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쌈지’를 연거푸 죽였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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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자금 1백18억원 횡령한 혐의로 대표이사 구속…직원 3백명, 급여·퇴직금 받으려 소송 중

 

▲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쌈지길 입구. ⓒ시사저널 박은숙

인사동 ‘쌈지길’로 유명한 기업 쌈지가 또 기업 사냥꾼의 희생양이 되었다. 서울 동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임진섭)는 지난 7월8일 쌈지 대표이사 양 아무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다음 날인 9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양대표는 지난해 8월 사채업자를 동원해 회사 인수 자금 100억원을 가장 납입하고, 회사 자금 1백18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현재 이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변찬우 서울 동부지검 차장검사는 “구속된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현재 양대표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올 초부터 회사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관련자 소환 조사 등을 통해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양대표는 회사를 인수한 뒤 회사 명의로 50억원 규모의 약속어음을 발행했다. 이 돈은 주가 부양을 위해 사용했다. 수십억 원 규모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자금도 횡령했다.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채업자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양대표는 유상 증자에 필요한 자금 100억원을 사채업자 ㅊ씨 등에게 빌려 납입한 후, 46억원을 바로 빼서 돌려주었다. 나머지 54억원도 회사 소유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쌈지의 경영권을 확보한 셈이 된다. 이 때문에 양대표가 부임한 이후 이 회사에는 사채업자들의 출몰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회사 관계자는 “한때는 사채업자들이 대표이사실을 점거하는 통에 내부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라고 귀띔했다.

기업 사냥꾼의 코스닥 입성, 다시 도마에 올라

보다 못한 창업주가 나섰다. 천호균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말 양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부도를 앞둔 지난 3월 말에는 대표이사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대표이사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은 상징적인 면이 있다. 쌈지라는 브랜드가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직원 3백명도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근로자 대표인 김수열씨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급여 29억원이 체불된 상태이다. 천 전 대표가 사재를 털어 7억원 정도를 해결해주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묶여 있는 상태이다”라고 토로했다.

코스닥과 관련된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일부 기업 사냥꾼으로 인해 건실한 기업이 공중 분해되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진M&A연구소 김영진 소장은 “결국 시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투자자들이 묻지 마 투자를 하는 탓에 ‘먹튀’ 경영자도 나온다. 투자자들이 각성하고, 문제가 있는 회사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자율적으로 정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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