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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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사활 건 접전…한나라당 이재오 후보 앞서가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 성사되면 예측불허

오는 7월28일 치러질 재·보궐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남다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단행한 인사 쇄신과 지도부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성격이 짙다. 민주당으로서도 지방선거의 승리가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만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현재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민간인 사찰 파문’과 이명박 정부 권력 내부의 국정 농단 의혹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도 승부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조심스럽지만 “최소한 세 곳 이상은 이겨야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민주당 역시 “다섯 곳 이상 승리하면 사실상 승리한 셈이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3 대 5의 구도로 끝난다면 모를까, 그 외의 승부가 나서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운다면 정국은 또 한 번 소용돌이칠 것이 분명하다.   

 

▲ 7월15일 서울 은평 을 재·보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이재오 후보가 주민들을 만나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서울 은평 을은 ‘미니 총선’이 펼쳐지는 재·보선 지역 여덟 곳 중에서도 최고의 격전지로 꼽힌다. ‘이재오’라는 여권 핵심 실세가 명예회복을 노리며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권 심판론’을 외치는 민주당 등 야권으로서는 이재오 후보의 등원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다른 일곱 곳 다 이겨도 은평 을에서 지면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할 수 없다”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이다.

처음 분위기는 이재오 후보에게 악재였다. 지방선거 패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데다, ‘민간인 사찰 의혹’ 등 현 정권의 비리가 연일 터지면서 민심은 심상찮게 돌아갔다. 이후보는 승부수를 띄웠다. ‘나 홀로 선거’에 나선 것이다. 지역 주민들을 가가호호 직접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인사를 하며 악수를 건네고 직접 사인한 명함을 나누어준다.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명함을 들고 있는 수행원 두 명이 전부이다. 유세차도 없고, 확성기도 없고, 로고송도 없다. 우직하게 조용히 발로 뛰는 선거전을 치르겠다는 의지이다.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 7월15일 이후보는 새벽 5시에 자택을 나와 자전거로 지역구 곳곳을 찾았다. 7시부터는 구산역에서 출근 인사를 하고, 10시부터는 대조동 대조교회를 찾아 무료 급식 봉사에 참여했다. 대조교회 일정은 이날 이후보가 언론에 알린 유일한 공식 행사이다. 이후보측은 동선에 대해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있다. 연서시장에서 만난 박 아무개씨(45·남)는 “이재오 후보가 예전에는 아침마다 자전거로 다니면서 지역 주민들을 챙겨 민심을 얻었다. 한동안에는 중앙 정치에 골몰하면서 뚝 끊기기도 했지만, 다시 열심히 한다니까 한번 믿어보자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보의 유세를 곱게 보는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 이 아무개씨(50·여)는 “돌아다니면서 인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자신을 알리자는 것인데 이재오 후보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토론회나 유세를 통해 자기 정책을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 7.28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7월15일 은평구 을의 민주당 장상 후보가 선거대책본부 출정식을 가졌다. ⓒ연합뉴스

야권, 주민들 중재로 3차례 간담회 가졌지만 입장 차 못 좁혀

이재오 후보는 은평 을 지역을 찾겠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제발 날 살리려면 한강을 넘지 말아달라”라고 말했다. 중앙당 지원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후보측의 한 관계자는 “대선 직후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는 선거를 조직했던 사람들이 전부 이곳을 찾았다. 캠프에 외부 인사가 60~70%를 차지했다. 통제를 못할 정도였다. 유권자들에게 유세를 해야 하는데 찾아온 외부 인사들이 너무 많아 그들과 악수하기 바빴다. 주택가인 은평에 고급 차를 타고 나타난 사람들을 주민들이 달갑게 여길 리 없었다”라며 이번 선거에서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민주당의 선거전은 이후보측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선거사무소 풍경부터 다르다. 장상 후보의 선거사무소는 넓은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3명의 공동 대변인을 두고 언론 대응도 적극적이다. 중앙당 차원의 지원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7월15일 오전 9시 연신내역 물빛공원에서 열린 출정식에는 정세균 대표, 손학규 상임고문, 정동영 상임고문, 박지원 원내대표 등 당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가했다. 선대위원장에 김민석 최고위원·윤덕홍 최고위원·이미경 사무총장을, 선대본부장에는 지역 인사인 고연호·송미화 예비후보 등을 위촉해 진용을 갖추었다. 총력전을 펼쳐 여권의 권력 실세인 이재오 후보를 반드시 꺾겠다는 의지이다.

하지만 역시 야권의 최대 관심사는 후보 단일화에 있다. 이 지역에서만 3선을 한 이후보에 맞서기 위해서는 여야 1 대 1 구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화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장상 후보와 천호선 국민참여당 후보, 이상규 민주노동당 후보 등은 투표 전까지 단일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접근 방식에서는 의견 차이가 분명하다. 천호선 후보는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선거 연합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은평 지역 시민단체들도 단일화 요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순옥 열린사회 시민연합 은평시민회 대표는 “야권이 연대해서 1 대 1로 심판받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 주체로 각당의 담당자와 후보 등록 전 3차례 간담회를 가졌는데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 가장 혜택을 받은 민주당이 앞장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열흘여 남겨두고 있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이재오 후보에게 다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선거 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이후보가 다른 야권 후보들을 따돌리고 있다. 인지도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이후보에 대한 동정론도 일부 힘을 얻고 있다. 낙하산 공천에 대한 거부감도 엿보인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를,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는 김 아무개씨(50·남)는 “지역에 열정을 가진 인물을 뽑을 것이다. 낙하산식 공천은 사양한다. 민주당에서는 차라리 이 지역 후보인 고연호·송미화 후보 등이 나왔다면 좋았을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만약 극적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은평 을 지역은 또 한 번 요동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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