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된 전 시장, 어디 숨었나
  • 강현석 | 전남일보 기자 ()
  • 승인 2010.07.20 20: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현섭 전 여수시장, 무단 결근 후 근 한 달째 행적 오리무중…해외 밀항·종교단체 은신 등 온갖 억측 돌아

오현섭 전 전남 여수시장(60)이 잠적한 지 7월16일로 26일째가 되었다. 오시장은 지난 6월24일 무단 결근한 후 지금까지 행적이 오리무중이다. 그 사이 오시장은 현직 시장에서 전직 시장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도대체 오 전 시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 2007년 11월28일 오현섭 당시 전남 여수시장(맨 왼쪽)이 여수공항에서 가진 2012 세계박람회 유치 기념 환영식에서 시민들과 손을 높이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12일 여수시청 기자실에서는 민주당 김성곤·주승용 의원(여수 지역구)이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오현섭 전 여수시장이) 떳떳하게 나타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지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공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시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여수 지역 국회의원 두 명이 동시에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도 그렇지만, 이들이 오현섭 전 시장과 관련해 지역민들에게 대신 사과하는 모습도 이례적이었다.

이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오 전 시장의 잠적이 길어지면서 지역에서 ‘이번 사건에 지역 국회의원도 연루되었다’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의 기자회견은 오 전 시장과 자신들의 관계에 선을 긋는 자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수 지역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경찰 수사를 받던 자치단체장의 유례없는 장기 잠적’으로 지역민들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망자’가 되었지만, 오 전 시장은 지역에서 특출 난 인재였다. 지역 명문인 순천고를 나온 그는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제13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화려하게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한 그는 광주시 기획관리실장과 전남도 행정부지사·정무부지사 등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민선 4기 여수시장에 당선된 이후 이듬해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에 성공하면서 일약 지역의 유망 정치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 전 시장은 민주당 공천을 받고 재선에 도전했지만 낙마했다. 선거 기간 내내 그를 괴롭힌 것은 ‘야간 경관 조명 사업 비리 연루 의혹’이었다. 지역의 미래를 건 세계박람회 유치와 ‘민주당’이라는 후광까지 있었지만 ‘비리 의혹’은 충격적인 패배로 이어졌다.

오 전 시장 낙마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사건은 민주당 내 경선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지난 4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야간 경관 조명업체로부터 2억6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던 여수시 김 아무개 전 국장(57·여)이 해외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출국 금지’ 사실을 알아챈 뒤 곧바로 잠적하면서다. 김 전 국장은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김 전 국장이 오 전 시장의 측근이었다는 점 때문에 당내 경선 과정에서 ‘오시장도 책임이 있다’라는 주장이 강했지만, 민주당은 오 전 시장을 후보로 결정했다. 김성곤 의원과 주승용 의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사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낙선 이후에도 억울함을 주장하며 상대 후보였던 김충석 현 여수시장을 ‘명예 훼손과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던 오 전 시장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잠적했던 김 전 국장이 지난 6월15일 경찰에 자수한 이후였다. 김 전 국장이 구속된 다음 날인 6월18일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오 전 시장은 자취를 감추었다. 월요일인 6월21일 여수시장실에서 경찰과 만나기로 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 7월12일 전남 여수시 학동 여수시청 브리핑룸에서 지역구 출신 민주당 김성곤 의원과 주승용 의원이 최근 여수지역사회에서 벌어진 여러 불미스런 사안들에 대해 반성과 해법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구속당한 경험 있어 국내 은신설 유력

오 전 시장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인물은 운전기사 정 아무개씨(31)이다. 정씨는 “지난 6월19일 광주에서 열리는 지인의 결혼식에 간다고 해서 시장님을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내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호남고속도로 창평IC를 빠져나온 뒤 차량에서 내려 혼자 어디론가 이동했다고 한다. 다음 날 그는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3일간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6월21일부터 휴대전화 전원은 꺼져 있었고, 며칠 뒤에는 번호가 아예 없어졌다. 그의 휴대전화 발신지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 인근이었다.

결국 오 전 시장은 6월24일부터 무단 결근을 했고, 6월30일 시장 이임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현재까지 ‘도망자’ 신분이다.

전직 단체장의 유례없는 도피 행각에 각종 설(說)도 나돈다. 김 전 국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아 여수시 의원들에게 나누어준 혐의를 받고 있는 오 전 시장의 또 다른 측근 주 아무개씨(67)가 지난 4월 중국으로 돌연 출국해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으면서 중국 밀항설이 나왔다. 여수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교회에서 집사를 지낼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오 전 시장이 종교 시설에 칩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는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라는 관측도 나왔다. 여기에는 ‘얼굴이 많이 알려진 오 전 시장이 여론이 들끓고 있는 마당에 국내에 있다면 이미 꼬리가 잡히지 않았겠느냐’라는 추측이 작용했다.

하지만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것은 오 전 시장이 국내 어딘가에 잠적해 있으리라는 점이다. 경찰 역시 이 부분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지난 7월8일 오 전 시장에게 기(氣) 치료 등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광주시에 사는 이 아무개씨(57)가 그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경찰에서 지난 6월29일 광주시 인근에서 오 전 시장을 자신의 차로 태워주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곡성과 구례, 여수에서 오 전 시장을 목격했다는 제보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오 전 시장의 잠적이 길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가 이미 한 차례 구속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 전 시장은 광주시 기획관리실장을 맡고 있던 지난 1998년 11월 주식 투자 정보를 입수해 2억5천만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났다. 오 전 시장의 한 지인은 “당시 별다른 대책 없이 검찰에 출두했다가 구속을 경험한 오 전 시장이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구속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30여 년간의 공직 생활도, 단체장으로서 명예도 모두 버리고 도피 행각에 나선 오현섭 전 여수시장. 그의 잠적에 여수 시민들의 마음은 갈수록 캄캄해지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