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리비아, 파국까지 갈까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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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파견 직원 추방 사건 / 카다피·무기체계 정보 수집이 화근…“리비아측, 국교 단절은 원치 않아”

 

▲ 최근 국정원(왼쪽)이 파견한 주리비아 대사관 직원이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오른쪽 아래) 관련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추방당했다. ⓒ 연합뉴스


국정원 직원이 리비아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가 추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해당 직원이 어떤 정보를 수집했는지, 현지에서 체포된 목사도 같은 활동을 했는지, 미국·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는지, 천안함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등 갖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통상적인 외교 활동에 대한 양국 사이의 ‘오해’라고 밝혔다. 하지만 리비아가 한국의 해외 건설 수주 4대 국가 중 한 곳이라는 점에서 국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 정부의 외교 능력에 대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원과 외교부의 협력 관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일고 있다. 

리비아 보안 당국은 전 아무개씨로 알려진 주리비아 대사관 소속 국정원 직원이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와 그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가 운영하는 국제원조기구(GIF CA)와 관련해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고 전씨를 구금·조사했다. 현지 아랍 언론들은 “이 직원이 카다피 원수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 내 조직에 대한 첩보 활동을 한 사실을 파악하고 한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라고 보도했다. 리비아에서 카다피와 그의 가족들과 관련한 사항은 일종의 ‘금기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 외교 소식통은 “국정원 직원이 무기 수출과 관련해 리비아의 무기 목록을 수집한 일과 리비아에 진출한 북한 근로자들의 동향 정보를 수집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리비아는 이에 대해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EPA
당사자인 국정원 직원 전씨는 지난 6월15일 리비아 정부로부터 ‘비우호적 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목되었고, 72시간 이내 출국해야 하는 외교 관례에 따라 6월18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건이 알려진 것은 한 달여가 지나서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물밑 작업을 통해 사건을 원활하게 해결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리비아에서 활동하던 구 아무개 목사가 구속되면서부터다. 30대 후반인 구목사는 지난 2002년부터 리비아에 거주하며 수도 트리폴리에 위치한 국립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이고 종교법을 통해 다른 종교의 선교를 금지하고 있으며, 외국인 목사의 출입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교의 선교사를 구속하거나 법적으로 제재하는 사례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리비아에서 언급한 ‘기독교 선교 및 선교 관련 책자 반입 혐의’ 외에 또 다른 구속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더군다나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이 리비아측에 여러 차례 영사 면접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현지 한국인 농장주까지 구속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아랍어에 능통한 구목사가 전씨를 도와 스파이 활동에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정부는 이상득 의원을 대통령 특사로 파견해 진화에 나섰다. 이의원은 8일간 리비아에 머무르며 바그다디 마흐무디 총리와 세 차례 면담을 가졌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귀국했고, 정부는 지난 7월20일 정보 당국의 실장급 임원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리비아로 파견했다.

이번 사건은 리비아 현지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리비아에는 20여 개 한국 건설업체가 진출해 51건의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총 공사 금액이 92억 달러(약 10조8천6백8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최근에는 현대건설이 1조4천8백억원 규모의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를 앞두고 있으며, 현재 40억 달러 규모의 ‘트리폴리 도시철도 사업’ 입찰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대리비아 건설 수주액은 2009년 말 기준으로 31억 달러였다.

▲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던 이상득 의원(가운데)이 지난 7월13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국 협상 마무리 단계 진입…현지 기업 활동에 문제는 없을 듯

이번 사건으로 인해 리비아 정부가 한국 기업인들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지난 6월 중순부터 2주간 자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소환 조사를 단행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LG상사 등 국내 대기업들이 포함되었다.

이에 대해 리비아 트리폴리 주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길범 관장은 “국내 기업들이 조사를 받았다. 과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질의 내용이 ‘언제 진출 했나’ ‘현지 직원은 몇 명인가’ ‘합법적으로 등록했나’ 등 통상적이었던 것으로 안다. 해마다 조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리비아가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중국 기업도 일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관장은 오히려 국내 언론의 ‘국교 단절 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보도를 걱정했다. 그는 “바이어나 발주처의 반응을 알아보았는데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나 어려움은 현실적으로 없다. 오히려 국내에서 ‘국교 단절’을 말하며 우려를 심화시키는 것 같다. 한국 기업과 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리비아 정부측도 (국교 단절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지 기업 관계자도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났고, 정부 간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어 막바지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 기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7월29일 현재 한국과 리비아 양국 간의 협의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의에서 한국측은 국정원 직원의 정보 활동이 카다피 국가 원수와 그의 아들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리비아측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다른 국가와의 관계성을 재차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이유가 어떻든 국정원 직원의 정보 수집 활동이 부드럽지 못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키운 것에 대해서도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두 정부가 이견을 좁히고 협의를 원활히 끝낼 수 있을까. 온갖 의혹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도 의혹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비밀스러운 외교 활동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리비아의 관계에는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 협력 관계로 굳게 맺어져 있는 양국이 이번 일로 파국을 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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