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서자’의 사연 많은 ‘사부곡’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0: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J 이재현 회장의 부친 이맹희씨 ‘여인’의 양육비 청구 소송 내막

 

▲ ⓒ시사저널 우태윤

내로라하는 재벌가에서 양육비 청구 소송이 벌어졌다. ‘재벌가의 가족사’라는 폭발성 외피를 두르고 있는 이 사건에는 현대 가족의 초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혼외정사와 미혼모, 성장기 아이들의 애착 대상 부재와 부모의 존재 유무, 양육 의무의 범위, 상속권, 호적의 유효성, 가족이라는 이름의 결속성의 범위와 구성원에 대한 무관심 등이다.

 지난 7월 초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71·CJ 이재현 회장 부친)가 박 아무개씨(71)씨로부터 양육비 상환 청구 소송을 당한 사실이 공개되었다. 박씨가 요구한 금액은 4억8천만원이다. 아들이 만 20세가 되는 시점까지 한 달에 2백만원꼴의 양육비를 요구한 것이다.

박씨가 아들 이재휘(가명)씨의 양육비를 이맹희씨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재휘씨가 이맹희씨의 친자이기 때문이다. 재휘씨는 지난 2004년 7월19일 이맹희씨를 상대로 친자 확인 소송을 냈는데 2006년 7월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이맹희씨와 재휘씨가 부자 관계라는 것을 인정받았다. 

<시사저널>은 박씨와 아들 재휘씨 등 사건 관계자를 통해 사건 전말을 알아보았다. 기자가 박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4월이었다. 당시 박씨는 경기도 양평에 살면서 ‘ㄷ마을’이라는 일종의 타운하우스 분양 사업을 하고 있었다. 박씨는 당시 이 사업을 벌이면서 최 아무개 재벌 회장과 송사를 벌였다. 박씨가 갖고 있던 서울 대학로의 60억원짜리 빌딩 소유권을 놓고 벌이던 최회장과의 송사는 박씨에 대한 폭행 사건으로 번졌고, 결국 최회장은 폭행 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때 송사 건을 취재하다가 박씨의 아들 재휘씨를 만났다. 그는 주택 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 인테리어 부문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박씨가 아들 문제를 정식으로 입에 올린 것은 그해 7월 초였다. 당시 박씨는 자신의 송사와는 별도로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 모자는 그해 7월19일 법원에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해 이맹희씨의 아들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박씨가 재휘씨를 낳은 것은 지난 1963년이다. 당시 이맹희씨는 부인 손복남씨와의 사이에서 이미경, 이재현, 이재환 등 2남1녀를 두고 있었다. 이맹희씨는 박씨와 혼외정사를 통해 재휘씨를 얻은 것이다.

박씨가 이맹희씨를 만난 것은 스물네 살 때인 1960년이었다.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하면서 세상에 얼굴을 막 알리던 시점이었다. 박씨에 따르면 이맹희씨는 서울 필동에 집을 얻어주었고 여기서 동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재휘씨를 출산하고 이 소식이 이병철 회장 귀에 들어가자 이맹희씨의 친구이자 매제인 구자학씨가 뒷수습을 맡았다. 1964년, 박씨는 아이를 떠안고 홀로 남게 되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했던 박씨는 아들 교육을 위해 198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을 떠나기 직전 박씨는 부자 상봉을 주선했다. 이민을 가면 다시는 못 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부자는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한 번, 대구 한일호텔에서 한 번, 서울 조선호텔에서 한 번, 이렇게 세 번을 만났다. 재휘씨는 그때 부친이 “이제 아버지가 이맹희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다녀라. 나중에 호적에 올려주겠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이맹희씨는 당시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버클과 지갑을 주었다. 박씨가 1984년 10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더 이상 부자 간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987년 무렵부터는 전화 연락마저 끊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재휘씨가 이맹희씨의 둘째 아들인 이재환씨를 1984년 무렵 만나서 알고 지냈다는 것이다. 당시 후배를 통해서 재환씨를 만난 재휘씨는 재환씨를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고, 재환씨도 “우리 식구 맞네”라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이민 간 재휘씨는 그곳에서 대학을 나왔고 미국계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해 일하기 시작했다. 모친 박씨는 아들이 취업하면서 1991년 먼저 한국으로 들어왔다. 

▲ 이재휘씨가 이민 떠나기 직전 이맹희씨를 만났을 때 받았다는 버클.

친자 확인 소송 때 이복형제 간 만남, 어색한 분위기에서 끝나 

미국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던 재휘씨도 한국 지사 발령을 받아 귀국했다. 그가 아버지를 찾겠다고 생각한 것은 미국에서 결혼한 뒤부터였다. 1남1녀를 둔 가장이 되자 그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근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친의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도 계속 들리는 데다 CJ 쪽에 부친의 소재를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어서 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친자 확인 소송을 내게 되었다고 소송의 배경을 설명했다. 유전자 감식은 2005년 9월 서울대병원에서 이루어졌다. CJ 쪽에서는 이재환씨가 대리인으로 출석했다. 20년 만의 이복형제 간 만남은 사적인 대화 한마디 없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법원은 2006년 재휘씨가 이맹희씨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친자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에도 재휘씨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인테리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그는 국내뿐 아니라 러시아와 미국 등에도 인테리어를 시공하는 등 사업 규모를 늘리고 있다. 그 틈틈이 아버지의 행방 찾기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박씨는 2004년 이후 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양평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2006년 승소 이후 퇴행성 질환으로 2~3차례 수술을 받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건강을 회복하고 양육비 청구 소송에 나서는 등 아들의 ‘권리 찾기’를 거들고 나섰다.

 “앞으로 할 수 있는 것 할 것”
- 아들 이재휘씨 인터뷰

▶친자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뒤 CJ 쪽에서 만나자는 제의는 없었나?

전혀 없었다. 부친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요청도 거부했다.

▶왜 승소한 뒤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나?

나에게는 아버지를 찾는 일이 먼저였다. 이번에 소송을 주도한 이모(재휘씨는 어머니의 친구를 이렇게 불렀다)가 ‘이렇게 하다가는 또 그냥 넘어가고 당한다’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이번에 어머니가 양육비 청구 소송을 내는 데 반대하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지 않겠나.

▶향후에 또 다른 재판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은 생각을 정리 중이다. 지금까지는 생각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쯤 행동에 들어가게 되나?

이번 양육비 소송을 다룬 기사를 읽다 보면 평정심이 깨진다. 읽다가 화가 난다. 나는 늘 좋은 쪽으로 풀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는 갈수록 내가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친자 확인 된 후 연락 없었다”
- 양육비 청구 소송 낸 박씨 인터뷰

박씨는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좀 아팠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친자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뒤 CJ나 이맹희씨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있나?

전혀 없다. 10원도 받은 적이 없다. 연락도 없다.

▶이번 양육비 청구 소송은 왜 제기했나?

2006년 재판하고 그럴 때 내가 좀 충격을 받았는지 몸도 아프고 다리도 다치고 수술도 받았다. 젊었을 때는 건강에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 나이가 먹어서 회복이 더디다. 이제 좀 회복되었다. 친한 언니가 나서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며 소송을 도와주고 있다. 내가 아직은 몸이 완전하지 않아서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건은 아들과는 상관없이 내가 하는 것이다.

▶친한 언니? 왜 다른 사람이 도와주나?

그 언니는 내가 맹희씨와 만나고 헤어졌던 과정까지 잘 아는 언니이다. 외국에서 살다가 최근 40여 년 만에 귀국했다. 그간의 진행 사정을 듣고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라며 나보다 더 화를 내고 있다.  

▶요즘은 어디서 지내나?

양평에는 거의 없고 서울에서 지낸다. 아들과는 따로 산다.

▶이맹희씨와 재휘씨가 만났나?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이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한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였다고 하던데.

내가 한 이야기가 아니다. 벌써 50년 전 이야기이다. 1958년인가 59년인가 철없을 때 영화에 한 컷 나간 것 가지고 영화배우라고 이야기하는데….

 

▲ 198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살던 시절 박씨와 아들 이재휘씨.

 

친자 확인 소송에서 이맹희씨의 아들로 판명 난 재휘씨는 이후 아버지와 만났을까. 승소 직후 재휘씨는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꼭 만나보겠다”라고 말했었다.

 지난해부터 재휘씨가 아버지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재계 주변에서 돌았다.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에서 만났다는 등의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까지 나왔다.

박씨는 ‘베이징 만남설’에 대해 묻자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박씨는 “베이징에서 만난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필리핀에서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씨 역시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재휘씨에게 다시 이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라고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는 긍정하고 아들은 부정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왜 이럴까. 이 의문은 모자를 모두 알고 있는 제3의 인물이 풀어주었다. 제3의 인물인 이 아무개씨는 “부자가 만났다”라고 확인해주었다. 다음은 그가 전한 당시 상황이다.

친자 확인 소송에 승소한 재휘씨는 2008년 10월께 부친이 필리핀에 머무르고 있다는 믿을 만한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과거 미국계 인테리어 회사에서 파견 근무를 하면서 2년간 필리핀에 머무른 경험이 있던 재휘씨는 즉시 현지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호텔을 알아내고 날아갔다.

부자의 상봉은 짧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맹희씨가 “재휘입니다”라는 아들의 인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다 어색하게 자리가 끝났다는 것이다. 부친 상봉에 기대를 걸었던 그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재휘씨는 이후 혼돈스러워했고 부친마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만든 인물이 부친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실망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재휘씨는 ‘법대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적극 대응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