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서 빠져드는’ 카페인 수렁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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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효과는 뇌에 ‘거짓 신호’ 보내는 것…중독되면 두통·화·소화 장애·심장 이상·불면증 등 초래

 

ⓒ시사저널 임준선

 

밤에 또는 오랫동안 운전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커피이다. 커피 속에 있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로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밤새 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사람도 카페인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단순 작업에서는 카페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복잡한 업무에는 별 효과가 없다. 한마디로 카페인은 단순 집중력을 향상시키지만, 기억력이나 학습 능력을 올려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음주 후 커피를 마시면 술이 잘 깬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 또한 속설일 뿐이다. 카페인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추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에탄올 중독을 부추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음주 후 운전하면서 커피까지 마시면 사고가 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카페인이 긴장감을 높여주는 것 같지만 운동 신경은 여전히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아데노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관계가 있다. 뇌에는 불순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막(혈뇌장막)이 있다. 카페인은 이 막을 통과해서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한다. 아데노신은 몸이 피곤하므로 쉬라는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 아데노신이 쌓이면 졸음이 온다. 카페인은 이 기능을 방해하고 뇌에 피곤하지 않은 것처럼 ‘거짓 신호’를 보낸다. 따라서 뇌는 쉬지 않고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각성 효과 사라지면 금단 현상 불러와

이와 같은 각성 효과가 떨어지면 사람은 축 처진다. 호주에 사는 41세 변호사도 그런 경험을 했다. 주중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주말만 되면 집에서 잠만 잤다. 주말만 기다려온 아내와 아이들은 실망스럽다. 이런 상황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이혼 얘기까지 나왔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카페인 중독이 그 원인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커피 등을 통해 카페인을 계속 섭취했지만, 집에서 쉬는 동안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이다. 의사는 카페인 섭취를 줄이라고 처방했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내가 진료하는 환자 중에도 주말만 되면 맥을 못 추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 집에서도 커피를 마셔보라고 처방했다. 카페인을 섭취해야 주말에도 활동이 왕성해진다면 카페인 중독을 의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카페인 금단 현상 때문이다. 즉,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피터 로저스 영국 브리스톨 대학 실험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6월 “평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어도 각성 효과가 저하되고 금단 현상(두통)이 증가했다. 결국, 이들이 커피를 계속 마시는 것은 카페인 금단 현상을 피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카페인 금단 현상은 섭취량에 비례한다. 하루 세 번에 걸쳐 총 4백mg의 카페인을 7일 동안, 또는 하루 세 번에 걸쳐 3백mg의 카페인을 18일 동안 섭취하면 금단 현상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커피믹스 두세 잔에 해당하는 100~2백mg만으로도 금단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카페인의 유해성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황인종은 백인종보다 카페인을 분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한국인은 체구도 비교적 작은 편이라서 백인에 비해 카페인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이 정한 카페인 하루 섭취 기준 4백mg은 한국인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을 대상으로 카페인 섭취량과 금단 현상을 조사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의 유준현 교수가 지난 2007년 대학생 8백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통해 국내 카페인 중독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들 중 카페인 금단 현상을 경험한 사람은 46.4%로 나타났다.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심지어 중독 증상을 보인 비율도 2.1%에 달했다. 중독 증상으로는 수면 장애가 가장 많았는데, 10명 중 네 명 이상이 경험했다. 유교수는 “하루에 커피 네 잔에 해당하는 2백50mg 이상 카페인을 섭취하는 사람이 7.9%였다. 카페인 중독에 근접한 사람이다. 이번 연구로 카페인 과다 섭취가 금단 현상과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원인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일러스트 박현정

 

카페인은 몸속에 들어가면 위장이나 소장에서 흡수된다. 카페인은 섭취한 뒤 45분이면 온몸으로 퍼진다. 섭취한 카페인량이 100이라면 50이 배출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반감기)은 일반적으로 4.9시간이다. 임신한 여성은 9~11시간이나 걸리며, 간에 이상이 있는 환자는 무려 96시간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나이, 간 기능, 임신 여부, 약물 복용 여부 등에 따라 개인 편차가 있지만 알코올의 반감기가 2시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꽤 긴 시간이다. 카페인이 몸에서 완전히 빠지기까지는 12~24시간이 걸린다. 하루 한 번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1년 3백65일 우리 몸에는 항상 카페인이 쌓여 있는 셈이다. 카페인이 몸에서 거의 없어질 무렵부터 금단 현상이 생긴다. 48시간이 지나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금단 현상은 1~5일가량 지속된다. 대표적인 금단 현상은 두통, 화, 집중력 저하, 노곤함, 불면증, 위장·관절 통증이다.

카페인 섭취 기간이 길수록 중독 증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신경질, 화, 분노, 떨림, 불면증, 두통, 호흡기 이상, 심장 이상 등이 일반적인 카페인 중독 증상이다. 심해지면 쉽게 흥분하는 상태가 1주일 이상 계속되거나 무력감, 판단 착오, 방향 감각 상실, 망상, 환각, 정신 이상 등이 생길 수 있다. 최근에는 각 신체 부위별 유해성이 밝혀지고 있다. 카페인은 심장 박동을 증가시키면서 불규칙하게 만든다. 위장에는 통증을 일으키고 위궤양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뇨 활동이 왕성해지고 방광 통증 등 비뇨기계 이상도 발생한다. 칼슘을 배출시켜 골다공증을 악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드물지만 땀이 나거나 손발이 떨리고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도 한다. 두개골 근육 조직에 손상을 초래해 사망할 수 있다는 개연성도 제기되고 있다. 많은 양의 카페인을 섭취하기란 드물지만, 카페인 성분이 있는 약을 과다 복용해서 사망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임신부·어린이는 카페인 섭취에 특히 주의 해야

임신부는 가능한 한 카페인을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미국 산부인과학회지에는 임신한 여성이 하루 2백mg 이상(커피 3잔)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섭취하지 않는 여성보다 유산할 위험이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정부도 임신부는 카페인 섭취를 하루 2백mg 이하로 제한하라고 권고했다. 물론 카페인과 유산은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임신부가 카페인을 섭취하는 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임신부가 섭취한 카페인이 태아에게 전달되어 아이가 태어난 후 보채거나 잠에서 잘 깨는 등 카페인 금단 현상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희철 연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카페인은 뇌에 작용하는 물질이므로 임신한 여성은 피하는 것이 좋다. 태아의 두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관련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스포츠 음료, 콜라 등의 식품을 즐기는 어린이도 카페인 중독에 빠지기 쉽다. 아이들은 카페인 분해 능력이 성인에 비해 떨어지며 체격이 작아 적은 양의 카페인에도 중독될 수 있다. 녹차 아이스크림 한 개에 해당하는 카페인 100mg만 섭취해도 어린이 몸에서는 3~4일 동안 카페인이 측정된다. 하루 섭취 기준보다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는 6~12세 어린이 10명을 대상으로 혈압·혈액·소변·심전도 검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3명에서 카페인 중독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난해 식약청이 서울과 경기 지역 초등학생 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네 명 중 한 명은 하루 기준치(87.5mg)를 넘는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치의 두 배 이상을 섭취하는 학생도 5.3%나 되었다.

 

▲ 커피 전문점 입구에서 커피 주문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시사저널 박은숙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가장 흔한 카페인 중독 증상은 수면 장애이다.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잔다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수면의 질은 나쁘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견해이다. 깊이 잠들지 못해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계속 카페인을 찾게 된다. 카페인은 끊기도 쉽고 다시 중독되는 것도 쉬우므로 자각 증상이 없어도 카페인 섭취량이 많다면 스스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다른 증상은 두통이다. 특히 편두통이 잦다면 카페인 중독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연구 결과, 규칙적으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 두 명 중 한 명이 두통을 달고 살았다. 자신의 카페인 섭취량이 많아 카페인 섭취를 줄이려면 서서히 줄이는 편이 좋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마리화나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병폐가 문제이다. 카페인도 마찬가지다. 카페인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사람이 갑자기 카페인을 끊으면 30~50%에서 18~24시간 내에 금단 현상을 경험한다. 2주간에 걸쳐 카페인 섭취량을 서서히 줄이는 방법으로 금단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필수 영양 성분인 비타민C도 과잉 섭취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금단 현상과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카페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카페인의 유해성에 대한 경고가 시선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폐해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생명에 치명적이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질병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커피를 문화로 포장하는 커피 전문점의 상술도 카페인 섭취를 부추겼다. 심지어 의사들조차 카페인의 유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모닝커피를 즐기는 여유만큼 카페인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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