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2인자’ 생환하니 ‘태풍 전야’가 눈앞에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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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재·보선 후 한나라당 풍향도 / 이재오 당선자, 이원집정부제 같은 권력 분권형 개헌에 대해 목소리 높일 가능성

“휴~ 고민이다. 지금으로서는 답이 없다. 좀 알려달라.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친박(친박근혜)계’의 한 핵심 인사가 7·28 재·보선 직후인 지난 7월29일 기자에게 털어놓은 솔직한 고민이다. 역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당선자는 ‘거물’이었다. ‘친이(친이명박)계’의 핵심인 그가 서울 은평 을에서 당선하자, 당장 여의도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친박계는 충격과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친이계도 여기저기 웅성거리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평론가가 “은평 을 패배가 반드시 민주당에 아픈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한나라당 집안 사정이 재미있게 전개될 것이라고 보면, 이를 관전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라고 한 말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 7월28일 재·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기뻐하는 이재오 후보. ⓒ시사저널 유장훈

 ‘실세 중의 실세’ ‘정권 2인자’의 귀환을 맞는 여의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선거 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절대 한강을 건너오지 마라”라고 했던 이재오 당선자의 일성은 ‘노련한’ 정치인답게 여러 면에서 극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는 7월29일 혼자 당당하게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입성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이당선자의 이런 모습을 두고 ‘개선장군’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재오의 당 복귀는 어차피 (우리가) 겪어야 할 부분이지만, 좀 일찍 찾아왔다. 그것도 모양새가 (우리 입장에서는) 아주 고약하게 되었다. 면죄부도 받고 떳떳하게 마치 개선장군처럼 쳐들어오니까 그게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이당선자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아예 받기를 포기할 정도였다. 당선을 축하하기 위한 여권 인사들의 전화였을 터이다. 그는 “오늘은 당선 인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강을 건너)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당분간 여의도를 멀리하겠다” “한없이 낮추겠다”라는 말을 이당선자 본인이나 주변 참모들이 숱하게 반복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그것이 아니었다. “설사 이당선자는 조용히 있으려 할지 몰라도, 주변에서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당분간은 조용할 것이다. 친이계 내부 권력 다툼도, 이재오-이상득-박근혜 세 사람의 갈등 구조도 일단은 수면 아래로 잠길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물 위로 떠오를 테지만 말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미 이당선자는 “나로 인해 (당내) 갈등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섣불리 먼저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친박계측도 “우리로서는 기다려야 할 시간이 더 늘어났다. 대안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저쪽(친이계)에서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우선은 진용을 개편한 청와대가 7·28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강한 국정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점쳐진다. 곧 총리를 포함한 대폭의 개각도 단행한다. 민주당도 8월 말 또는 9월 초 전당대회에서 한바탕 ‘당권 경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청와대의 주도 속에 정국이 잔잔한 소강 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태풍 전야의 고요’일 가능성이 크다.

역시 ‘폭풍의 눈’은 이재오 당선자의 거취에 있다.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예상된다. 스스로 ‘대권 주자’로 나설 수도 있고, ‘킹메이커’로서의 역할 설정을 꾀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지금 그의 말처럼 당권 경쟁에 휩싸이지 않고 여의도를 멀리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는 세 번째의 가능성을 가장 낮게 보고 있다.  

▲ 7월22일 대구시 달성군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연합뉴스

 “이재오와 박근혜의 화학적 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가 ‘대권 주자’의 길을 택하든, ‘킹메이커’의 길을 택하든 박근혜 전 대표와 언젠가는 한번 ‘세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이다. 이당선자가 박 전 대표의 ‘킹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 대다수 전문가는 “설정은 가능하지만, 현실성은 극히 떨어지는 얘기이다”라고 단언한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와 이당선자 간의 뿌리 깊은 앙금은 치유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2006년 제1 야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를 함께 지낼 때부터 첨예한 갈등을 표출해왔다. 당 주변에서는 “나고 자란 환경에서부터 두 사람은 너무나 극과 극이다”라고 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당선자는 재야 운동가 시절 박정희 정권 퇴진 운동으로 두 차례 투옥된 적이 있다.

친박계 쪽에서는 여전히 이당선자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지난 2006년 1월 이당선자가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예상을 깨며 ‘친박계’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었을 때도 당시 당 대표였던 박 전 대표는 확실히 중립을 지켰다. 선거 때 이당선자는 ‘박대표의 노선에 따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사람이 원내대표가 된 뒤에 사사건건 당 대표와 갈등을 야기했고, 끝내 등에 비수를 꽂았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인사는 “속에 칼을 품은 사람이 지금 잠시 화해 제스처를 보인다고 해서 그 칼을 거둬들일 수 있겠나. 방심하는 틈에 또 칼을 빼들기 마련이다”라는 말로 이당선자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표출했다.

이당선자 역시 박 전 대표에 대한 거리감이 여전했다. 그는 재·보선 당선 직후 “친박과도 잘 지내겠다”라고 했지만, 박 전 대표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겠지”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7월14일 전당대회 직후 “며칠 내로 박 전 대표를 직접 예방하겠다”라고 밝힌 것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6월 기자는 이당선자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장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도 박 전 대표에 대해 여러 차례 물었지만, 그는 “친이든, 친박이든, 겉으로 드러난 것 말고의 속사정이 따로 있다”라는 말만 할 뿐, 끝내 박 전 대표 개인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당선자가 킹메이커 역할에 나서는 경우와 관련해 벌써부터 몇몇 대권 주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문수 경기지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두 사람의 ‘동지적’ 관계는 유명하다. 특히 최근 김지사의 폭넓은 행보에 대해서도 많은 말이 들린다. 여권의 한 인사는 “최근 김지사가 부쩍 이런저런 행사장에 모습을 많이 나타내더라. 그리고 그의 주변에 여권 인사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확실히 지난 지방선거 이후로 달라진 풍경이다”라고 전했다.

여권 일각에서 ‘MB-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연대설’ 나돌아

이당선자의 귀환으로 하반기 정국에서 개헌론이 좀 더 가열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한나라당은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안상수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개헌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당선자 역시 대통령 중심제 보다는 권력 분권형 체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이당선자는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이던 지난 2월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개헌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당선자가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원집정부제와 같은 권력 분권형 개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친박계는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 대해서 “또 다른 ‘박근혜 죽이기’ 전략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당선자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계 개편이 그것이다. 이 역시도 개헌론과 맞물린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주자 단독 선두 체제가 계속될 경우, 정치권을 ‘박근혜 대 비(非)박근혜’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권 일각에서 계속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눈길을 끈다. 얼마 전 한 정치평론가가 기자에게 “‘MB-손 연대설’이 나돌고 있다”라고 귀띔한 바 있다(<시사저널> 7월13일자 참조). 이번에는 다시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가 비슷한 말을 또 전했다. 그는 “친이계와 손 전 대표의 거리가 가까워질 것이라는 얘기가 부쩍 나오고 있다. 개헌론까지 불거지면서 더 그렇다. 아무래도 그들은 박 전 대표를 제외한 가능한 한 모든 대선 주자들을 다 내세우려는 모양이다”라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손 전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현재 여야로 갈라져 있는 마당에, 한마디로 소설 같은 얘기이다”라고 일축했다.

개헌론이든, 정계 개편이든, 아니면 당내에서 대권 경쟁을 벌이든 간에, 아무튼 이 모든 배경에는 ‘박근혜-이재오’ 대결 구도가 깔려 있다. 오래지 않아 한나라당에 또 태풍이 불 것이 틀림없다.

 한나라당 계파, ‘이재오 대 반이재오’로 재편되나

이재오 당선자가 국회 재입성에 성공하자 “한나라당은 이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대결 구도에서 ‘이재오계’와‘SD(이상득)계’, 친박계의 세 계파 대결이 심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하는 목소리가 많다. 여당 주류인 친이계가 이재오계와 SD계로 양분되는 새로운 갈등 구조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권의 속성상, 주류는 정권 후반기로 치달으며 권력이 약화될수록 분열되고, 비주류는 더 결집되기 마련이다. 세분화된 주류의 소계파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권력 창출을 위한 모색에 들어간다.

원래 한나라당은 지난 야당 시절 박근혜 전 대표가 주류였다. 이를 견제하는 비주류 세력의 중심이었던 인물이 바로 이재오 당선자였다. 이당선자는 당시 김문수·홍준표·심재철 등과 함께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이하 국발연)를 이끌었다. 국발연은 이후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주역이 되면서 친이계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현 정부 들어 주류의 위치를 점하게 된 친이계에서는 초기에 이재오 당선자와 이상득 의원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 갈등은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당선자는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하며 여의도를 떠났고, 이의원은 ‘2선 퇴진’ 요구에 시달렸다. 이때부터 친이계는 ‘좌장’ 없이 표류했고, 계파도 분열 양상을 나타냈다. 수적으로 우세하면서도 때로는 강한 결집력을 보이는 친박계에 밀리기도 했다.

이번 7·14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의 소계파는 좀 더 분화되었다. 안상수 대표가 새로운 친이계의 중심으로 부각하면서, 이른바 ‘신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비주류임을 자처하고 나선 홍준표 최고위원은 범친이계와 중도 성향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화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친이계 소장파 그룹 중의 일부는 정두언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모이면서 ‘정두언계’로 불리기도 한다. 대권 주자군인 ‘정몽준계’와 ‘김문수계’도 아직 남아 있고, SD계 역시 ‘구 주류’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복잡한 구도가 이당선자의 입성으로 다시 흔들릴 전망이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이미 차기 주도권은 이재오 당선자에게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제 MB도 이당선자와 상의해야 할 판이다. SD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재오로 대오 단일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오히려 여권은 ‘이재오와 반(反)이재오’로 양분될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이재오와 함께 갈 수 없는 인사들, 예를 들어 ㄱ의원이나 ㄴ의원 등은 ‘반이재오’에 설 수밖에 없다. 이들과 SD계를 중심으로 ‘반이재오계’가 형성되면 우리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그들과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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