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천안함’ 출구는 있는가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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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6자회담 재개 외에는 묘안 없어…‘북의 사과’ 받는 데에도 모호한 입장 취할 듯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한 지 한 달여 만에 의장 성명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북한을 공격 주체로 명시하지 못하고 남북한의 주장을 나란히 병기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이로써 천안함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우리 정부는 결의안 또는 의장 성명이 담아야 할 최소한의 내용으로 북한 지목, 규탄·비난, 사과·보상, 재발 방지, 책임자 처벌 등 다섯 개 사항을 안보리 이사국들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의 적극적 반대와 러시아의 미온적 태도로 결의안 채택은 무산되고 의장 성명으로 수위를 낮추었다. 즉 ‘공격’을 개탄(deplore)하고, 규탄(condemn)했지만, 정작 공격 주체를 지목하지 못함으로써 안보리에 회부되었던 천안함 사태는 남북한이 직접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넘어왔다.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이 발표된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유보했던 ‘5·24 대북 조치’를 재개하느냐, 아니면 6자회담을 재개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군 합동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회부,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경협 및 교류의 전면 중단, 북측 선박의 남측 영해 통항 금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직접 참여, 대북 심리전 재개 등의 대북 압박 조치(5·24 조치)를 발표했다. 남측 당국의 대북 압박 조치에 맞서 북한은 5월2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북 관계 전면 폐쇄, 북남 불가침 합의 전면 파기, 북남 협력 사업을 전면 철폐하는 단호한 행동 조치’를 선언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임기 내 “일체 당국 사이의 대화와 접촉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와 같이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남과 북은 퇴로가 없는 대치 국면을 지속하면서 남북 관계 전면 차단 조치를 공언한 터라 출구 전략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남측 정부로서는 유보했던 대북 심리전의 본격 추진을 계속 유보하거나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규모와 지역을 조정하는 이외에 출구 전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 이외에 남북 자체의 동력으로 대치를 풀 묘안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출구 전략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 6자회담을 재개해서 6자회담 틀 내에서 천안함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수 있다면, 남북 대화도 재개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현재는 남과 북 자체의 힘으로 출구를 찾기는 어렵고, 외부 동력에 의해서 출구를 찾아야 할 형편이다.

유엔 안보리 성명 이후 중국과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동시에 발표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직후인 지난 7월9일의 성명에서 천안함 사건을 신속하게 매듭짓고 6자회담을 재개하자고 촉구한 데 이어, 13일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거듭 요구했다. 북한 역시 7월10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선 천안함, 후 6자회담’ 입장을 고수했던 한국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는 7월11일 “북한이 먼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튿날인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사과 없이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만 보이면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중요한 것은 북한이 6자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만 답했다. ‘북의 사과’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으려는 정부의 고뇌가 읽히는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서, 북한의 사과에 대해 ‘모호성’을 남겨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 대표들이 7월9일 유엔본부에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회의를 갖고 있다. ⓒXIN HUA/NEWSIS

 

미국, ‘천안함’과 6자회담 분리하는 ‘투 트랙’ 전략 쓸 듯

유엔 안보리 조치 때까지는 미국도 한국 입장에 동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지역 분쟁에 발목을 잡혀 글로벌 이슈인 북핵 문제 해결이 늦춰지는 것을 우려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정부의 ‘천안함과 6자회담 연계론’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갈 길 바쁜 미국이 천안함에 하염없이 발목을 잡힐 수 없다고 하면서 ‘천안함과 6자회담의 분리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천안함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지적인 재래식 무기 문제와 세계적인 핵 문제를 분리해 투 트랙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천안함과 6자회담 분리론’의 관점에서 두 문제를 투 트랙으로 다룰 것을 천명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5월26일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용납할 수 없는 북한의 도발이다. (이번 사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다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클린턴 장관은 “천안함 침몰이라는 즉각적 위기에 대해 아주 강하고 계산된 대응책이 필요하다. 좀 더 장기적으로 북한의 방향을 전환하는 대응책도 필요하며,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투 트랙으로 추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발표 이후 북한은 미국과 중국을 자극해 6자회담을 재개하고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교환하는 대타협을 모색하기 위한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주도적인 출구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7월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 회의와 23일 베트남 아세안 지역 안보포럼(ARF)에서 출구 전략 가능성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13일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후 처음으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대북 조치와 한반도 정세 등을 집중적으로 조율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대한 대응 조치로 검토 중인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대북 심리전, 6자회담, 남북 경협 등 외교·안보 정책이 모두 의제로 다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포스트 천안함’ 전략 마련에 시동이 걸리는 분위기이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6자회담은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관련국과 긴밀하게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6자회담의 재개 자체가 아니라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더라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안보리 의장 성명 발표 이후 대북 압박 조치와 관련해서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맞게 적용하고, 6자회담 재개 문제에 대해서도 시간을 두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가 시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거시적 시각에서 정세를 보고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국지적 사건들이 정세를 지배할 경우, 정작 북한 비핵화를 멀어지게 하고 핵능력을 향상시키는 시간을 벌어주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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