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한 ‘논란’ 부른 놀란의 상상력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8.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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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인셉션>의 돌풍 비결 / 결말에 대한 해석도 분분해 화제 확대 재생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기자 시사회 후 “영화는 좋지만 내용이 좀 어렵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개봉 뒤에도 “돈 내고 꼭 이런 머리 아픈 영화를 봐야 하냐”라는 일부 관객들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개봉 13일 만에 3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인셉션>이 한여름 극장가에서 쾌조의 흥행 질주를 하고 있다.

평일 관객만 15만명 이상이다. 개봉 3주차에는 4백만 관객을 달성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개봉 외화로는 첫 5백만 관객 고지 점령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북미(미국·캐나다) 시장에서도 3주 연속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하며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두뇌 회전 또는 두뇌 혹사(?)를 요구하는 영화 <인셉션>은 단순한 영화만 통한다는 여름 시장을 어떻게 점령한 것일까.

 

ⓒ시사저널 윤성호

■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지적 호기심 유발

“당초 3백만 관객이 최대 목표치였다. 왜 이리 잘되고 있나 우리도 놀라고 있다. 기대 밖이다”(남윤숙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사). <인셉션>은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을 안고 여름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른 사람의 꿈속에 여러 사람이 침투해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내용부터 호객하기 힘들었다. 한 줄 문구로 영화를 설명하기 쉽지 않기에 마케팅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인셉션>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한 김태주 실장은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마케팅을 시작했다. 개봉 전 온라인 광고 클릭 수도 다른 영화에 비하면 높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개봉을 하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림보, 무의식 등의 용어를 동원해 관객들의 지적 유희를 이끌어낸 점이 흥행에 불을 붙였다. 화려한 볼거리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관객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낸 것이다. “인문학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영화” “놀란이 창조한 놀라운 꿈의 세계”라는 호평이 줄을 이으면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돈 내고 꼭 머리 쓰는 영화를 봐야 하나” “하품만 쏟아졌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맞서면서 극장가의 이슈로 자리 잡았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현실로 돌아온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면서 화제는 확대 재생산되었다. 관객들이 영화의 앞뒤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고 이에 대해 서로 토론하면서 보고 또 보고 하는 관람 형태로까지 이어졌다. <인셉션>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서 따돌림당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 트위터 통한 입소문도 흥행에 한몫

<인셉션>은 전형적인 스테디셀러 영화이다. 개봉 첫날(7월21일) 14만7천100명을 불러모은 뒤 평일 관객 수 15만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개봉 13일째인 지난 8월2일에는 20만6천8백명으로 평일 관객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 수가 줄어드는 일반적인 흥행 성적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인셉션>의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개봉 전 1일 평균 1만4천명에서 개봉 후 1만8천명으로 급증했다. 온라인 광고 클릭 수도 개봉 뒤에야 2배가량 늘었다. 입소문으로 흥행 대박을 일군 영화들이 걸었던 길을 <인셉션>도 가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다.

입소문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등에서 시작되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트위터 등에 즉각적인 반응을 올리면서 <인셉션>은 화제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풍부한 이야기깃거리를 지닌 영화였기에 트위터 글 분량은 다른 영화와 달리 개봉 뒤에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 잡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는 최근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개봉 때 최고조에 올랐다가 개봉과 함께 궁금증이 해소되면 바로 열기가 식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인셉션>에 대해서는 (미국 개봉일인 7월14일) 금요일 11만건, 토요일 12만5천건의 글이 트위터에 올랐다’라고 보도했다. ‘영화에 만족한 사람은 왜 이 영화가 대단한가에 대해 떠들고 싶어 하고,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불평을 떠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윤숙 이사는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이 영화에 대한 글을 많이 남긴 점도 흥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미행>에서 <인셉션>까지 놀란 감독의 판타지 세계

길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의 뒤를 몰래 쫓는 별난 취미의 소유자가 있다. 그는 어느 날 남의 사생활을 캐면 다른 이의 삶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내를 미행하게 되고, 이내 그와 함께 기이한 범죄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1998년 데뷔작 <미행>의 내용이다.

제작비가 6천 달러에 불과한 <미행>은 놀란 감독을 포함한 3명의 스태프와 배우 3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스태프와 배우가 각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매주 토요일 15분 정도만 촬영을 했고, 영화 완성까지는 1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여느 주류 영화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였다. 놀란은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되었다. 놀란이 <인셉션>에서 보여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영화 완성도에 대한 집요함 등을 엿볼 수 있다.

놀란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기억·정신·꿈 등의 키워드가 그의 영화를 관통한다. 할리우드 데뷔작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 남자를 통해 기이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냈다. <인썸니아>는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형사를 통해 꿈과 현실의 연계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비긴즈>도 노상 강도에게 부모를 잃은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어두운 기억을 부각시키며 극적 긴장을 조성했다. 뒤이은 <다크 나이트>도 과거를 알 수 없는(기억과 꿈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불가사의한 인물 조커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구축한다. 기억과 꿈이 뒤섞이며 기이한 판타지의 세계를 직조해내는 <인셉션>과 전작이 서로 맥이 닿고 있는 것이다.

심오한 주제를 다루는 듯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지 않는 점도 놀란 감독 연출의 특징이다. 예술적 자의식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블록버스터 영화로서는 드물게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동시에 호의적인 평가를 받은 <다크 나이트>는 놀란의 영화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의 동생 조나던도 놀란의 세계를 구축하는 주요 멤버이다. 조나던은 <미행>부터 <인셉션>까지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형의 영화를 돕고 있다.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공동 연출까지 하는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조엘 코엔·에단 코엔 형제와는 대비되는 행보여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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