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 당권은 어디로…
  • 김영화 |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0.08.0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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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재·보선 패배로 수세 몰린 정세균, 반격 나선 정동영, 틈새 노리는 손학규 등 ‘빅3’의 정치 셈법

 

▲ 7월15일 서울 은평 을 재·보궐 선거 유세 지원에 나선 민주당의 손학규 상임고문, 정세균 대표, 정동영 상임고문(왼쪽부터). ⓒ시사저널 유장훈

7·28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당 당권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지난 2008년 7월 전당대회(약칭 전대)에서 선출된 정세균 대표의 임기가 원래 지난 7월6일까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뒤늦은’ 출발이다. 이처럼 전대가 늦추어질 수 있었던 것은 재·보선을 앞두고 제1 야당이 당권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각 계파 간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빅3’인 정세균 대표, 정동영·손학규 상임고문 가운데 차기 당권을 향해 비교적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사람은 정대표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가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 그리고 이번 6·2 지방선거 승리를 연달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내에는 노무현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아 야권이 초토화한 상황에서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제1 야당으로 만든 것을 정대표의 공로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또, 그가 단일성 지도 체제의 대표임에도 전권을 휘두르지 않고 줄곧 인내하는 중재자의 모습을 보이며 수평적 리더십을 견지해 온 것도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이는 그의 지지 기반인 486 그룹, 친노 그룹, 구 민주계의 일부 세력, 중도 그룹 등이 이완되지 않은 채 차기 전대에서도 결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말을 듣는 정치는 역시 예고편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깜짝 선전하고, 민주당은 예상 밖으로 대패했다.

앞으로 비주류 진영은 재·보선 참패 책임을 물어 정대표를 최대한 벼랑 끝으로 몰고가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쌓여왔던 비주류 진영의 불만을 점화할 수 있는 ‘인화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류 진영이 이를 손 놓고 지켜보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선거 바로 다음 날인 7월29일 주류와 비주류 진영은 팽팽히 맞서 어느 한 쪽의 우위를 점치기 어려웠다.

이날 비주류측 연합체인 ‘쇄신연대’는 정대표를 겨냥해 일제히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긴급 회동 뒤 성명을 내고 임시 지도부 구성을 촉구했다. 사실상 현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었다. 쇄신연대측 문학진 의원은 “오늘 내일까지는 기다려주겠지만 주말을 넘기면 안 된다”라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종걸 의원은 더 나아가 “2년 임기의 야당 대표가 연임해 4년 독주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다”라며 정대표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요구했다. 비주류 진영의 또 다른 당권 주자인 천정배·박주선·김효석 의원도 이날 선거 참패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 지도부의 강도 높은 쇄신을 요구했다. 특히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의 일원인 박의원은 당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정대표측 의원들은 곧바로 ‘비주류 공동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지도부 사퇴 및 비대위 구성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주류측 최재성 의원은 “정대표가 전대를 한 달 앞두고 사퇴하는 것이 더 무책임하다. 비주류측의 비대위 구성 주장도 결국 ‘전대 룰’ 싸움을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던 것이 이튿날인 30일에는 급기야 정대표의 사의 표명까지 이어졌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나 혼자 지겠다”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그냥 의사 표명에만 그친 채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정대표 주변의 만류가 심했던 탓이다. 특히 그는 차기 전대 불출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대표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 역시 전대 출마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대표 자신과 그 주변에서는 전대 출마 의지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대표가 설사 사퇴 의사를 재확인하더라도, 전대 불출마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선거 패배 책임 논란이 이처럼 양측 공방으로 흐른다면, 정대표가 전대에 출마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주류측의 한 핵심 인사는 “정대표가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그야말로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어서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대표의 위기는 경쟁자인 정동영·손학규 두 상임고문에게는 기회이다. 먼저 ‘쇄신연대’를 이끌며 변화와 쇄신을 주장해 온 정고문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보선 과정에서 나타난 당 지도부의 실책이 “민주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비주류의 공세에 명분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재·보선 민심은 민주당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이는 얼마 전부터 ‘담대한 진보’를 기치로 민주당의 변화 방향을 제시해 온 정고문에게 좀 더 유리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정고문 주변 인사들은 이미 전대 준비에 착수했으며, 지금은 정고문의 결단만 남은 상태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고문측 핵심 측근은 “이제부터 사람들을 치열하게 만나 출마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입장을 정리할 것이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대표와 지지 기반이 겹쳐 막판까지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손 전 대표의 경우에도 출마를 위한 명분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비주류 진영에 당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재·보선 패배로 상처받은 정대표를 대신해 나서야 한다는 이른바 ‘구원투수론’이다. 당내에서는 정대표가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 고전할 경우, 비주류와는 결이 다른 대의원들이 정대표 대신 손고문 쪽으로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무성하다. 물론 손고문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선거 당일 충주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본 뒤 다시 춘천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손고문의 한 측근은 “전대 출마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밝히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했다.

우위 점치기 어려워 집단 지도 체제 선택할 수도

현재로서는 ‘빅3’ 가운데 어느 한 쪽의 우위를 점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장 중요한 전대 룰 협상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재·보선 직전 당 원로인 문희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전대준비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총 25명에 달하는 위원 인선 작업은 계파 안배 문제로 인해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비주류측에서는 “전대준비위원이 주류측 사람으로만 채워졌다”라고 주장하고, 주류측에서는 “공연한 트집이다”라며 반박하고 있다. 전대 시기도 아직 유동적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일단 8월28일, 9월3일, 9월10일 등 평일로 가예약을 해둔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이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 초에는 전대가 치러질 전망이다.

전대준비위가 본격 가동되면 현행 단일성 지도 체제를 집단 지도 체제로 바꿀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빅3’의 삼각 경쟁 구도가 복잡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 체제를 고수해 온 정대표가 비주류의 집단 지도 체제 도입 주장을 전격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현행 체제보다는, 5등 안에만 들면 지도부에 진입할 수 있는 집단 지도 체제가 더 낫다는 셈법에서다. 이 경우 ‘빅3’ 모두 새 지도부에 진입해 차기 대권을 향한 조기 경쟁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정대표측 486 측근들이 집단 지도 체제에 여전히 부정적이어서 실현 여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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