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버리니 살길이 ‘활짝’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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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 영역에 뛰어든 기업 많아…혁신에 성공해야 성장세 이어갈 수 있어

 

기업 경영은 자전거 타기와 똑같다. 페달 밟기가 멈추는 순간 자전거는 넘어진다. 기업 역시 지속적인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1~2년 만에 산업 주기가 변하는 지금, 기업에게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덕목이다. 그 변화의 강도가 주력 업종을 뒤엎고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들 정도로 강하다. 일종의 ‘자기 부정’을 통한 혁신이다. 혁신에 성공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것이 요즘 기업 경영의 현실이다.

올해 1분기부터 최대 영업 이익을 달성한 기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 중심에는 하던 사업을 멈추고 방향을 전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한 ‘턴어라운드 기업’들이 버티고 서 있다.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는 대형주보다 턴어라운드 기업이 더 투자 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홍호덕 아이투자신탁운용 본부장은 “미래 가치를 발견하고 선 대응하는 기업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기업 환경이 변했다. 급변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장수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일반화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시사저널>은 기존의 사업과는 전혀 다른 사업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제일모직, 더존비즈온, 호텔신라,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네 개 기업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았다. 한마디로 ‘잘나갈 때 미리 대비했다’로 요약될 수 있다.

▲ 제일모직의 경북 구미 사업장 전자재료 생산 현장. 제일모직 매출 중 34%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 부문으로 자리 잡았다.

56년 장수 기업 제일모직도 새 사업 연도로 따지면 23.5세

제일모직은 더 이상 패션업체가 아니다. 화학회사에 이어 이제는 전자 재료 생산 업체로 재탄생하고 있다. 제일모직의 올해 목표 매출인 5조원 가운데 전자 재료 생산 매출이 1조7천억원으로 34%의 비중을 차지한다. 화학 산업 비중이 40%로 가장 높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전자 재료 비중은 6% 상승했으나 화학 산업 비중은 3%가량 낮아졌다. 패션은 전체 매출 가운데 26%에 불과하다. 제일모직의 주력 사업이 급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제일모직은 창립 연도만 따지면 56세의 늙은 기업이다. 하지만 그동안 새롭게 진출한 네 개 사업의 출생 연도를 따져서 평균을 내보면 23.5세라는 젊은 기업이 된다. 제일모직은 스스로를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젊은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장수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야 장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제일모직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예상하고 사업 전략을 짜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직물 사업으로 처음 문을 연 제일모직은 이후 ‘갤럭시’ ‘빈폴’ 등 패션 브랜드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다가올 섬유 산업의 성장 한계를 예감했다. 생존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 진출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는 곧 변화의 단초가 되었다. 1980년대 당시 석유화학 산업이 주요 소재 사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일모직은 이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것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하는 화학 산업의 전개로 이어졌다. 노재용 제일모직 홍보팀장은 “언뜻 보면 파격적인 변신으로 보이겠지만 그 배경에는 연결 고리가 분명히 있다”라고 말한다. 천연섬유인 양모로 옷을 생산하다가 화학섬유로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석유화학으로 연결되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주력 사업인 전자 재료 사업도 이유 있는 귀결이라고 제일모직측은 말한다. 고분자 플라스틱 소재 플랜트 사업을 하면서 쌓아온 화학·공업·전자적 결합에 대한 이해와 역량, 인프라 덕분에 전자 재료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선발 주자들의 견제와 경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제품 특성상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조급하게 마음을 먹어서는 될 일도 안 될 판이었다고 이들은 털어놓는다. 노팀장은 “산업이 워낙 빠르게 변하는 통에 검토해왔던 아이템들의 출시 시기가 이미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변화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심정과 변신 이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 더존비즈온은 R&D 개발을 위해 더존 디지털 연구개발단지를 2011년 춘천에 마련할 계획이다.

코오롱 역시 더 이상 패션업체가 아니다. 2004년 4천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면서 생존 기로에 섰던 코오롱은 이제 종합 화학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합병과 분할이 이루어졌다. 광학용 필름과 전자 재료 사업의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 코오롱유화를 합병했고, 원사 사업은 독립법인인 코오롱패션머티리얼을 세워 분할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원들의 반발이 있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2006년 당시 코오롱인더스트리(구(주)코오롱)의 대표를 맡은 배영호 사장은 취임 6개월 동안 14번이나 경북 구미 공장을 직접 찾아가 노조원들과 대화를 했다. 결국 항구적 무분규를 골자로 하는 노사상생동행선언을 맺으며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류종오 코오롱인더스트리 홍보부장은 “조직 단결을 이끌어내자 자연스럽게 빠른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라고 회고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해 각 사업별로 주력할 수 있는 계열사를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도 취했다. 그 결과 코오롱은 2009년 매출 2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사업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연결 고리를 찾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제일모직과 코오롱은 닮았다.

위기에 내몰려야만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위기감을 안고 출범한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눈을 돌려 변화를 찾는다.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산업이 열악한 탓에 세무회계 프로그램 개발로 첫발을 뗀 더존비즈온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현 더존비즈온 부사장은 “1991년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위기가 없었다. 천운이 따른 것도 있지만, 경영진에서 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과제를 부여했다”라고 전했다. 더존비즈온은 세무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한 데 이어 제조 자원을 전사적으로 관리해주는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솔루션 사업으로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올해 더존비즈온은 모바일오피스 시대를 대비한 모바일 경영 솔루션을 내놓을 계획이다. 모바일오피스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2년 전부터 준비해 온 프로그램이다.

기존 사업의 연장 선상으로 이해하면 오산이다. 지금까지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수입을 창출했다면 이제부터는 통신사와의 연계를 통해 통신료나 프로그램 이용 대금을 받아 수수료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변화를 맞이한 셈이다. 그동안 프로그램 개발로 확보해 온 고객과 사업망을 이용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낸 사례이다. 모바일오피스 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했기 때문에 얻어낸 결과이다.

▲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신라면세점에서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호텔신라, 전체 매출에서 면세점 비중이 80% 차지해

호텔신라는 지난 과오에서 교훈을 얻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호텔신라가 올해 사상 최대의 영업 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게 한 원동력은 면세점 매출의 가파른 증가세이다. 이제 호텔신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호텔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반면에 면세점 비중이 80%를 웃돌고 있다. 호텔신라가 성장한 계기는 2007년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면서다. 이부진 전무(당시 상무)를 비롯해 고위 경영진들이 직접 지원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으로 입찰을 준비해 온 결과이다. 그 배경에는 뼈아픈 과오가 한몫했다. 과거 2001년 인천공항 개항 이전, 1기 사업자 선정 때 호텔신라는 사업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다른 업체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입찰가를 써내 사업권을 포기했다. 스스로 발등을 찍은 셈이다. 호텔 사업은 한정된 객실 수로 새로운 수익원을 뽑아낼 것이 없다. 반면, 면세점은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매출도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2008년부터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매출이 발생하면서 2007년에 4천억원대에 불과하던 매출이 불과 1년 만에 8천억원대로 두 배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호텔신라는 고객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취향을 미리미리 파악해내는 MD(merchandise)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장우종 호텔신라 홍보팀장은 “글로벌 유통 창구를 구축하고,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한 것이 주효했다. 지금도 MD 부서 직원들은 수시로 해외에 나가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사업에 나서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호텔신라의 최대 관심사는 김포공항 입찰의 성공 여부이다. 1위인 롯데면세점에 맞서기 위해 판매 창구를 늘려나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한 전략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는 지금, 또 다른 사업을 모색하기에 한창이다. 코오롱은 올해부터 물과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와 관련된 소재 개발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 역시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멤브레인을 개발해 친환경 물 처리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멤브레인은 액체 또는 기체 등의 혼합 물질에서 원하는 입자만을 선택적으로 투과해 분리하는 기능을 하는 차세대 핵심 소재이다. 더존비즈온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손잡고 클라우딩 컴퓨터 서비스인 ‘윈도 애저(Windows Azure)’ 운영을 준비 중이다. 홍호덕 아이투자신탁운용 본부장은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기업에는 향후 미래 변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은 향후 미래 산업의 발전을 점쳐볼 수 있을 정도로 발 빠르게 대응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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