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 정보 새어나갔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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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윤리지원관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은닉·인멸한 정황 드러나…누가 지시했는지에 관심 집중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7월8일 오후, 기자는 지원관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여권의 고위 인사를 만났다. 당시 이 인사는 “오늘이나 내일쯤 검찰에서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수사 기관의 압수수색 일정은 보안 사항이다. 자칫 그 일정이 유출되면 피의자가 사전에 증거를 은닉하거나 인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여권 인사를 만난 바로 다음 날인 7월9일, 실제로 검찰은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여권 인사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달리 말하면 검찰의 ‘디데이(D-day)’가 사전에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지원관실이 증거를 은닉하거나 인멸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모두 네 번이다. 총리실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 하루 전인 7월4일 누군가에 의해 컴퓨터 문서 파일이 USB를 통해 외부로 옮겨졌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5일과 7일, 그리고 9일 압수수색이 있기 한 시간 전에도 문서 파일이 삭제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누군가 사찰 증거들을 고의로 은폐했던 것이다.

 

▲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관계자들이 7월9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후 물품을 들고 차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문서 파일을 삭제한 수법도 전문가 수준이어서 검찰이 이를 복구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뿐 아니라 정치인 등에 대한 사찰 기록 상당량이 허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원관실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월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증거 인멸과 관련해 우리도 궁금하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해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언론 보도가 대부분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지금은 그것에 대해 일일이 얘기할 수 없지만, 향후 대응할 부분이 있으면 대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원관실이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 사실을 은폐하고 있음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수사 과정에서 뻔히 들통 날 증거 인멸 행위를 누가 지시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지시에 따라 누가 혹은 어떤 집단이 증거 인멸 행위를 자행했던 것일까. ‘증거 인멸 지시자’는 지원관실에 불법 사찰을 지시한 ‘몸통’일 수 있다. 아니면 ‘몸통’을 밝혀낼 수 있는 핵심 단서를 갖고 있을 수 있다. 검찰이 불법 사찰 수사와 함께 증거 인멸 지시자 및 실행자에 대한 수사를 병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혐의로 7월23일 구속된 이인규 전 지원관과 김 아무개 점검1팀장, 원 아무개 조사관 등이 증거 인멸 지시자나 실행자로 거론된다. 그 누구보다도 지원관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7월2일 대기 발령 조치되어 지원관실의 컴퓨터와 문서 자료 등에 접근할 수 없었다. 검찰이 지원관실의 다른 직원들이 증거 인멸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이 전 지원관 등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컴퓨터 문서 파일이 USB를 통해 외부로 옮겨진 4일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었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을 틈타 이 전 지원관 등이 증거 인멸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원관실 외부에서 전화 등을 통해 얼마든지 증거 인멸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설사 그렇다 해도 이 전 지원관은 ‘깃털’일 뿐 진짜 ‘몸통’은 따로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입주해 있는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 수사, ‘몸통’에까지 이를지 주목

이 전 지원관의 비선 보고 라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이 전 비서관은 그동안 “나는 지원관실과 무관하다”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청와대와 총리실 안팎에서는 지원관실을 만든 핵심 인물로 이 전 비서관을 지목한다. 검찰은 2008년 9월 경기도 양평의 한 리조트에서 열렸던 지원관실 직원 워크숍에도 참석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비서관의 통화 내역과 이메일 기록 등을 분석하고 있는 것도, 그가 지원관실의 ‘윗선’ 내지 ‘몸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는 이 전 비서관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갖가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여권 고위 핵심 인사’는 “박영준 차장이 (지원관실의) 몸통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영호 전 비서관과 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 등과 그렇게 교류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지원관실을 실질적으로 컨트롤했던 사람도 “박영준 차장일 것으로 짐작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차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누군가 (나를) 음해하려고 자료를 넘기는 것 같다”라고 반박했다.

정인철 전 비서관도 지원관실과 깊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박차장과 정 전 비서관은 아주 가깝다. (정 전 비서관은 박차장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이영호 비서관보다 더 가깝다”라고 말했다. 지원관실의 ‘윗선’으로 정 전 비서관이 지목되는 이유이다. 

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검찰 수사도 확대되는 형국이다. 그런데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사건도 과거와 같이 결국 몇몇 ‘깃털’만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다”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가 ‘몸통’까지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과연 지원관실의 불법 사찰을 지시한 ‘윗선’ 내지 ‘몸통’은 누구일까. 그리고 누구를 사찰했으며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던 것일까.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가 갈수록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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