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강도 높은 자정 노력 보여라
  • 신율 | 명지대 교수·정치학 ()
  • 승인 2010.07.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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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단정 전복 사고는 직업 윤리의 실종 드러낸 사건…‘천안함’ 이어 또 신뢰 추락, 초심으로 돌아가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과 ‘군 작전 특수 보트 뱃놀이 사건’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두 사건은 완전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해당 조직의 ‘비선 조직’에서 터졌다는 점이다. 비선 조직의 조직원들끼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힘을 키운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특히 군대 내의 비선 조직은 문제가 더 크다.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 정권 시절에 존재했던 ‘하나회’이다. 당시 하나회는 군대의 명령 계통을 무시하고 조직의 보스인 전두환 소장의 명령에 따랐고, 이는 결국 쿠데타로 연결되었다. 이들은 ‘국가 안위’보다 ‘입신양명’을 좇았다. 비선 조직의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제도의 권위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를 가지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즉, 이런 비선 조직의 조직원들은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공권력이나 공공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의적으로 사용한다.

얼마 전 충남 태안에서 일어난 군 특수부대의 고속단정(RIB) 전복 사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군부대의 작전 중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군 간부들이 충남 태안군 모항함 근처에서 가족과 민간인을 특수부대 소속 특수 작전용 고속단정(RIB)에 태우고 유람을 즐기다 전복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 아무개 공군 대위가 사망하고, 공군 소령의 부인 김 아무개씨는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정보사령부 소속 태안 지역 특수부대는 군 검열 요원이나 훈련 요원들만 숙식할 수 있는 수용 시설에 민간인들을 숙박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쯤 되면 지금의 군(軍) 상태가 어떤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사건을 보면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제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직업 윤리의 실종이다. 군 검열 요원이나 훈련 요원들만 숙식할 수 있는 곳에 민간인들을 투숙시킨 것도 상식 밖이다.

군 특수부대의 경우 ‘보안’이 생명이다. 그런데도 군 간부들이 앞장서서 민간인들에게 부대의 위치와 시설·장비 등을 노출했다. 더욱이 군 특수 장비인 고속단정(RIB)을 물놀이에 동원한 것은 군인의 신분을 망각한 정신 나간 짓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민간인들 중에 불순한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 모두가 직업 윤리·공직 윤리의 실종을 말해주고 있다. 이들은 비선 조직의 조직원과 똑같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RIB에 탑승한 민간인이 33만원에 해당하는 음식 값을 지불했다. 이들 민간인은 탑승한 장교들과 고교 동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군에도 ‘스폰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당초 군 당국의 발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지난 천안함 사건 때에도 군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축소하려 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군은 똑같은 실수 아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사고를 저지른 군인들이나, 사고를 조사하는 군 당국이나 공직 윤리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이런 류(類)의 군의 공직 윤리 실종은 이번 전복 사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천안함 사태 와중인 지난 5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세종대왕함의 장병들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해군 연합 기동훈련을 위해 하와이에 파견되었었다. 그런데 세종대왕함의 간부 30명이 현지에서 가족과 합류해 관광과 쇼핑을 즐기다 빈축을 산 적이 있다. 또, 야전군의 2인자인 현역 육군 소장이 군사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 6월에 구속된 일도 있었다.

이제 국민들은 군의 공직 윤리도 믿을 수 없고, 조사를 통해 군의 기강을 잡겠다는 군 당국도 믿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정치권도 아닌 군에 존재한다는 데서 그 심각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군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지난 7월3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항 앞바다에서 전복된 선박이 국방부 정보본부 예하 정보사령부 소속 작전용 고속단정(RIB)인 것으로 확인 돼 군 기강해이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은 해군에서 운용 중인 고속단정.

‘강직’과는 거리 먼 군…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들의 직업 윤리가 실종되면, 우리네 삶의 안전이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군의 문제점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천안함 사건 때, 군은 오락가락하는 발표 때문에 스스로 신뢰를 추락시켰다.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군의 치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이런 행태가 반복된다는 것은 감사원의 감사 이후에도 군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사원의 조사 발표 후에 군은 ‘명예’를 들먹이며 반발했다. 그 후 군이 보여준 행태는 스스로의 명예를 짓밟는 모습이 되었다. ‘군 보트 뱃놀이 사건’은 군 스스로 더 이상 자정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꼴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책임지는 고위층은 없다. 군의 특성상 직업적인 공직 윤리의 핵심은 강직함이다. 강직하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마음이 굳세고 곧다는 뜻인데, 굳세고 곧아야만 국가를 위한 희생정신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강직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근의 군 관련 사태를 보면 군은 책임을 면하려고만 하고 있다. 어떻게든 고비만 넘기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천안함 사건이 그랬고, 이번 군 보트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안보 불감증만 키운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최전방을 지키는 다수의 군인에게 누(累)가 되는 일이다.

강직하다는 것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모습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우리나라의 안보와 국방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자리에 연연하고, 어떻게든 권력에 아부해서 안위를 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가적으로도 피해가 크다.

군은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강직하고 믿음직한 ‘국민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사랑받는 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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