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의 정기 담은 ‘인재 평원’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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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강원 영서 지방

▲ 강원도 춘천시의 의암호 ⓒ연합뉴스

올 3월17일자 본지에서 영동 지역의 인맥을 소개한 바 있다. 흔히 ‘관동 지방’이라고 불리는 강원도는 태백산맥이 뻗어내려 가면서 동과 서로 갈렸는데, 이것이 영동 지방과 영서 지방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영동과 영서는 인접한 지역이면서도 태백 준령에 가로막혀 서로 왕래와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다. 이같은 지리적 여건과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기질이 다르게 형성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왕정 시대 조정의 눈치를 덜 보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살았던 역사적 특성을 지니고 바다와 이웃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 영동 사람들은 직설적이며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으로 키워졌다. 이에 비해 영서 사람들은 표현이 부드럽고 우회적이며 자신을 잘 내세우려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이런 성격에 비추어 양 지역 출신들의 세를 굳이 비교한다면 영서보다 영동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에서 도명(道名)에 앞 글자가 들어 있는 강릉과 원주보다 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제1의 도시로 자리 잡은 지는 매우 오래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강릉과 원주 사람들은 서로 은근히 자존심과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춘천고와 강원대를 나와야 행세를 한다는 말이 있다. 도청을 비롯한 관공서의 인적 구성을 보아도 이 말은 어느 정도 실감이 된다. 현재 강원도 출신의 현직 국회의원은 10명이다. 권성동(한나라당·강릉), 김금래(한나라당·비례대표), 김선동(한나라당·서울 도봉 을), 송훈석(무소속·속초 고성 양양), 정몽준(한나라당·서울 동작 을), 정하균(한나라당·비례대표), 최문순(민주당·비례대표), 최연희(무소속·동해 삼척), 허천(한나라당·춘천), 황영철(한나라당·홍천 횡성) 의원이다. 이계진 의원과 이광재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격돌한 끝에 이광재 의원이 이겼다. 이용삼 의원(민주당·철원 화천 양구 인제)은 지난 1월 사망해 오는 7월28일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부친인 김진재 동일고무벨트 회장의 지역구를 승계해 지역구 당선자 중 최연소로 금배지를 단 김세연 의원(한나라당·부산 금정)은 한승수 전 총리의 사위이고, 주광덕 의원(한나라당·구리)은 춘천제일고를 다녔으며, 정미경 의원(한나라당·수원 권선)은 군인인 아버지가 양구에서 근무할 당시 출생했다는 점에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고 있다. 

강원도가 자랑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장덕진 대륙종합개발 회장(춘천)이다. 춘천고-고려대 법대 출신인 그는 고등고시 사법과·행정과·외교과 3과에 합격한 수재로, 그를 두고 “대통령도 시험으로 뽑는다면 될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재무부 이재국장 겸 대통령 비서관, 농수산부-경제기획원 차관, 농수산부장관을 지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경제 관료 중의 한 명이다. 지금은 중국 헤이룽장 성에서 삼강평원을 개척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일찌감치 설립했던 대륙종합개발의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중 합자 흑룡강삼강평원농업유한공사 이사장, 헤이룽장 성 특별경제고문직을 겸하고 있다. 고려대 후배인 이병석 의원(한나라당·포항 북)이 한때 장회장이 설립 운영하던 대륙연구소에서 일했다.

윤세영 도민회장 재임 중 서울에 도민회관도 건립

윤세영 SBS 이사회 의장(철원)은 1999년 6월부터 2008년 1월까지 10년 가까이 강원도민회 회장을 맡아보며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도민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서울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윤회장은 건설업으로 다진 기업인의 입지를 발판으로 1990년 SBS를 개국해 언론인으로 도약했다. 윤회장이 강원도민회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3년에는 그의 발의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5층짜리 도민회관이 건립되기도 했다. 서울에 자체 도민회관을 갖고 있는 광역 자치단체는 아직까지 강원도밖에 없어 다른 도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회관에는 도민회와 도청 서울사무소뿐 아니라 도내 18개 시·군 사무소가 들어 있다.

한승수 전 총리 역시 강원도와 춘천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국회의원, 주미 대사, 상공부-재정경제원-외교통상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두루 역임하는 등 화려한 관록을 자랑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 사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응선 삼광유리공업 명예회장(홍천)은 과학기술처 차관과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로 3부자가 고향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머리 좋은 집안으로 유명하다. 부친은 자유당 시절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이재학씨이고, 형은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서 8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교선씨이다.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춘천)은 4·19 때 동덕여고 학생회장이었다. 1961년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하자 바로 5·16이 일어났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공부에 진력했던 정위원장은 졸업 후 가정을 가졌고, 1974년에야 석사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 공부하랴, 아이 셋 키우랴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1981년 그녀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되던 해 5공화국이 들어섰다. 1986년 정교수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교수 서명을 주도했다. 정교수는 민주화 이후 역사학자로서 규장각 관장직을 맡아 본업에 전념했다. 그리고 2008년 3월 국사편찬위원장에 위촉되었다.

장윤석 마리아병원 명예원장(양구)은 춘천고-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 유전의학회·불임학회·산부인과학회 등의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아세아대양주 산부인과연맹 회장으로 있는 산부인과 분야의 권위자이다.

김유정·이효석·박인환 등 한국 문학 거목들도 다수 배출

김형진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춘천)은 주미 대사관 근무, 북미 1, 2과 서기관, 대통령 비서실, 북미 1과장, 장관 보좌관을 거쳐 북미국장에 이른 전형적인 미국통 외교관이다. 그의 부친은 제주·광주·부산 지검장, 광주·서울 고검장을 역임한 김양균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이다. 광주 출생으로 광주고와 전남대 법학과를 졸업한 김 전 재판관이 춘천에서 법무장교로 근무하던 시절 김국장이 태어났다. 

1951년생인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평창)은 현재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금융인이다. 용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증권에 들어간 후 증권맨으로 잔뼈가 굵었다. 대우증권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한진투자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사명(社名)을 메리츠증권으로 바꿨다. 한국증권업협회 회장을 맡았다가 2009년 2월 증권업협회·자산운용협회·선물협회가 통합해 출범한 금융투자협회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영서 지역 출신 가운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있다. 바로 김중만 사진작가(철원)이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정부 파견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갔다. 이듬해 혼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니스 국립 응용미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사진작가의 길로 나섰다. 23세에는 프랑스 ‘오늘의 사진작가 80인’ 중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귀국해 국적을 회복하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캄보디아에 미술학교를 세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말 전시회를 가진 김씨는 오래전부터 아시아·아프리카 저개발 국가 아이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군문에서 이름을 빛낸 인물로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원주), 김종환 전 합참의장(원주), 김영관 전 해군 참모총장(철원), 이억수 전 공군 참모총장(원주), 조원건 전 공군 작전사령관(횡성) 등 예비역 장군이 있다. 현역으로는 황의돈 현 육군 참모총장(원주),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인제), 윤종성 국방부 조사본부장(인제)이 있다. 원주의 대성고가 훌륭한 군인들을 다수 배출한 학교로 이름이 나 있다.

김유정(춘천·1908~1937), 이효석(평창·1907~1942), 박인환(인제·1926~1956), 이 세 사람은 모두 아까운 나이를 살고 간 문인들이다. 김유정(휘문고-연희전문 문과 중퇴)은 농촌과 도시의 가난한 서민 생활을 파고들어 토속적인 인간상을 부각시킨 작품들을 남겼다. <소낙비> <봄봄> <동백꽃>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이름은 경춘선 신남역을 개명한 ‘김유정역’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경성제1고보와 경성제대를 졸업한 이효석이 써낸 <메밀꽃 필 무렵>이나 <산>, 박인환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은 장르가 다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로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평창에 가꿔진 이효석의 생가 터에는 그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평양의전을 중퇴한 박인환은 8·15 광복 후 서점을 경영하며 모더니즘 시 운동에 참여하고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도 일했다.

지난해 10월부터 33대 조계종 총무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자승 원장(춘천·속명 이경식)은 근래 드물게 50대 중반의 나이로 당선되었을 뿐 아니라 91%의 지지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겨 눈길을 모았다. 지승 원장을 비롯해 강현국 원각종 종정(춘천), 지광 능인선원 원장(원주), 시인인 이해인 수녀(양구)가 종교인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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