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권력 투쟁’ 물살 거세진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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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친이계 주류, 한목소리로 “정권 재창출” 외쳐…‘친이계 재집권 시나리오’ 둘러싼 갈등 커질 듯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반면,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노’(노무현 전 대통령)는 아직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는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는가, 못했는가의 차이에서 나온다. DJ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YS와 노는 실패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약칭 전대)가 치러진 다음 날인 지난 7월15일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의 한 초선 의원이 기자에게 던진 질문과 답이다. 그는 “지금 청와대에서는 ‘정권 재창출’이 화두이다”라고 소개했다. 이 의원은 친이계 핵심으로 청와대와도 교감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얼마 전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권 재창출이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권의 최고 전략가로 꼽히는 박형준 전 정무수석 역시 청와대를 떠나는 소감을 피력하면서 “쉬면서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다”라는 뜻을 밝혔다.

 

▲ 7월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1차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6·2 지방선거와 ‘민간인 사찰 정국’ 파문을 겪으면서 청와대의 기류는 확연히 바뀌었다. 집권 전반기만 해도 청와대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면 자연히 정권 재창출도 따라오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 “정권 재창출을 해야 이명박 정부의 성공도 보장된다”라는 것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집권 전반기 분위기와는 달리, 앞으로 청와대가 ‘여의도’와 함께 가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7·14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청와대의 입장에서도 결코 손 놓고 볼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 주류측은 사실상 이번 전대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전대 출마를 포기하고 재·보선 출마라는 정공법을 선택한 마당에 다른 카드가 없었던 셈이다. “그나마 가장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인사가 안상수 후보였을 것이다”라는 것이 한 친박계 인사의 말이다. 미디어 관계법, 4대강 사업 예산 등의 강행 처리를 진두지휘했던 안대표로서는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여권의 쇄신이라는 명분에 비추어볼 때 안상수 대표 카드는 적절치 않다”라는 여권 내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결국 대안이 없었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여기에는 결국 친박계와는 같이 갈 수 없다는 이대통령과 친이계 주류의 의지가 숨어 있다”라고 분석한다.

전당대회 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위에서 ‘오더’를 내린다고 해서 과거처럼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라는 말들이 많았다. 한나라당 내 밑바닥 정서에서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기운은 청와대와 여권 주류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여지없이 흩어져버렸다. 실제 전대 직전과 직후에 접촉한 친이계 성향의 대의원들은 “당 대표는 안상수, 최고위원은 정두언과 나경원이라고 하더라”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안상수+정두언’ ‘안상수+나경원’ 조합으로 찍으라는 오더가 제각각 (대의원들에게) 내려갔다”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친박계의 한 인사는 “변화와 쇄신을 꾀한다더니 이번 전대에서 ‘오더 투표’의 구태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라고 비난했다. 2위를 한 홍준표 최고위원 또한 “역시 바람은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친이계를 향해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 지금 청와대에서는 ‘정권 재창출’이 부쩍 자주 회자되고 있다. 위는 임태희 신임 청와대 실장(왼쪽)과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안상수 -김무성-이재오 3두 체제에 홍준표 가세하면 내분 심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청와대와 친이계 주류가 ‘오더 투표’를 강행한 것은 집권 후반기를 위한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공동 명제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상수 대표는 “정권 재창출, 안상수만이 해낼 수 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고, 대표로 선출된 직후에도 “지금은 정권 재창출이 우리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관문이다”라고 거듭 확인했다.

문제는 정권 재창출의 성격을 놓고 친이계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큰 시각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친박계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도 외형상으로는 정권 재창출에 해당된다. 같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이계는 친박계로의 권력 이양을 정권 재창출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앞에서 언급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오늘날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셈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야 집권 과정의 정통성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민정계’와 ‘민주계’가 민자당 내에서 죽고 살기 식의 권력 투쟁을 벌였지 않은가. 진정한 같은 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YS는 단지 차기 대권을 위해 민정계와 불편한 동거를 했을 뿐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내놓았다. 지금의 박근혜 전 대표 역시 20년 전 YS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민정계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퇴임 뒤 곧바로 민주계인 YS에 의해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친박계도 전의를 다지는 모습이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안상수 대표 체제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는 독자적으로 대표가 된 것이 아니고, 권력의 표를 빌려서 되었기 때문에 부채를 갚아야 한다. 발언권이 많이 약해질 것이고, ‘대리 정치’의 한계를 넘기 어렵다. 그에 비한다면 홍준표 최고위원은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2등을 했고, 득표율에서도 안대표에 비해 불과 2.2%포인트 차밖에 나지 않는 선전을 했다. 오히려 홍최고위원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다. 앞으로 갈등은 더 첨예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전대를 통해 선출된 한나라당 지도부의 색깔이 ‘5인5색’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범친이계’로 분류되었던 홍최고위원이 스스로 ‘비주류’를 자처하고 나선 데다, 친이계의 지원을 받았던 나경원·정두언 최고위원도 각각 그 지원 배경이 ‘이상득계’와 ‘이재오계’로 갈라진다는 후문이다. 서병수 최고위원은 친박계이고, 여기에 김무성 원내대표 역시 여전히 ‘범친박계’로 분류된다. 정치권 분석가들은 대체적으로 “이재오 전 위원장이 만약 은평 을 재·보선에서 당선하고 여의도로 입성한다면, 한나라당은 안상수-김무성-이재오의 3두 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고, 여기에 새로운 비주류로 홍준표까지 가세한다면 한나라당의 내분은 더 깊어질 것이다”라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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