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에서 <인셉션>까지 놀란 감독의 판타지 세계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8.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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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의 뒤를 몰래 쫓는 별난 취미의 소유자가 있다. 그는 어느 날 남의 사생활을 캐면 다른 이의 삶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내를 미행하게 되고, 이내 그와 함께 기이한 범죄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1998년 데뷔작 <미행>의 내용이다.

제작비가 6천 달러에 불과한 <미행>은 놀란 감독을 포함한 3명의 스태프와 배우 3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스태프와 배우가 각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매주 토요일 15분 정도만 촬영을 했고, 영화 완성까지는 1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여느 주류 영화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였다. 놀란은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되었다. 놀란이 <인셉션>에서 보여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영화 완성도에 대한 집요함 등을 엿볼 수 있다.

놀란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기억·정신·꿈 등의 키워드가 그의 영화를 관통한다. 할리우드 데뷔작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 남자를 통해 기이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냈다. <인썸니아>는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형사를 통해 꿈과 현실의 연계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비긴즈>도 노상 강도에게 부모를 잃은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어두운 기억을 부각시키며 극적 긴장을 조성했다. 뒤이은 <다크 나이트>도 과거를 알 수 없는(기억과 꿈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불가사의한 인물 조커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구축한다. 기억과 꿈이 뒤섞이며 기이한 판타지의 세계를 직조해내는 <인셉션>과 전작이 서로 맥이 닿고 있는 것이다.

심오한 주제를 다루는 듯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지 않는 점도 놀란 감독 연출의 특징이다. 예술적 자의식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블록버스터 영화로서는 드물게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동시에 호의적인 평가를 받은 <다크 나이트>는 놀란의 영화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의 동생 조나던도 놀란의 세계를 구축하는 주요 멤버이다. 조나던은 <미행>부터 <인셉션>까지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형의 영화를 돕고 있다.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공동 연출까지 하는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조엘 코엔·에단 코엔 형제와는 대비되는 행보여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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