세를 차단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델은 현대차 제네시스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개발하는 단계부터 수입 명차를 정조준했다. 개발 비용으로 약 5천억원을 투입했다. 북미 지역을 겨냥한 전략 차종이었기 때문에 국내와 미국 디자인센터가 공조했다. 미국 시장 소비자들이 큰 엔진을 좋아한다는 점을 감안해 국내와 다른 최고 출력 3백75마력의 4.6ℓ 타우엔진을 따로 개발해 장착했다.

현대차는 최근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주력인 제네시스 BH330 VIP팩 가격을 종전보다 5백만원 낮춘 것이다. 비인기 사양을 조정하는 것을 통해서다. 이에 따라 제네시스 가격은 3.3ℓ를 기준으로 그랜드 4천1백49만원, 그랜드 프라임 4천4백40만원, 럭셔리 4천7백24만원, 럭셔리 VIP가 5천2백3만원이 되었다. 내년에는 제네시스 부분 변경 모델을 내놓고, 2012년 후속 차를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는 또 그랜저 가격을 100만?1백10만원 낮추었다. 버튼 시동 장치와 슈퍼비전 클러스터(고해상도 계기판) 등의 사양을 추가했기 때문에 가격 인하 효과가 1백40만원 선에 달한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GM대우자동차는 8월 출시할 준대형 세단 알페온의 가격을 3천만원대 초반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초반 세몰이를 위해서다.

문제는 수입차 공세를 막기에는 국산차의 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내에 총 23개 수입차 브랜드가 진출해 있는 데다, 피아트 등이 추가로 들어올 태세이다. 따라서 지난해 6만여 대 팔린 수입차는 올해 연간 8만대 판매를 처음 돌파할 전망이다. 상반기에만 이미 4만1천9백47대의 수입차가 팔렸다. 지난해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수입차 업체들이 올해는 ‘전성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56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BMW 뉴 5 시리즈, 뉴 인티니티 M, 벤츠 E클래스 카브리올레, 렉서스 ES350, 아우디 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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