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1회 열고 공식 활동 ‘뚝’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7.14 03: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의 실체 / 사무실 간판 떼고 문 잠겨…연구원 이름·직함은 유지돼 의혹 여전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이 갑자기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지금까지 그 실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이 의문의 단체는 선진국민연대의 후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가 최근 주목된 것은 그동안 금융권의 인사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은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다. 전화번호 안내 시스템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다. <시사저널>은 사단법인으로 등기되어 있는 이 단체의 등기부등본을 입수했다. 2008년 4월21일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연구원의 이사 명단에는 현재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금융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연구원은 설립 당시에는 김대식 이사장, 유선기·정인철 이사 체제였다가 지금은 유선기 이사장·조재목 사무처장 체제이다.

 

▲ 2009년 2월18일 선진국민정책연구원과 유엔환경계획이 주최한 ‘녹색 성장과 선진 한국의 미래’ 세미나에서 유선기 이사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뱅크

 

유선기 이사장은 지난 2008년 6월부터 1년가량 국민은행 경영자문역을 맡았다. 유이사장은 2008년 4월부터는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고문도 맡고 있었다. 역시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조재목 사무처장은 지난해 3월 KB금융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그는 지난해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이 개최했던 ‘녹색 성장’ 세미나에 국민은행이 4천만원을 지원하도록 힘을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유선기 이사장과 조재목 사무처장은 지난해 12월 강정원 당시 KB금융지주 회장 직무대행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는 과정에서 당시 후보로 나섰던 한 인사를 만나 사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강정원 전 회장 직무대행이 박영준 국무차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박차장이 이를 위해 유선기 이사장과 조재목 사외이사를 KB금융지주에 투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설립 당시 이사직을 맡았다가 2008년 9월 사임한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도 정기적으로 은행장과 공기업 사장들을 불러모아 ‘월권 행위’를 했다는 의혹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정비서관은 공기업 인사 등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선진국민연대 회원들의 개인적인 민원까지 논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은 선진국민연대가 지난 2008년 10월 발전적 해체를 하면서 생겨난 연구 단체이다. 2007년 10월 전국 2백여 시민·사회단체들을 네트워크로 묶어 등록 회원 수만 4백63만명에 달한 선진국민연대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창설 1년 만에 해체되면서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정책 그룹인 선진국민정책연구원과 대중 조직인 ‘동행대한민국’으로 축소 개편되었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은 선진국민연대가 해체를 선언하기 전인 2008년 6월20일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되며 공식 출범식을 가졌다. 김대식 전 사무처장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함께 선진국민연대를 사실상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김대식 전 사무처장은 7월8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연구원은 선진국민연대에 참여했던 교수 2천5백여 명이 참여한 일종의 싱크탱크 조직이다.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책적인 지원을 위해 토론하고 건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내가 교수 출신인 관계로 출범 당시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공직으로 가야 되는 상황이라서 출범하자마자 바로 사퇴했다”라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 앞 ‘ㄷ’오피스텔에 위치한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실. 현판이 떨어져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유선기 이사장 “지난 1년3개월 동안 사실상 폐쇄 상태”

현재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의 ㄷ오피스텔 12층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국회의사당 앞 대로에 맞닿아 있어 정가에서 사무실 위치로 인기가 좋은 곳이다. 각 층마다 입주민만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문이 통제되어 있는 점도 보안을 중시하는 정가 사무실로는 안성맞춤이다.

지난 2008년 6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나 야인 생활을 하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청와대 밖에서 실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을 때 그 장소로 거론되던 곳도 바로 ㄷ오피스텔이었다. 하지만 등기부상에 나와 있는 주소지에는 이 연구원임을 알리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출입문 옆에 한때 현판이 걸려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인기척도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찾아가보았을 때도 인기척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층에 위치한 우편물 보관함도 텅 비어 있었다. 사무실이 사용 중인지 비어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관리사무소를 찾았지만, 입주자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들려왔다. 건물 안에 위치한 부동산업자는 “임대나 매매 매물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현재 사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건물은 임대되어 있는데 사용하는 단체의 흔적은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의 활동 내역에 대해서도 의혹이 많다. 지난해 2월18일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와 ‘녹색 성장’ 세미나를 연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녹색 성장’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비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자리에는 박영준 국무차장,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선진국민연대 출신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열리기로 예정되었던 행사는 단 한 차례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루어진 대외 행사는 없었다. ‘녹색 성장’ 세미나가 사실상 처음이자 유일한 활동이 된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 단체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경고’를 한 것도 이 연구원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었던 한 원인으로 보인다.

유선기 이사장은 7월8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 4월 언론에서 한 차례 시끄러웠던 이후 선진국민정책연구원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고 보면 된다. 여의도에 위치한 사무실도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다. 직원도, 전화도 없다. 사단법인으로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1년3개월 동안 연구원의 이름과 직함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은 곧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유이사장은 “그동안 시간이 없어 폐쇄 조치를 하지 못했다. 조만간 선진국민정책연구원 해산 작업을 공식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