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맺힌 꿈들의 ‘죽음 도미노’
  • 경북 포항·조현주 기자, 임송 인턴기자 ()
  • 승인 2010.07.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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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자살한 여성 3명, 어떤 삶 살았나…빚과 외로움 등에 시달리며 친자매처럼 의지해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간 상처받은 꽃들이었다. 동료의 죽음을 보고 잇따라 자살한 이성주(가명·32)·김상희(가명·36)·강영선(가명·23)씨. 비록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지만 그녀들에게도 꿈이 있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그러면 내일이 있다”라며 악몽의 터널을 걸으면서도 핑크빛 희망을 품었다.

 

▲ 7월8일 자살한 김상희씨의 원룸 안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하지만 그녀들의 꿈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현실의 족쇄는 더욱 세게 몸을 죄어왔다. 결국 모든 꿈과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선택했다. 이승에서 ‘못다 핀 꽃’은 이제 향불이 되어 하늘로 피어올랐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들을 ‘포항 여종업원’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죽어서도 서럽고 슬프고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자살한 이성주씨는 포항 유흥가 여성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다. 자기보다 업소의 동료나 동생들을 먼저 챙기는 마음씨 좋은 마담(실장)이었다. 그래서 따르는 동생들도 많았다. 이씨가 자살한 다음 날에 자살한 김상희씨와는 서로 빚 보증을 서줄 정도로 가까웠다. 역시 그 후 사흘 만에 자살한 강영선씨도 이씨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믿고 의지했다.

하지만 이성주씨는 외로웠다. 포항 상도동의 원룸에서 혼자 살며 고독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녀였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씨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동료 종업원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이씨가 자살한 뒤 하루 만에 자살한 김상희씨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18세 때 고향인 대구를 떠나 정착한 곳이 포항이다. 김씨에게 포항은 제2의 고향이었지만 잘못된 인연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구했지만 결국 유흥업소에 정착했고,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김씨는 죽기 직전까지 10여 년간 유흥업소에서 일을 했다. 얼마 전부터는 실장(마담)이 되었고 밑에 동생들도 두었다. 하지만 ‘마담’이 되면서 그녀는 더 큰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여종업원은 “외모가 튀는 편이 아니라서 김마담에게 손님이 많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김씨를 찾는 손님이 적다 보니 덩달아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업소 동생들을 거느린 마담으로서 김씨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졌다.

 

▲ 위는 룸살롱 여종업원인 문씨가 자살하기 직전 친구에게 보낸 유서 성격의 문자메시지. ⓒ시사저널 임준선

가장 노릇하며 억척 생활…가족들에게도 직업 안 알려

기자는 그녀가 살던 원룸에 찾아가보았다. 한눈에도 그녀가 얼마나 외롭게 지냈는지 알 수 있었다. 대충 치워진 방안에는 먹다 남은 소주병이 주인 잃은 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김씨가 죽기 바로 직전에 마시던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소주병을 들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을까. 낡은 컴퓨터 한 대도 놓여 있었다. 전원을 켜보니 바탕화면에는 수백 곡의 음악이 다운로드된 폴더와 게임 사이트가 있었다. 평소의 근심과 시름을 노래를 듣고 게임을 하며 잠시 내려놓았던 듯했다. 컴퓨터 옆에는 키티 캐릭터가 있는 분홍색 노트 한 권이 있었다. 노트를 펴자 ‘컴퓨터’ ‘속기학원’ ‘고용안전센터’ ‘직장’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업소 일을 청산하고 제2의 인생을 꿈꿨던 것이 아닐까.    

김씨가 죽기 직전까지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직업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비밀로 했던 것이다. 김씨를 잘 알고 지냈던 한 유흥업소 업주는 “정이 많아 가족들이 부탁을 하면 꼭 돈을 가져다주고는 했다. 가족들이 김마담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나 다름없었다”라고 말했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강영선씨. 강씨는 같은 또래의 여성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돈을 벌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는 유흥업소의 생활, 남자친구의 배신, 갑자기 찾아든 병, 친한 언니의 자살까지 이어지면서 그녀의 삶은 헝클어졌다.

강씨가 포항의 룸살롱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약 2년 전부터다. 이때부터 가족들과도 떨어져서 지냈다. 그녀에게는 좋아하는 남자친구도 있었다. 둘이 결혼해서 살 생각도 했다고 한다. 강씨의 친구들은 “그 친구가 사귀던 남자와 함께 살 계획을 가졌다. 그런데 친구에게 빚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남자의 태도가 변했다. 결국 이용만 당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또 큰 병도 앓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 자궁암 진단을 받았으나 몸을 추스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성주씨의 업소로 옮겼는데, 이씨가 자살하면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자살 직전 친구에게 ‘힘들고 죽고 싶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강씨의 가족들도 그녀가 룸살롱에서 일을 하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자살한 뒤에야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가족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자살한 지 4일이 지난 뒤에야 발인을 했다. 강씨의 친언니가 병원 장례식장의 장의사에게 발인이 있기 전날 전화를 걸어 “한 번 더 관 뚜껑을 열고 얼굴을 보면 안 되겠느냐”라고 간곡히 부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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